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새벽. SPC 그룹 계열사 SPL 작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SPL의 정규직 20대 여성 A씨는 이날 오전 6시 평택시 팽성읍 추팔공업단지에 위치한 SPL 작업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 빠지면서 몸이 끼어 끝내 숨졌다. 경기도와 인천시를 취재하는 신문사 ‘경인일보’는 오전 10시 해당 소식을 ‘단독기사’로 가장 먼저 알렸다.

해당 사고를 보도한 경인일보 입사 6개월 차 김산 사회교육부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인 14일 금요일 SPL 공단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 손끼임 사고가 있었는데 현장 치료도 없었다’는 제보를 받았고, 피해 당사자 연락은 닿지 못한 상황이었다. 피해자와도 만나보고,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기 위해 가능하면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현장을 찾았다.”

‘손끼임 사고’로 전날도 찾았던 SPL 공단

지난 5일 경인일보 수원 본사에서 만난 김산 기자는 당시 SPL 공단의 모습을 ‘삭막함’으로 묘사했다. 처음 가본 SPL 공단은 삭막할 만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SPL이 공단 내에서 거의 제일 넓은 구역을 차지하는 공정이다. 원래 다른 공단 취재할 때는 식당 다니는 분들을 통해 얘기를 듣는 경우도 있는데, 밖에 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들어갈 구멍이 진짜 하나도 없었다. 당시에는 의심을 하고 있었으니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예 막고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시간 정도 배회하자, 지나가는 노동자 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몇만 제곱미터 정도 되는 넓이에, 공정이 다양하고 교대 체계도 다르다보니 대부분 사고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분들을 통해 노조와 닿게 돼서 연락처를 교환했다.” 하루를 꼬박 SPL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제보와 관련한 다른 사안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날 목표했던 취재를 다 하지 못한 김 기자는 내일도 계속 취재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퇴근했다. 

▲ 15일 SPC 계열사 작업장에서 20대 여성 작업자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중앙 폴리스 라인이 쳐진 문 안쪽 공간이 사고가 발생한 배합기가 자리 잡은 곳이다.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 15일 SPC 계열사 작업장에서 20대 여성 작업자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중앙 폴리스 라인이 쳐진 문 안쪽 공간이 사고가 발생한 배합기가 자리 잡은 곳이다.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아침 9시쯤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새벽에 교대하던 사람들 얘기로, 누가 소스 섞는 기계에 끼어서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김 기자는 바로 전화해 내용을 파악했고, 경찰서에 확인해 ‘[단독] SPC그룹 계열사 작업장에서 20대 여성 ‘소스 배합기’에 빠져 숨져’ 기사 첫 보를 내보냈다. 

다시 찾은 SPL 공단 현장 분위기는 불과 몇 시간 전인 전날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차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김산 기자는 현장 스케치 후 바로 빈소로 향했다. 빈소에서 만난 동료작업자들은 현장에 대한 구체적 증언을 해줬다. “내부 배합공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인이 일하는 환경은 어땠는지 사실만 전해들으려는 건조한 취재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해주던 50대 남성 작업자는 결국 울먹였다. “본인의 딸뻘인 고인이 하기에 현장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했는지 이야기하면서 그분과 나 누구 하나 모르게 울컥했다. 원래는 철저하게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로 현장을 다녔는데, 피해를 받은 노동자분의 입장에서 좀더 폭넓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 17일 오전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에 작업 도중 숨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 15일 SPC 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이 소스 배합기에서 빠져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경인일보 김도우기자. 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 17일 오전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에 작업 도중 숨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 15일 SPC 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이 소스 배합기에서 빠져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김산 기자는 그날로 매일 평택을 오고 가기 시작했다. 첫 단독보도를 내보낸 후 한달은 계속 SPC 사안만 취재했다. 일주일 전 일어난 손끼임 사고 피해자 B씨와도 연락이 닿았다. “B씨는 파견근로자로, 들어와서 일한지도 거의 한달밖에 안 된 약자 입장이었다. 처음엔 피해 사실을 표출하는 것에 난처해하셨는데, 공단 내에서 사고가 일어난 흐름을 보면서 ‘이건 문제다’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취재에 응해주셨다.” 

이밖에도 김 기자는 동료작업자들이 말한 평소 SPL의 고된 업무환경, 사고 발생 뒤 SPL이 생산량 충당을 위해 대구로 파견 작업을 지시한 사실, 사고 원인과 대책 분석 등 후속보도를 이어갔다. 

무응답으로 일관한 SPC, 단독 보도 1시간 뒤 제목 수정 요구

보도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SPC 취재였다. SPC측은 해당 사고에 대해 묻는 김 기자의 질문에 아예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무응답을 회사의 기조로 삼은 게 아닌가 체감했다. 기사 하나를 쓸 때 꼭 한 시간 정도는 SPC 홍보팀 연락처 다섯군데에 계속 돌려가면서 전화했지만 아예 안받았다. SPL 관리직책 사람들, 현장 일선에 있던 관리자들까지도 연락이 되면 바로 끊어버렸다.”

단독 기사가 나가고 약 1시간 뒤 SPC측에서 ‘제목 수정’을 요구를 하는 일도 발생했다. SPC 홍보팀측은 경인일보 광고 부서를 통해 ‘‘SPC’ 이름을 기사 제목에서 빼달라’며 ‘정확히는 SPC가 아니고 SPL이다’라고 말했다. “기사가 출고되고 한 시간 뒤에 SPC측에서 ‘SPC’를 제목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김 기자는 곧바로 사회부에 알렸고, 사회부는 기사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처음 이 사실을 입수하게됐을 때부터 이런일이 있을까 예상은 했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진짜 문제적인 상황이구나 확신을 갖게됐다. 취재욕구가 더 불타올랐다.”

▲
▲경인일보 '[단독] SPC그룹 계열사 작업장에서 20대 여성 '소스 배합기'에 빠져 숨져' 기사 갈무리.

SPC 안전사고 매뉴얼의 실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대책위원회처럼 차려진 기구에서 조사로 발표된 내용은 있었는데, 기업은 취재에 응해주지 않고, 내가 닿을 수 있는 취재력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매뉴얼은 없었다. 다만, 매뉴얼이 사실상 없는 것처럼 운영됐기 때문에 확보를 못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 공정을 알려줬던 작업자들에게 항상 안전 매뉴얼에 대해 물어봤는데도, 다 모르거나 ‘체계가 있다고는 하는데, 매뉴얼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구조적 문제가 개선이 되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방지대책들, 입법적 개선,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더 취재해야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SPC 취재를 더 이어가야한다는 책임감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독자한테 가기까지 하나의 큰 관문이 있는 느낌’

단독기사가 나간 날은 경인일보가 포털 경인지역 입점 매체에서 최종 탈락 통보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열심히 취재에만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탈락됐는데 우리 회사는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날 내가 겪었던 상황이 경인일보가 처한 현실을 요약하는 하루였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 12월 5일 경인일보 수원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김산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12월 5일 경인일보 수원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김산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김 기자는 “이번 사건도 내가 썼던 기사가 올라가자마자 이슈화된 것이 아니라, 포털 입점 매체들이 몇 시간 뒤부터 그걸 받아서 쓰면서 확산됐다. 이후로도 내가 보도하는 것들이 바로바로 이슈화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 써야면 알려지는 상황이 사건 기자, 현장 기자로서 평소에도 많이 답답하다”고 전했다. 

‘독자한테 우리 정보가 가기까지 하나의 큰 관문이 있는 느낌.’ 김 기자가 묘사한 경인일보의 현 상황이다. “‘큰 관문이 넘겨져야만 일반적인 뉴스가 되는구나’라고 항상 생각한다. 관문이 공익성이나 저널리즘의 기준에서 세워진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데, 그 환경에서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하기 때문에 활로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회사차원에서의 고민도 크다.”

김 기자는 “결국 지역민들에게도 손해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경인일보는 지역민들에게 해당되는 지역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노력해 오고 있는데, 잘 유통되지 못하는 구조이다보니 이 관문을 어떻게 잘 뚫느냐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이지만 ‘서울’ 아닌 지역 언론의 어려움

수도권이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의 언론으로써 겪는 어려움도 크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역’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대신 서울과 같은 ‘수도권’이라고 인식하곤 한다. 서울과 일일생활권으로 묶여 지역언론으로써 설 자리가 더 좁은 것이다.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는 거주민이 대부분인 경기도와 인천시의 주민들은 ‘우리의 지역’이라는 인식이 덜해 지역 특성을 살린 취재, 기사 유통에도 어려움이 있다. 거리상 중앙 언론에서도 직접 취재가 가능하기도 하다. 

김산 기자는 “그럼에도 경기도, 인천만의 고유의 지역정체성이 있다”며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쓰레기 매립지나 혐오 기피시설들이 배치되는 문제 등 여러 다양한 지역이슈, 지역정체성이 있다. 가닥처럼 퍼져있는 지역정체성을 모으는게 우리 지역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역만의 이슈를 기획 등으로 많이 보도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역정체성을 살리는 우리의 과제가 잘 이뤄져야 전체 수도권 중심주의를 탈피하는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