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플랫폼의 다변화로 콘텐츠 이용에 관한 선택권이 다양해졌지만 장애인은 OTT로 콘텐츠 하나 보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보편적인 장애인 미디어 접근권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관련 업계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은행회관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관한 ‘2022 장애인 미디어 접근 콘퍼런스’가 열렸다.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과 학계, 미디어 업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장애인에 대한 미디어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최선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이날 “올해 한 기사를 보니 한 시각장애인 분이 OTT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보고 있다고 돼 있었는데, 두 가지가 다 외국 플랫폼이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외국과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며 “장애인을 소비자로 보느냐 시혜대상으로 보느냐 사업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콘텐츠를 어떻게 제작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가 지난 8월 4개 OTT(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일부.  재생 버튼 대체 텍스트가 갖춰지지 않은 '티빙'과 이를 갖춘 '넷플릭스' 비교 이미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가 지난 8월 4개 OTT(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일부.  재생 버튼 대체 텍스트가 갖춰지지 않은 '티빙'과 이를 갖춘 '넷플릭스' 비교 이미지. 

실제 시각장애인은 OTT의 기본 기능도 이용하기 어렵다. 지난 8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가 4개 OTT(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시각장애인이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넷플릭스의 앱 설정변경 뿐이었다. 안드로이드 티빙·왓챠 iOS 웨이브·티빙·왓챠에선 동영상 시청도 불가했다.

최선호 팀장은 “(국내 OTT는) 동영상 재생 버튼을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문구)가 제공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이 재생 버튼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동영상 시청 중에는 일시 정지할 수 있는 버튼, 음량 조정 버튼, 설정 버튼 등이 화면에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재생 버튼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는 넷플릭스도 영상 재생 시점을 10초 앞으로, 또는 뒤로 이동하는 버튼은 이용하기 어렵다.

국내 OTT 업계의 경우 장애인 이용을 위한 기술을 개발·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콘텐츠 웨이브는 오리지널 드라마 및 HBO·NBC유니버설 등 주요 해외 시리즈에 자막 선택 기능을 적용하고, 현재 자막 중심의 서비스를 수어와 화면해설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컨소시엄을 통한 인공지능(AI) 자막 제작·편집 기술도 개발 중이다.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팀장은 “AI기술을 통해서 자동자막을 만드는 기술이 진행되고 있고 내년부터는 시범단계 운영을 시작하면서 점차 모든 콘텐츠로 기술 적용을 늘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노 팀장은 이어 “규제와 의무보다는 사업자의 자율적인 부분을 인정해주고 정부도 사업자 노력을 드라이브 걸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며 “OTT 시장은 철저히 자본에 의한 경쟁시장이다. 자본이 있는 만큼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고도화를 통해 이용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모바일 기기 화면에 여러 이미지가 떠 있는 모습 ⓒgettyimagesbank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모바일 기기 화면에 여러 이미지가 떠 있는 모습 ⓒgettyimagesbank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도 “정부, 사업자, 이용자 등 이해관계자가 주기적으로 모여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안건에 대해 논의하며,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등 상시적이고 긴밀한 협력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팀장은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의 장애인의 미디어 서비스 이용 실태조사와 의견 청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에 대한 법률 및 정책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미디어접근기본법’의 구체적 내용이 공유되고 관련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방통위는 조만간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 강화와 종합계획 수립 및 정책지원을 위해 통합·포괄적인 장애인미디어접근기본법 제정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 팀장은 이 법안과 더불어 국회에 발의된 디지털포용법(강병원 의원안 및 박성중 의원안)을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장애인 대상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김병련 영등포고등학교 교사는 발달장애 학생들의 미디어 소비 행태 특징으로 △여가생활을 주로 미디어에 의존하기에 사용 시간은 늘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검색 능력과 활용 능력은 부족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적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에 알고리즘과 필터버블에 갇히는 경우가 많음 △대다수의 보호자나 교사는 소비하는 콘텐츠보다 사용시간에 관심이 더 많은 현실 등을 꼽았다.

김 교사는 “장애학생의 미디어 환경, 특성, 과몰입 등 관련 연구나 통계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설문자료도 없는 상황”이라며 “발달장애인 플랫폼 ‘다모아’처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실생활과 연계한 장애 영역별 수준별 맞춤형 교육, 그리고 미디어체험 활동과 함께 졸업 후 평생교육 차원에서도 꾸준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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