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월18일자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칼럼.
▲경향신문 1월18일자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칼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칼럼은 늘 살아있고 배울 점이 많다. 1월18일자 경향신문 칼럼 <‘공영방송 전쟁’의 종전선언을 위하여>도 그랬다. 강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의 방송법 등 개정안을 두고 “내로남불의 압권”이라며 “문재인 정권 출범 전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을 무산시킨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썼다. 지난해 11월, 5만 명의 시민이 ‘공영방송 정치 독립을 위한 법률개정 국민동의 청원’에 나서며 오직 시민의 요구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고 나서야 민주당은 여야 거대정당 추천권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상임위에서 의결했으니 “선의를 인정받으려면 우선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강 교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민주당이 권력의 방송장악에 결사반대하는 공정성의 화신처럼 구는 건 보기에 민망하다”는 지적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강 교수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향해 “이전의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배신에 분노하긴 했었는가?”라고 묻는 대목에선 오해의 지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일명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은 2016년 7월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야 7대6 추천 구조로 명시하고 사장 임명시 특별다수제(3분의2이상 동의)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그해 말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다당제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촛불 시민들은 공영방송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언론 운동 진영은 기존 안보다 더욱 진보적인 안을 고민하며 박홍근 안을 폐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때문에 언론노조가 향했던 분노의 지점은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정부가 여러 이유를 들며 더 나은 입법 요구를 사실상 회피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22년 9월2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영방송 정치독립 입법 쟁취 언론노조 100일 집중행동 돌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성원 KBS본부장, 이종풍 EBS지부장, 최성혁 MBC본부장. 사진=노지민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22년 9월2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영방송 정치독립 입법 쟁취 언론노조 100일 집중행동 돌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성원 KBS본부장, 이종풍 EBS지부장, 최성혁 MBC본부장. 사진=노지민 기자

언론노조는 문재인정부 내내 수많은 성명과 기자회견,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민주당에 대한 분노를 정제된 언어로, 반복적으로 드러냈다. 지난해엔 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만약 그것이 단지 ‘수사’나 ‘쇼잉’에 불과했고 파업이나 삭발이라도 해야 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5년간 언론노조 투쟁 목표에서 ‘공영방송 정치 독립’은 지겨우리만치, 늘 1순위였다. 언론노조의 분노가 강 교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건 선전 역량의 부족 탓이다. 강 교수 칼럼에선 ‘민주당과 언론노조가 한 편’이라는 전제가 느껴졌는데 이건 언론노조와 민주당 양쪽 모두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란 당시 민주당과 언론노조가 치고받았던 상황을 지켜본 입장에서 적어도 ‘민주당에게 분노하지 않았다’는 명제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언론노조가 문재인 정권하의 공영방송 평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도 침묵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 보도와 관련해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비평하는 등 노조 차원에서의 내부 비평과 경영진 비판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해 비평의 양적 빈도나 비판의 수위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침묵으로 볼 순 없다. 노조에게 매 시기 비판의 양적 균형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 교수는 “문재인의 변심은 방송장악을 위한 것”이었다고 쓰기도 했는데, ‘장악’이라는 단어는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MBC 정상화 문건’이나 박근혜정부 시절 이정현 홍보수석의 세월호참사 KBS 보도 외압 같은 사안에 쓰는 게 어울려 보인다. 

▲공영방송3사.
▲공영방송3사.

과거 보수 정부가 ‘장악’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회피’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금도 민주당 의원 다수는 공영방송 정치 독립 법안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시 정권을 되찾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 법 개정 국면은 언론노조를 비롯해 방송기자연합회·PD연합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이 민주당 ‘멱살’을 잡고 끌고 온 결과다. 언론노조는 언론노동자 근로조건인 ‘공정방송’을 위해 때론 민주당을, 때론 국민의힘을 상대로 압박하고 타이르고 소통해왔다. 2021년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막기 위해 언론노조가 국민의힘과 소통했던 것처럼 말이다. 강 교수께서 언론노조 앞에 놓인 ‘진짜 현실’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공영방송 전쟁’의 종전선언은 주요 갈등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강 교수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합의는 양쪽 다 ‘패’를 드러냈을 때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패를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 그대로가 좋다던가, 아님 21대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던 방송법 개정안 중 어떤 법안이라도 좋으니 뭔가 패를 내놔야 제대로 된 합의가 가능하다. 사실 국민의힘이 이런 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국면에서도 비슷했다. ‘언론자유 위협’을 주장하며 반대만 했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자신들의 패를 드러내진 않았다. 이번에는 ‘민주당·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고 반대만 하고 있다. 강 교수 칼럼에선 수십 년간 ‘공영방송 전쟁’을 지켜본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입법·행정 권력이 나뉜 지금이야말로 ‘종전선언’의 적기인 만큼, 강 교수께서 적기를 놓치지 않게 앞으로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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