▲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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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 ‘언론자유’가 호출되었던 하나의 장면. 더불어민주당이 잘못된 언론보도에 지금보다 더 높은 배상책임을 묻게 한다는 취지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내놨고, 국민의힘은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며 반대했다. 언론계도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해 8월 한국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하는 기자는 34.3%였다. 그해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민 76.4%가 도입에 찬성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2022년 하반기 ‘언론자유’가 호출되었던 또 하나의 장면. 9월 해외순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을 MBC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이 보도하자, 국민의힘은 MBC만 겨냥해 형사고소에 나섰고 외교부는 민사소송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은 그해 11월 “왜곡방송”을 이유로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대통령은 이 같은 탑승 불허가 “헌법수호의 일환”이었다고 했다. 언론계는 정부 여당을 비판했지만, 그 ‘수위’는 1년 전과 사뭇 달랐다.  

지난해 말 출간한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멀리 깊이)에서 언론학자 5명은 앞선 두 개의 장면에 주목한다. 저자 중 한 명인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2021년 국민을 가리켜 “집단으로서의 언론은, 언론자유 개념을 전가의 보도인 양 치켜들었고, 언론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국면을 ‘언론자유 옹호’ 대 ‘언론자유 침탈’이 대립하는 허구적 전장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전후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언론자유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발언과 실천을 보여줬으나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의 외로운 북소리가 되었고, 세상의 중심에는 대통령과 그 권력의 자유만 넘실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수파 속류 자유주의 언론은 자신에게 지우려 하는 일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 혐의를 들어 강력히 거부하는 한편 타 언론에게 가해지는 실질적 언론자유 위축에 대해서는 응분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정당화하는, 전형적 이중 표준(잣대)을 거리낌 없이 구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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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언론자유의 역설에 대해, 저널리즘의 딜레마적 조건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기 위한 집단적 시도”로, “오만한 언론과 기득권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자유가 넘치는데, 정직하고 성실한 언론인과 시민이 마실 자유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언론자유는 그 자체로 모순과 역설을 품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정준희 겸임교수는 ‘언론자유의 세 가지 역설’을 정의한다.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 할수록 오히려 시민의 자유가,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향을 마주한다. 언론자유의 제1역설이다.” “언론은 억압하는 권력에게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주권자와 그 대행자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다. 언론자유의 제2역설이다.” “언론은 정치권력과 시민에 대해서는 자유를 달라 하지만 자본이나 언론사주가 통제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언론자유의 제3역설이다.”

이 책에서 이정훈 신한대 조교수는 언론자유의 사상적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탐구하며 언론자유는 언론기관의 특권적 자유가 아니라, 언제나 민주적 수행 기능이라는 목적과 책임에 부합하는 한도 안에서만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자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송현주 한림대 교수는 언론자유가 언론기관에 부여된 우월적 자유처럼 오용되는 ‘도그마’를 타파하기 위해, 언론자유가 그와 같은 도그마화의 길을 걷게 된 궤적을 추적한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언론자유 개념의 사회학적 실패 혹은 자기과장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김영욱 이화여대 교수는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에 토대를 둔 상부구조로서의 자유주의적 체제는 결국 언론 소유주와 대자본의 자유 아래 종속된 언론인과 시민의 언론자유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일종의 사회권으로서 소통의 권리를 헌법적으로 규정해, 시민이 단순히 표현할 자유를 얻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다른 시민에게 노출되어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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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 정준희 이정훈 송현주 김영욱 채영길 지음. 멀리깊이. 1만9000원. 

언론인들이 주장하는 ‘언론자유’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던 시민들이라면 이 책은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민주당 계열 집권은 언론 일반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유’ 이상의 실질적 이익은 나눠주지 않은 채 ‘사회적 책임’이라는 한 번도 감당해본 적 없는 부담을 지우려 하는 반면, 자유당 계열 집권은 적어도 우호적 언론에게만큼은 확실한 이익을 보장하며 비우호적 언론의 자원과 자유만을 선별적으로 위축시키기 때문에, 설혹 ‘상대적으로 더 적은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개별 언론사와 언론인 입장에서 보면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셈”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언론 혐오’를 넘어 우리 언론을 이해하는데도 좋은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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