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나누지 않거나 풍경만 나오는 장면은 건너뛴다.”
“주인공 서사만 관심 있기 때문에 주인공과 관련 없는 장면은 빨리감기한다.”
“원작을 봐서 원작에서 좋아하는 부분만 보통 속도로 본다.”
“요즘은 시시한 작품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선별하지 않으면 다 볼 수 없다.”
“해피엔딩인 것을 빠르게 확인하고 다시 보고 싶으면 그때 제대로 본다.”

책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이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청 습관을 관찰하고 이를 젊은 세대 특징과 연결시켰다. 많은 이들이 OTT나 유튜브 콘텐츠를 볼 때 ‘빨리감기’ 기능을 사용할 것이다. 2019년 8월 넷플릭스도 스마트폰 및 태블릿용 애플리케이션에 재생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빨리감기’는 영상 콘텐츠를 볼 때 필수가 됐다. 저자는 사람들이 빨리감기 하는 이유로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등을 꼽았다.

▲책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표지. 
▲책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표지. 

‘작품’이 아닌 ‘콘텐츠’가 된 시대, ‘빨리감기’는 필수 기능

저자가 빨리감기 이유로 꼽는 것 중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와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월정액 자동이체로 한 달 이용권을 구입할 때는 돈을 지불한다는 감각이 옅어진다. 그러니 영상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빨리 감기든 건너뛰든 상관이 없어진다”(62p)고 말한다.

세 번째 이유인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배경은 뭘까. 저자는 일본에서 평단의 높은 평가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한 드라마 사례를 언급하면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는 관객이 스스로 해석해야 하며”(81p), “설명이 부족하면 불친절하다고 느끼고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는 한 라이트 노벨 편집자 말을 인용한다. 콘텐츠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웹소설이나 만화 등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들이 늘어났는데, 연출자가 스스로의 해석 없이 ‘원작에 충실해야만’ 시청자 환호를 받는 현상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시청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저자는 마블 세계관이 인기가 많은 이유에 대해 “이해가 되는 사람은 되는대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대로 작품을 즐길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마블의 개별 작품은 복잡한 생각 없이 화려한 히어로 액션 영화 혹은 팝콘 무비로 즐길 수 있는 반면 정밀하게 구축된 플롯이나 복선, 숨겨진 설정, 사회 비평적 측면에 손을 대면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늘어난다.(97p) 결국 다양한 성향의 독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이 된다.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책의 하이라이트는 빨리감기 시청 습관을 Z세대 특성과 연결짓는 후반부다. 우선 어린 세대일수록 빨리감기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한다. 2021년 3월 일본 리서치 회사 크로스 마케팅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69세 남녀 중 빨리감기를 해본 사람은 34.4%였다. 20대 남성이 54.5%로 가장 높았으며 20대 여성이 43.6%로 뒤를 이었다. 그 외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어릴수록 빨리감기 기능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고 결론을 낼 수 있다.

Z세대는 인터넷과 친숙하기 때문에 정보 수집에 강하고, 이들에겐 정보 수집을 잘하는 사람이 곧 유능한 사람이다. 콘텐츠를 하나의 ‘정보’로 여기는 까닭이다. 또 이들은 큰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강요 받았기 때문에 특정한 콘텐츠나 아이돌을 좋아함으로써 자기 개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전에는 ‘오타쿠’가 되는 이유가 하나의 대상을 깊이 알고 싶어서였다면 Z세대는 마음의 안식처를 얻고 싶은 욕구가 앞선다고 분석한다. 정확히 말하면 ‘안식처가 될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그것이 자신을 개성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어 실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119p)

이들은 인터넷 장점을 잘 알고 있지만 SNS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감상을 말하면 비웃음을 사거나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상처 받는 것에 더 예민하고, 창피 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제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냈기에 알수 없는 앞날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성향도 짙다. 결국 상처와 스트레스에 취약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시시한 작품을 골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결국 ‘실수’에 포함되며 작품을 찾느라 멀리 돌아가는 길이나 ‘나쁜 시간 가성비’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기질과 직결됐다는 분석이다. (135p) 저자는 그들이 받은 교육과 경제 상황을 돌아보며 어쩔 수 없는 성향임을 설득한다.

신문과 평론은 외면 당하고 ‘과거 회귀물’은 환영 받는 이유

최근에 사람들은 ‘과거 회귀물’에 열광한다. 저자가 말하길, 회귀물은 “‘현대를 사는 일반인이 다른 세계로 굴러 들어가 현대의 지식, 경험, 기술을 살려 그 세계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곧 우위에 서는 문명이 열위에 있는 야만을 지배 및 계몽한다는 태도”다. “독자는 한순간도 진흙탕을 맛보고 싶어하지 않는다.”(146p) 즉, 회귀물은 ‘전지전능한 주인공’이 주는 우월감과 스트레스 해소가 핵심이라는 것.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과거 회귀물 드라마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과거 회귀물 드라마 JTBC ‘재벌집 막내아들’.  

반대로 신문이나 평론은 싫어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절대로 폄훼당하고 싶지 않다’, ‘부정적인 평론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뿐 아니라 시청 방식에도 적용됐다. 누가 이야기를 한 것이든, 단순히 인터넷 기사이든 한 개인의 의견을 접한 순간 마음이 동요하고, 강요 당한다고 느낀다. (...) 특히 Z세대는 학교와 사회로부터 개인에 관한 민감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뒤집어 보면 이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배려 없는 지적을 못 견뎌한다는 말과 같다.”(181p)

책은 영화를 작은 화면으로 집에서 보는 것, 더빙으로 보는 것, 음악을 앨범이 아닌 조각으로 듣는 것 등은 모두 기성세대가 비판해온 감상 방식이라는 지적하면서 콘텐츠 공급자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묻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작품의 공급자 측이 주도해서 진행해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비즈니스 기회가 확대되고 감독과 배우 스태프를 포함한 제작진이 그 경제적인 이득을 누릴 수 있기 때문”(220p)이라고 전한다. ‘빨리감기’가 필수인 이들과 ‘빨리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모두가 생각해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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