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68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정부의 한 해 국정운영 목표와 계획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자리이자 중요한 정치일정으로 간주됐습니다.

처음엔 기자가 사전에 배정받은 질문을 던지면 대통령이 준비한 대로 답변하는 ‘각본 회견’이었지만, 국회에서 국정운영 방침을 일방 전달하던 ‘연두교서 발표’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권마다 부침을 겪었는데 전두환 정부는 신년 기자회견을 없애고 국회 신년 국정연설로 대신했으며, 노태우 정부는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각본 회견’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에 들어서 비로소 각본 없는 신년 기자회견이 자리 잡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이어 집권 2년 차에도 ‘국민과의 대화’를 열어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국정운영 방침을 비롯해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방향을 전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포함해 임기 중 약 150회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국민과의 대화’에 4차례나 출연할 만큼 가장 적극 소통한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이명박 정부는 신년 기자회견을 없애고 참모들만 배석한 자리에서 신년 국정연설로 대신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각본 회견’으로 지적받았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인 1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인 1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 차 기자회견 신년사 발표로 대신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특히 대통령이 구상한 국정운영 방침을 본격 실행에 옮기는 집권 2년 차 신년 기자회견은 다른 어느 때 기자회견보다도 국민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잠정 보류한 가운데 1월1일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출입기자 없이 일부 참모만 배석한 상태에서 약 9분간 ‘노동·교육·연금 등 3대개혁에 매진하겠다’는 신년사를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신년 기자회견을 질문 없는 신년사 발표로 대신한 것인데요. 김영삼 정부 이래 집권 2년 차를 맞은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 처음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한 1월1일 KBS, MBC, SBS 등 지상파3사와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를 살펴봤습니다. 신년사 발표 다음 날인 1월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지면도 살펴봤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은 물론 취임 이후에도 줄곧 소통을 강조한 것과 달리, 신년 기자회견을 질문 없는 신년사 발표로 대신했는데 언론은 조용했습니다.

KBS‧종편3사‧보수지, ‘기자 없는 신년사’ 보도 안 해

방송은 지상파3사 중 유일하게 KBS와 TV조선·채널A·MBN 등 종편3사, 신문은 조선일보·중앙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가 신년사 주요 내용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신년사 발표가 출입기자 없이 일부 참모만 배석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 1월1일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1월2일 신문지면 ‘기자 없는 신년사’ 보도여부.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월1일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1월2일 신문지면 ‘기자 없는 신년사’ 보도여부. 표=민주언론시민연합

MBC는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1월1일 이정은 기자)에서 “출입기자들은 참석하지 못해 질의응답도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SBS는 <“노동, 교육, 연금 개혁 미룰 수 없다”>(1월1일 한상우 기자)에서 “기자회견이 아니어서 기자들도 없었다”, “기자 없는 신년사 발표는… 참모 10명만 배석한 가운데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JTBC는 <“기득권 유지에 미래 없다” 개혁 드라이브>(1월1일 최수연 기자)에서 “당장 신년 기자회견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실은 “업무보고가 많아서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을 하지만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상황에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회 비판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기득권 유지‧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 없다” 3대 개혁 추진‧수출 강조>(1월2일 김현빈 기자)에서 “참모진만 배석한 가운데 9분 20초가량 (신년사를) 낭독하고 끝났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불통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비판 목소리를 분명히 했는데요. 경향신문은 <사설-‘통합’ 외면하고 ‘반노동’만 반복한 윤 대통령 신년사>(1월2일)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듣기 싫은 말은 안 듣겠다는 것인가”, “불통의 국정운영은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도 <사설-포용‧공감 없는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신년사>(1월2일)에서 “들어야 할 ‘귀’는 닫아버린 채 (윤 대통령)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낸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따라다닌 대표적 비판이 ‘불통 대통령’”인데 “집권 2년차가 됐어도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일갈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기자 없는 신년사 발표’는 설명했지만,  어떠한 평가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발표 비판한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발표 비판한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대통령 독점 인터뷰한 조선일보, ‘각본 없었다’ 띄우기

한겨레는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은 계획에 없고, 그 대신 특정 언론과 독점 인터뷰를 했다”고 지적했는데요. 윤 대통령과 독점 인터뷰를 진행한 ‘특정 언론’은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1면부터 5면에 걸쳐 대통령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대통령이 9분간 신년사에서 발표하지 않은 집권 2년 차 국정운영 계획을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에서만 밝힌 것인데, 경향신문과 한겨레 외 다른 신문의 비판은 없습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미 언론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 연말 조선일보와 1시간 40분가량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말입니다.

▲ 1월2일, 윤석열 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일보
▲ 1월2일, 윤석열 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일보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는 남북관계, 노동‧연금‧교육 개혁, 경제‧부동산 정책, 정치‧사회·외교 등 각 분야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전달하는 데 방점이 찍혔으며, 비판적 질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윤 대통령 일방의 주장이 비판 없이 전달되기도 했는데요. <“대통령다움이 어떤 건지 고민… 지역 따라 중대선거구제 검토 필요”>(1월2일)에서 ‘대통령 가족 수사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몇 년이 넘도록 제 처와 처가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뭐라도 잡아내기 위해서 무슨 지휘권 배제라고 하는 식의 망신까지 줘가면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는 “4억9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잔고증명서 위조’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로 민사소송에서 패소했으며, 최은순 씨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관성은 뉴스파타 보도를 통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긴 어려운데 조선일보엔 이러한 반박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한편 조선일보가 윤 대통령을 띄워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 기사도 있습니다. <“아내도 할 일 적지 않더라…겸손하게 잘하라고 했다”>(1월2일)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답변 자료 없이 자기 생각을 밝혔다”, “책상 위에는 메모지와 필기도구뿐이었다”고 ‘각본 없는 인터뷰’를 강조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는 김건희 여사와 반려동물, 대통령 체력관리법 등 신변잡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는 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신년사 발표로 대신한 데 대한 비판도 찾아볼 수 없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2022년 신년 기자회견을 취소했을 때와는 정반대입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상황 어렵다고 신년 회견 안 한다는 문, 끝까지 비겁할 건가>(2022년 1월25일)에서 “국민은 문 대통령이 이 많은 현안들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궁색한 처지에 몰리면 국민 앞에 나와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뒤로 숨어 모른 척해왔다”, “비겁한 행태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다”며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논조를 보였습니다.

한국경제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포기해선 안 될 책무”라더니

한국경제 역시 문재인 대통령 때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국경제는 <사설-노동 교육 연금개혁에 미래세대 명운이 달렸다>(1월2일)에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부문의 구조개혁 의지를 천명”했는데, “장밋빛 먼 미래 청사진이나 현실성 떨어지는 ‘소통’ ‘타협’ 같은 뻔한 말 대신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실행해야 할 3대 부문 개혁을 강조한 것은 방향성이나 우선 순위에서 적절”하다며 윤 대통령 신년사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신년 기자회견을 신년사 발표로 대신하거나 대통령이 특정 언론만 대상으로 인터뷰한 데 대한 비판은 없는데요.

하지만 한국경제는 지난해 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선 <사설-대통령 신년회견도 취소… 비대면으론 왜 못 하나>(2022년 1월26일)에서 “현안에 정통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오가는 기자회견은 가장 적극적인 대국민 소통수단”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오미크론 변이 대응을 이유로 기자회견을 취소한 것은) ‘소통 대통령이 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에 정면 배치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화상회견이라면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국민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차고 넘친다”며 “기자회견을 통한 대국민 소통은 대통령으로서 포기해선 안 될 최소한의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취소 및 특정 언론인 대담을 비판한 한국경제(2022년 1월26일, 2022년 4월16일)
▲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취소 및 특정 언론인 대담을 비판한 한국경제(2022년 1월26일, 2022년 4월16일)

한국경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를 두고도 <사설-신년 회견도 안 하더니 손석희와 대담한 대통령>(2022년 4월16일)에서 “기자회견 대신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대담한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많은 기자가 참석하는 기자회견보다 질문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내 편’ 언론인을 골라 껄끄러운 질문을 피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껄끄러운 사안에 대해선 뒤로 숨는다는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는 마당에 끝까지 ‘소통’ 아닌 ‘쇼통’을 남기는 것 같아 유감”이라며 자극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는데요. 이렇듯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취소와 특정 언론인 대담에 목소리를 높이던 한국경제는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발표와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엔 조용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공동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에 따르면 “윤리적 언론은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며 ‘공정보도’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신년사 발표로 대신한 데 대한 언론보도는 ‘공정보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1월1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7>, 채널A <뉴스A>, MBN <뉴스센터> / 2023년 1월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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