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가게 곳곳에선 독특한 잡지를 찾아볼 수 있다. 한 베이커리에는 단행본 형태의 잡지를 비치해두고 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이 잡지를 펼치면 유명인이 아닌 이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부터 동네 철물점 사장님 인터뷰, 지역 내 모임 소개, 이웃들의 칼럼 등이 알차게 구성돼 있다. ‘강동구 사람들의 마을잡지’를 표방하는 마을미디어 ‘마을담’이다. 

‘마을담’은 마을미디어도 기성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영상’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7년 간 쉼 없이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마을담’의 박경숙 대표와 이은진·음민서 운영위원을 지난 13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함께크는 우리 도서관’에서 만났다.

개발에 사라져간 ‘맹꽁이’에 주목하며 시작

‘마을담’은 주민 글쓰기 모임과 연계해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 인근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8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가 다 저층아파트였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미나리꽝’(미나리를 키우는 논)이 많았고 맹꽁이도 있었어요.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뤄질 때 지역 기록을 남기자는 차원에서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고민했어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선 글쓰기 능력이 기반이 돼야 하기에 기초 교육차원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었어요.” 박경숙 대표의 말이다. 그는 학보사 기자, 잡지사 기자, 지역신문 리포터 등 언론인 경력이 있다. 지역신문 리포터 활동 도중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 ‘마을담’의 이은진 운영위원(왼쪽에서 두 번째), 박경숙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 음민서 운영위원(오른쪽 끝)
▲ ‘마을담’의 이은진 운영위원(왼쪽에서 두 번째), 박경숙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 음민서 운영위원(오른쪽 끝)

일러스트를 전담하는 이은진 운영위원은 이 글쓰기 교육의 수강생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에는 재개발이라고 하면 낡은 집을 없애고 새로운 집을 짓는다고만 생각했는데 (개발에) 직면해서야 무엇을 잃게 되는지 알게 됐어요”라고 했다.

2016년 첫 발행한 ‘마을담’ 1호는 글쓰기 강좌를 수강한 주민들의 글을 모아서 냈다. 제시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맹꽁이’였다. 박경숙 대표는 “맹꽁이 서식지가 있었는데 산이 깎이고 개발이 되면서 사라지게 됐어요. 지역 사람들이 맹꽁이에 대한 추억을 담는 등 처음엔 수필집과 같은 성격으로 시작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철물점·반찬가게 사장님… 단절된 이웃을 연결하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수필집 역할을 했지만 이후엔 다양한 인터뷰와 취재, 칼럼 콘텐츠로 다변화됐다. 9호까지 발간하며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선보였지만 언제나 지역 주민들을 연결하는 역할에 주목해왔다. 

음민서 운영위원은 자신의 작업실이 입주한 건물 1층 철물점 사장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마을담’ 잡지를 철물점 사장님께 전달 드리자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반응을 보이셨어요. 책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셨던 거죠. 이후에 철물점 사장님을 인터뷰하려 하자 ‘제가 누추해서 드릴 말씀이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셨어요.”

마침 열린사회강동송파시민회가 지역탐방 프로그램으로 운영한 ‘우리동네 보물탐험대’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동자치센터 꿈미소 아이들이 시민 기자 역할을 맡아 80대인 철물점 사장님을 인터뷰해 ‘마을담’ 기사로 싣게 됐다. 어린이 기자는 “철물점을 세운 계기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40년 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자리를 잡고 이후 ‘도장 파기’ 등 여러 일을 해온 과정을 설명했다. ‘꿈’을 묻는 질문에 철물점 사장님은 지금도 동네에 돈이 없어 한 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 사람들을 모아 오순도순 함께 살고 싶다고 답했다.

▲ 철물점 사장님(김중근씨) 인터뷰 기사 갈무리. 사진=마을담 캡처
▲ 철물점 사장님(김중근씨) 인터뷰 기사 갈무리. 사진=마을담 캡처

“매일 지나치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던 이웃이잖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녹취를 글로 풀어내면서, 글을 쓰면서 힐링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들은 무수히 많이 지나가던 길인데, 한 번도 그 가게에 들어가 안에 계신 어른과 이야기한다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던 터라 신기하다고 했어요. 마을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고,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마을담’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맺어진 인연도 있다. 한 번은 한 주민이 동네 반찬가게를 칭찬하는 글을 기고글로 보내와 실었다. 퇴직 후 반찬가게를 운영하던 김명국씨의 가게였다. 자신의 가게에 관한 글을 접하게 된 김명국씨는 이 일을 계기로 ‘마을담’에 관심을 가졌고, 대표 필진으로 성장했다. 홀로 글을 쓰긴 했지만 매체에 기고할 생각을 못했던 그는 ‘마을담’을 통해 글쓰기를 배웠다. 현재는 일주일의 절반을 강원도 홍천에서 생활하는데 귀촌을 한 사람들을 위한 동네작가 공모에 선정되고, 홍천군 실버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귀촌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상적이었던 경험들이 많아요. 어린이들의 그림을 꾸준히 싣고 있고요. 지역에서 30년 넘게 발달장애 자녀를 키운 어머니를 인터뷰한 사례도 있어요. 지역 여성청년들이 환경, 인권, 먹거리, 기후위기 등에 대해 고민하며 독서도 하고 실천을 고민하는 모임을 다루기도 했어요.” 박경숙 대표의 말이다. 

“주민자치에 필요한 현장 목소리 전달 역할”

음민서 운영위원은 “최근 상일동 어르신들을 인터뷰했어요. 이분들이 동네에 40년 이상 거주하면서 주민자치회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걸 느꼈어요”라고 전한 뒤 ‘마을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런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에서 주민자치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필요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받는 것에 공백이 있잖아요. 이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마을미디어가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앞으로도 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11년 된 서울마을미디어 지원사업의 일방 폐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마을미디어 사업은 허브 역할을 맡는 민간기구인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위탁 받아 사업 전반을 운영하며 단체지원(공모) 사업을 통해 개별 마을미디어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글쓰기 강좌는 수익 사업이 아니고, ‘마을담’ 제작자들은 인건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서울시 지원 덕에 ‘마을담’이 폐간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부수를 찍어낼 수 있었다.

▲'마을담' 표지 갈무리
▲'마을담' 표지 갈무리

“행정 정책 변화에 따라서 이렇게 뿌리를 내려온 사업이 한 순간에 무 자르듯 잘라지는 것 자체가 너무 허무하죠. 지금은 원점으로 왔어요. 당장 다음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근본적 고민을 하게 됐어요.” 박경숙 대표의 말이다.

음민서 운영위원이 이어 말했다. “‘마을담’은 차곡차곡 활동의 성과들이 쌓여왔기에 그래도 마을 내에서 어느 정도 브랜드가 있거든요. 앞으로는 어떻게 더 확산하고 기반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얘기해야 되는 단계였어요. 마을미디어 전체 중 일부가 조금 부족하다거나, 예산에 비해 성과가 잘 안 드러난다는 이유로 전체 사업을 없앤다는 건 너무나 편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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