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파문이 언론계를 휩쓸고 있다.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 간부들이 대장동 일당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거액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 언론사는 돈 거래 당사자들을 해고하거나 직무에서 배제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며 후속 조치에 나섰다. 대장동 개발 비리 보도에 관여할 수 있는 언론사 간부들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 인물인 김씨와 돈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언론계가 불신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겨레는 지난 9일 김씨에게 9억 원을 빌린 편집국 신문총괄 A 기자를 해고했다. 취업규칙상 청렴공정 의무와 품위유지 위반, 한겨레 윤리강령 위반, 취재보도준칙의 이해충돌 회피 조항 위반 등이 해고 사유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A 기자는 서면 소명을 통해 “청약을 고민하던 차에 김씨로부터 2019년 5월 3억 원을 비롯해 총 9억 원을 모두 수표로 빌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9억 대여’는 당초 한겨레가 A 기자의 구두 소명을 받고 대외에 알린 금액 6억 원과 큰 차이가 있다. 김현대 한겨레 대표는 이날 조기 퇴진 의사를 밝혔고, 류이근 편집국장은 보직을 사퇴했다. 검찰 발 보도로 촉발한 돈 거래 의혹에 조직 전체가 휘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안팎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출신 김만배씨와 A 기자의 친분은 법조기자단에서 쌓였다고 한다. 머니투데이가 법조기자단에 진입하는 과정에 출입 기자였던 A 기자가 법조를 오래 출입한 머니투데이가 군소 매체라는 이유로 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과거 무주택자였던 A 기자는 현재 소유한 서울 강남권역 소재의 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목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또 다른 대장동 일당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2019년 5월경 한겨레 기자의 집을 사줘야 한다고 하면서 나와 정영학에게 3억 원씩 가지고 오라고 했고, 실제로 줬다”고 진술한 바 있다.

A 기자는 지난해 3월 김씨와의 금전 거래 사실을 친밀한 관계인 후배 김아무개 사회부장에게는 털어놨으나 김 부장은 이를 듣고도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 사회부장은 대장동 사건 취재의 주무 부서장이다. 자사 간부의 일탈을 매체 스스로 확인하고 자정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뒤늦게 윗선에 보고한 그는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A 기자도 지난 5일 SBS 반론 취재 이후에야 김씨와의 거래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노조 한겨레지부는 10일 A 기자와 김 부장을 겨냥해 “김만배로부터 9억 원을 받았지만 이를 회사에 보고하지 않은 이(A 기자)는 신문 콘텐츠를 총괄하는 부국장이었고, 그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보고를 누락한 이는 사회부장이었다”며 “한겨레의 조직 기강이 형편없음을 방증하는 것과 함께, 편집국 간부라는 이들의 판단력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서글픈 장면이다. 두 사람 모두 간부로서 조직을 우선시하는 기본적 소양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다. 한 기자는 “너무 참담해서 화도 나지 않을 정도”라며 개탄했고 또 다른 기자는 “도덕 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출신인 김만배씨는 대법원 기자실에 오랜 기간 상주하면서 스치는 각 언론사 법조팀장들을 이른바 ‘관리’했다”며 “특히 골프가 매개였는데 A 기자도 골프를 상당히 좋아했다. 그도 골프를 매개로 한 김만배 법조 인맥에 하나의 사슬로 엮여 있던 것이다. 한겨레에도 취재원 관리를 이유로 공짜 골프를 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도덕 불감증을 되돌아볼 때”라고 지적했다.

사내외 인사로 구성한 한겨레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1일 오후 4시 첫 회의를 연다. 미디어오늘은 A 기자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도 거래 의혹을 받는 간부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자체 진상조사위를 구성했다. 오랜 친분이 있던 김씨에게 1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한국일보 뉴스부문장 B 기자는 2020년 차용증을 쓰고 이사 자금 1억 원을 급하게 빌렸고, 그동안 이자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미디어오늘에 “빌린 돈은 상환 완료했다”고 했다.

한국일보 사측 관계자는 10일 “현재 인사와 법무 차원에서 사내 진상조사위를 구성했고 진행 중이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조사결과 공지나 사과 여부 등은 확인되는 사실관계에 따라 입장을 결정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2018년 김씨에게 8000만 원을 줬다가 2019년 9000만 원을 돌려받은 C 논설위원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고현곤 편집인, 신용호 편집국장, 강종호 법무홍보실장 등으로 구성한 진상조사위를 가동했다. 고 편집인은 “현재 조사 중이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만 했다. C 논설위원은 미디어오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한겨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쇄신 목소리와 움직임이 작은 두 매체에 “현재까지 거론된 언론사 중 유일하게 한겨레만 독자에게 사과하고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민주언론시민연합)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와 언론사 간부들 사이 돈 거래에 대가성이 있는지, 돈 거래가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진 않는지 등도 이들 언론의 진상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검찰은 김씨와 언론계의 접점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씨가 법조 전문지인 법률신문과 민영통신사를 인수하려 한 정황 △김씨가 채널A 기자에게 명품 신발을 건넸다는 의혹 △김씨가 골프를 치면서 기자들에게 100만 원씩 건넸다는 남욱 변호사의 진술 △김씨가 지분을 100% 보유한 화천대유가 언론사 간부 출신들을 고문으로 영입해 급여와 고문료를 지급했다는 의혹 등이 최근 검찰에서 부상한 이슈다.

언론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기자협회는 10일 “어느 직군 보다 존경받고 정의로워야 할 기자들이 언론 윤리강령을 어기고 벌인 탈선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해당 언론사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징계 그리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한다”며 “해당 언론사의 진상조사가 모두 끝나면 기자협회 차원의 징계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기자들이 연루된 이번 사태에 깊이 반성하며 언론윤리에 대해 성찰하고 자성하는 자정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며 “그리고 저널리즘 신뢰 구축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개인의 일탈을 너무 일반화하여 언론인 전체가 부패한 것처럼 몰아가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결국 이런 문제가 터지면 철저한 진상조사와 명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외부에 높은 도덕을 요구하는 언론사일수록 날카로운 잣대로 내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언론에 성직자 수준의 윤리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기자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중잣대 문제는 계속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언론인이 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앞으로 나올 진상조사 결과도 살펴야겠지만 언론인 스스로 이번 돈 거래 사안을 ‘우리 문제’라고 인식하는 성찰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인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이런 사태가 터지면 독자들은 언론사 보도의 저의마저 의심하게 된다. 독자들의 불신이 쌓이는 것”이라며 “최소 보도 진실성 만큼은 사수하려면 언론사 상호 비평과 비판이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한 언론사에서 인사가 발표됐을 경우 타사가 해당 인사 이력과 함께 과오를 적시하여 보도한다면 서로에 대한 감시 활동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고, 결국 언론인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2021년 9월2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 입구 모습. 당시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와 관련자들의 사무실 및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 2021년 9월2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 입구 모습. 당시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와 관련자들의 사무실 및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검찰이 ‘언론인 수사’를 언론에 흘리며 대장동 특혜 의혹이라는 본류를 흐리고 있다고도 우려한다. 대장동 비리 의혹을 탐사 보도 중인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는 “대장동 수사는 크게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에 로비가 있었느냐’와 로비 대상자 명단인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가 핵심이었다”며 “김만배씨와 언론 유착 사건도 매우 중요하지만 남욱 변호사 진술과 정영학 녹취록 등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는 언론인뿐 아니라 검사 판사에 대한 로비 정황과 현금 제공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봉 기자는 “검찰은 50억 클럽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로 수사 인력 부족을 꼽는데, 갑자기 언론계로 수사를 넓히고 있다”며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에게 돈 받은 검사가 많다고 들었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검찰이 검사를 상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구용회 CBS 논설위원은 “기자든, 판사든, 검사든 김만배씨 돈을 받았다면, 검찰이 조용하고 예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뒤 알리면 될 일”이라며 “어제오늘 급박하게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수표 추적을 통해 인지하고 있던 언론인 관련 수사 정보를 조금씩 흘리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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