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이 위기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 기자들과 김만배 사이에 억대의 돈이 오갔고 누군가는 명품 선물을 챙겼다. 언론다운 언론을 이룰 역사적 소명을 지닌 신문의 기자까지 들어있어 충격은 더 컸다. 김만배가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골프를 칠 때마다 100만 원 또는 수백만 원 봉투를 무시로 돌렸다는 말까지 ‘정치 검찰’은 솔솔 흘리고 있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삼 위기를 들먹이기도 남우세스럽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언론 위기를 진단해왔다. 문제는 언론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물론 언론을 살리자는 호소까지 다름 아닌 언론이 뒤틀어온 데 있다.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가 제작거부 투쟁 40돌을 맞아 토론회를 열었을 때다. 현장에 오지도 않은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다음날 일제히 기사화했다. 기사 첫 문장에서 내 이름 앞에 각각 “진보 언론학자”(조선일보), “진보성향 학자이자 언론개혁운동을 이끌어온”(중앙일보), “대표적인 진보 논객으로 꼽히는”(동아일보)이라고 과도한 수식어를 쓴 뒤 공영방송의 편향성을 우려했다고 보도했다(2020년 6월11일).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줄기차게 공영방송 고위간부들을 비판할 때는 모르쇠를 놓던 언론들이다. 독자와의 깊은 소통을 위해 교양서와 소설들을 출간해온 지난 30년 내내 단 한줄 소개조차 인색했던 조중동이 느닷없이 나를 부각한 기사를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세 신문 모두 내가 공영방송의 편향성을 비판하고 그 사례로 저널리즘토크쇼와 뉴스공장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날 발표한 주제는 공영방송도, 김어준도 아니었다. ‘저널리즘 복원의 길’이다. 조중동 신방복합체 비판에 무게가 실린 발표문을 온전히 읽지도 않고 조중동 보도만 본 사람들은 지금도 편의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당시 일부 ‘문파’들은 나를 비난했다. 그래서다. 정작 발표문에서 조중동 신방복합체를 개혁하기 위해 제안한 정책들은 묻히고 말았다. “미디어개혁 논의가 정파적 관점이나 진영논리로 오해 또는 이해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저널리즘 복원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1974년의 10.24자유언론실천선언, 80년의 제작거부 투쟁의 정신에 근거해 미디어위원회를 구성하는 일은 ‘촛불 정부’라면 당연히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반응은 전혀 없었다. “3대 신방복합체와 3대 방송의 언론인들 대부분은 이미 20대 80의 한국사회에서 20 안에 몸이 들어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때, 사회적 약자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억강부약의 저널리즘 본령을 잃기 십상”이라는 경계도 파묻혔다. 어떤 언론도 소개하지 않은 발표문의 결론을 지금이라도 모든 언론인과 나누고 싶다.

“기자, PD, 아나운서들 스스로 짚어보기 바란다. 내 신문, 내 방송에서 비정규직의 차별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슬픔은, 출산을 꺼리는 여성들의 비애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유족들의 통곡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잃어가는 건강과 행복은, 비싼 대학등록금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삶은 얼마나 담겨 있는가. 권력과 자본에 견주면 거의 목소리 없는 그들의 목소리는 내 신문, 내 방송에서 충분이 소통되고 있는가. 저널리즘의 위기도 언론개혁운동의 위기도 핵심은 ‘민중 망각’이다.”

▲ 단재(丹齋) 신채호. 사진=위키백과
▲ 단재(丹齋) 신채호. 사진=위키백과

옹근 100년 전인 1923년 1월이다. 우리 언론사에 별처럼 빛나는 단재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했다.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위원으로 촌철살인의 글을 쓰다가 망명한 단재는 의열단과 손잡고 쓴 선언문에서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자고 외쳤다. 이를 위해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해야 한다며 독립혁명의 주체인 “민중의 각오”를 힘차게 촉구했다.

단재가 자신의 철학을 핏빛으로 외친 조선혁명선언을 다시 옷깃을 여미고 읽으며 쓴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오늘,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와 독자의 각오를, 언론과 정치의 살풍경을, 한국 언론이 사로잡힌 위기 불감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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