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윤석열 대통령이 첫 국빈 만찬을 기존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졌다. 대통령실이 앞으로도 영빈관 활용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용산으로의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이 흐려졌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저녁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국빈 만찬을 가졌다. 옛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청와대를 관람 장소로 개방했던 윤 대통령이, 국빈 만찬을 위해 다시 청와대 시설을 사용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정부 첫 국빈 만찬에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는 것은 역사와 전통의 계승과 실용적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대통령실은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청와대 영빈관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국격에 걸맞는 행사 진행을 위해 영빈관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점과 관련해선 “윤석열 정부는 취임 전 약속대로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드린 만큼 일반인 출입 통제 등 관람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며 “이번 국빈 만찬 행사 준비 때도 영빈관 권역을 제외한 본관, 관저, 상춘재, 녹지원 등은 관람객들에게 정상적으로 개방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5월 공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만찬 장소로 국립중앙박물관을 활용한 바 있다. 이번 국빈 만찬 장소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검토됐으나 경호상 문제 등 어려움에 따라 영빈관 활용이 결정됐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일 “국빈급의 내외빈들을 맞는 장소를 섭외하는데 여러 어려움들이 지금까지 많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장소들을 활용해 오고 있고, 이번에는 가장 대표적으로 내외빈을 맞을 수 있는 장소가 청와대 영빈관이라는 점에서 다각도 검토 속에서 영빈관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라고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외국 귀빈을 만약에 모셔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영빈관을) 국빈 만찬 같은 행사를 할 때 쓸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던 사례도 언급했다. 그러나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월 윤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영빈관을 “프리미엄 근현대 미술품 전시장으로 재구성”해 “‘청와대 소장품 기획전을 비롯하여 ’이건희 컬렉션‘ 등 국내외 최고 작품을 유치하고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엔 대통령실이 새로운 영빈관을 신축하겠다며 사업비 878억 원을 편성했다 철회된 일이 있다. 졸속에 졸속이 거듭돼온 것이다.
대통령실이 ‘용산 시대’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중단된 가운데 이번 영빈관 재활용 사례가 더해지면서 용산 이전의 명분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더팩트는 “윤석열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외빈과의 만찬을 위한 장소로 돌고 돌아 기존 청와대 영빈관이 낙점된 가운데 이는 대통령실 이전이 철저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매일경제,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은 “여전히 청와대 폐쇄의 당위를 주장하는 것 같은 쓸 데 없는 고집과 설득력 없는 주장을 버리라”는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SNS 주장을 기사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