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차기 대표 후보로 5인(박찬수 대기자, 안재승 경영담당상무, 유강문 제작국장, 장덕남 광고국 부국장,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이 출마했다. 선거 운동 시작일은 25일, 투표일은 내달 8일이다. ‘김만배 돈거래’ 사건으로 한겨레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들에게 어떤 한겨레를 만들고 싶은지, 신뢰도 제고 방안은 무엇인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물었다.

“법조기자단 시스템 재점검… 탈퇴도 논의”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김만배 돈거래’ 사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법조기자단’이 꼽혔다. 법조기자단은 까다로운 심사와 절차로 소수 매체만 출입이 가능해 일종의 ‘카르텔’로 꼽혔다. 언론인 출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의 금전 거래가 드러난 한겨레·중앙일보·한국일보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을 역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만배씨 역시 10여 년 동안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을 맡았다.

박찬수 대기자는 “이런 사실을 1년간 파악하지 못한 편집국의 취재 시스템을 짚어봐야 한다”며 “법조 취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당장 출입처 제도를 없애진 못해도 ‘출입처 중심’에서 ‘사건 중심’으로 편집국 취재 방식을 옮겨가는 게 필요하다”고 했고 안재승 경영담당상무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는 출입처와 기자단 제도를 개선하겠다. 다만 출입처와 기자단 제도는 오래된 관행이어서 한번에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단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은 “원인도 해법도 시스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취재 시스템이나 출입처 제도 전반에 대해 근본적 재점검을 할 생각이다. 법조기자단 탈퇴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내 윤리위원회, 편집국장 선임 절차 등 시스템 개선에 대한 방안도 나왔다. 유강문 제작국장은 “간부직에 대해선 윤리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취재 관행과 시스템도 이참에 정비할 것”이라며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이 사소한 윤리적 시험대에 서지 않도록 취재비를 현실화하고, 법인카드로 지급하는 방안을 짜겠다”고 밝혔다.

이어 “편집국장 후보 지명 절차를 바꾸겠다. 대표이사 지명 전에 어떤 편집국을 만들 것인지, 어떤 편집국장 후보의 자질이 중요한지, 편집국 구성원들의 시대정신과 집단지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두겠다. 편집국장 추천 위원회를 통해 편집국을 구성원들의 컨센서스 위에 세울 것”이라고 했다.

▲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 1월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 1월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찬수 대기자는 “가장 중요한 건 신속하고 주저 없는 진상규명과 그 내용을 솔직하게 독자와 시민들께 밝히는 일”이라며 “뉴욕타임스 윤리 가이드라인과 같은 높은 수준의 윤리 기준을 다시 세우고, 회사가 이 규정이 지켜질 수 있게 예산 지원 등을 실질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리라 본다”고 했다.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은 “이번 사건은 ‘무결점, 순결한’ 원점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겨레 34년 역사 속에서 잉태된 결과물이다. 원인도 해법도 시스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윤리 규정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인사 제도 등에서 허점이 없는지 살펴볼 생각”이라고 했다.

안재승 경영담당상무는 별도 위원회를 언급했다. 안재승 상무는 “‘한겨레 신뢰 재건 위원회’를 만들어 일상적 경영 활동과는 별개로 신뢰 회복 프로젝트를 수립‧집행할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사실상 사문화한 윤리강령과 윤리강령 실천요강을 엄격히 시행하겠다”며 “언론계 최초로 만든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제대로 지켜왔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원칙대로 적용하겠다. 윤리위원회 권한을 강화하고 활동의 실효성도 높이겠다”고 했다.

장덕남 광고국 부국장은 “어느덧 창간 정신이 흐려졌다. 한겨레 구성원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창간 정신을 되새기고 주주, 독자, 시민들께서 납득하실 때까지 깊이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성찰하고 모든 것을 바꾼다는 뼈를 깎는 각오로 밑바닥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전환 필수, 보도전문채널도 필요”

5인 후보는 한겨레의 현 문제점을 짚는 동시에 미래 비전 이야기를 이어갔다. 디지털 전환, 유료 구독, 보도 채널 강화, 젠더·소수자 분야 강화 등 각 후보들은 한겨레가 독자를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 CI. 사진=한겨레신문
▲ 한겨레 CI. 사진=한겨레신문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은 “20여 년 가까이 전체 매출이 정체돼 있고 워낙 고정비 비중이 높아 영업이익율이 낮은 상태다. 한겨레가 다른 언론처럼 노골적이고 광범위한 수익 사업에 나서기도 힘들다”며 “디지털 전환도 처음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게 10여년 전인데, 아직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는 없고 구성원 피로도는 높아졌다. 전체 큰 그림 없이 조각조각 진행해온 탓”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디지털이 먼저냐, 신문이 먼저냐가 아니라 회사 정체성 자체를 바꿀 정도여야 한다. 제조업체에서 서비스업체로, B2B 업체에서 B2C 업체로 정체성을 바꿔 단계적 유료화를 통해 디지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전체 30%정도로 올려야 할 것”이라며 “일반 독자들의 경우엔 ‘내 삶과의 연관성’이 신뢰도를 가르는 핵심 척도가 되고 있다. 일종의 효능감이 중요해졌다. 한겨레 내부적으론 최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되, 브랜드 인지, 친숙, 선호, 신뢰 순의 브랜드 깔때기 전략도 함께 수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재승 경영담당상무는 “권력 감시와 비판을 통한 이슈 파이팅,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해소, 젠더‧소수자 권익 확대 등 미래 지향적 어젠다 세팅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한겨레형 유료 구독 모델’을 추진하겠다. 이 모델은 콘텐츠 경쟁력 제고, 고객 맞춤형 통합 마케팅, 회사 수익 구조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그랜드 전략’”이라고 했다.

안재승 상무는 ‘보도 전문 채널’ 필요성을 강조하며 “현재 정치‧경제적 여건을 냉철히 고려할 때 당분간 보도 전문 채널은 어렵다”면서도 “일단 ‘한겨레TV’를 강화해 국내 신문사가 운영하는 웹 방송 가운데 1등 플랫폼으로 만들겠다. 또 ‘일반 전문 채널’(PP)로 방송에 진출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대내외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보도 전문 채널 진출을 추진하겠다. 한겨레형 유료 구독 모델과 일반 전문 채널 진출이 한겨레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 한겨레TV 갈무리. 1월 20일 기준 구독자 52만 명을 넘었다.
▲ 한겨레TV 갈무리. 1월 20일 기준 구독자 52만 명을 넘었다.

유강문 제작국장은 “미디어로서 당당하고, 기업으로서 성장하는 한겨레를 만들고자 한다. 1988년 체제를 디지털 시대에 맞는 2023년 체제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디지털 자립 시대를 열 것”이라며 “한겨레의 새로운 미래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고, 콘텐츠 생산 조직과 문화를 디지털 기반으로 재구축하는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한겨레의 지체된 미래를 하나씩 구현해 종이신문 품격과 위엄을 되찾고, 영상 쪽에서 채널 사업 진출 기회를 열겠다”고 했다.

박찬수 대기자는 “‘조국 사태’ 이후 전통적 진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적 가치에 대한 내부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되니까 외부에도 한겨레 색깔은 이렇다, 우리의 정치적 지향은 이거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지를 못했다”며 “해결 방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으면 된다. 내부적으로 새로운 진보 컨센서스를 이루고, 외부에 당당하게 표명하고, 수많은 온라인 매체와 다른 신뢰성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다. 신문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하면서 기사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써서 신뢰를 획득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배치되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온라인과 유튜브 뉴스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시민들이 알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탈진실 시대에 ‘그래도 한겨레를 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와 시각은 달라도 팩트는 맞고 그건 인정한다’라는 소리를 듣는 한겨레 미디어를 만드는 게 꿈”라며 “그게 최근 사건으로 떨어진 우리 구성원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다시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장덕남 부국장은 “우리 조직 내에서 세대, 성별, 가치, 지위, 부서 간 등 여러 유형의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여기에 대표이사 직선제와 맞물려 갈등과 분열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한겨레가 서로를 아껴주고 격려하는 동료애와 공동체 정신으로 하나가 돼 국민 주주와 독자 시민들께서 부여한 역사적 사명과 저널리즘 책무를 다하고, 이를 통해 우리 구성원들이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즐겁고 행복한 일터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후보 5인 명단(가나다순) : △박찬수 대기자(1989년 2기 입사. 워싱턴특파원,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역임) △안재승 상무(1990년 3기 입사. 경제부장, 전략기획실장, 디지털부문장, 논설위원실장 역임) △유강문 제작국장(1990년 3기 입사. IT매거진 ‘닷21’ 편집장, 베이징 특파원, 편집국장, 디지털미디어사업국장, 경제사회연구원장, 경영전략과 디지털전략 담당 상무 역임) △장덕남 광고국 부국장(1995년 8기 입사. 광고1,2부장, 제25기 노조위원장, 제22기 우리사주조합장 역임)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이코노미21’을 거쳐 2006년 한겨레 입사. 경제부 금융팀장, 산업팀장, 경제팀장, 한겨레21 편집장, 논설위원 토요판 에디터, 산업부장, 경제산업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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