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논란과 화물연대 파업 이슈를 양비적 관점에서 다룬 한겨레 외부 칼럼이 게재 거부돼 논란이다.

기고자인 한지원 작가는 한겨레 칼럼 게재 거부 입장에 “한겨레는 철저하게 ‘진영’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반발했다. 한겨레 측은 칼럼의 사실관계가 틀렸을 뿐더러 “시장 수요·공급 논리로 최저임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칼럼을 연재한 한 작가는 지난 4일 한겨레에 ‘허울뿐인 공익, 불가피한 양비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전달했다.

▲ ‘대통령의 숙제’ 저자 한지원 작가가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대통령의 숙제’ 저자 한지원 작가가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화물연대·MBC에 양비적 비판 담은 칼럼 몰고 처리

한 작가는 이 칼럼에서 “나는 요즘 사회적 갈등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서로 합의되지 않으니, 어느 편에 선들 공허하다. 힘 대결만 남는 것 같다”면서 대표적 사례로 △윤 대통령과 MBC의 갈등과 불화 △파업으로 대치한 경영계와 화물연대 등을 꼽았다.

한 작가는 윤 대통령과 MBC, 경영계와 화물연대 모두 ‘공익’을 명분 삼지만 “각자가 내세우는 공익은 모순적이거나 허울만 좋다”고 지적하며 “누구의 편에 서는 것보다 사회가 합의하는 공익을 재건하는 게 시급한 때”라고 주장했다.

원래대로면 오는 6일에 실렸어야 했으나 한겨레는 5일 게재를 거부하고 연재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이에 한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겨레와 관계를 정리했다. 데스크가 양비론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윤석열은 비판해도 문화방송(MBC) 비판은 수용할 수 없단다. 경영계는 비판해도 화물연대 안전운임제에 관해서는 조건부 비판도 수용할 수 없단다. 한겨레의 범위는 철저하게 ‘진영’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로 내게 들렸다”고 밝혔다.

▲ 5일 한지원 작가 페이스북 갈무리.
▲ 5일 한지원 작가 페이스북 갈무리.

그는 “이번 칼럼은 전용기 사건 관련 대통령과 문화방송을, 파업 관련 경영계와 화물연대를, 분량까지 맞춰서 함께 비판한 글이었다. 공익에 관해 함께 합의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우리 공동체의 사회계약을 해지할 순 없지 않느냐는 호소를 담아”라고 적은 뒤 “점점 더 진영 밖 설 자리가 좁아지는 느낌을 받아 씁쓸하다”고 했다.

한 작가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나눈 대화에서 “현재 중앙일보와 한국경제, 소위 보수언론에도 칼럼을 쓰는데 윤석열 정권을 비판한다고 그들 매체가 내게 뭐라고 하진 않는다”며 “언론사가 요청한 외부 기고에 대해 한겨레 기자가 자신의 ‘의견’을 기준으로 몰고하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부장 “최소한의 팩트 확인, 논리적 정합성 부족”

반면, 이순혁 한겨레 오피니언 부장은 칼럼의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했다. 그는 5일 “양비론은 문제가 아니다. 칼럼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팩트 확인이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한 글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테면 한 작가는 MBC에 대해 “문화방송은 정부 지원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언론사”라고 표현했는데, 이 대목이 틀렸다는 것이다. KBS가 국민이 납부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MBC는 주식회사이자 광고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상업방송이라는 점 등에서 ‘정부 지원이라는 특권’ 등 표현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화물연대 파업 명분인 ‘안전운임제’에 관해서도 이 부장은 한 작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작가는 칼럼에서 안전운임제에 대해 “경제 조건에 따라 밑바닥 계층의 이익을 훼손할 수도 있는 결점이 있다”며 “고물가와 저성장이 함께 나타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성장률이 하락해 일감이 감소할 때 고물가로 인해 운임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한 뒤 “일거리를 확보한 차주는 괜찮은 소득을 얻지만, 나머지는 일감조차 얻지 못한다. 밑바닥에 위치한 화물차주들이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일감이 줄어드는 건 외부요인(경기침체) 때문이고, 안전운임제가 있으면 그나마 일감을 받는 이는 제값을 받는데도 ‘밑바닥에 있는 차주들이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수긍되지 않는다”며 “(한 작가 논리는) 최저임금제 무용론과 똑같은 논리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 부장은 “한겨레는 외부 칼럼에서도 필자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고 생각한다”며 “어느 정도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필자의 판단이나 개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걸 전제로 글을 쓰거나 시장 수요·공급의 논리로 최저임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포용할 정도로 한겨레가 품이 넓은 회사는 아니다며 더 이상 연재는 어렵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다. 한 작가 동의를 구해 한겨레가 게재 거부한 칼럼 전문을 싣는다. 


허울뿐인 공익, 불가피한 양비론

 

나는 요즘 사회적 갈등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서로 합의되지 않으니, 어느 편에 선들 공허하다. 힘 대결만 남는 것 같다. 지난 달의 경우를 보자.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두고 한 달 내내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월 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방송 보도가 국민의 공익(국익)을 해쳤다며 취재진을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다. 언론단체들은 이를 두고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또 월 말에는 경영계가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공익을 부르짖었다. 산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이었는데, 화물연대는 자신의 요구인 안전운임제가 ‘도로 안전’이라는 공익적 목표에 기여한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익은 국민 이익의 총계다.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으로 표현되는 공리주의 명제라 하겠다. 그런데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존 스튜어트 밀은 언론의 무제한적 자유를 옹호한다. 잘못된 의견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교정될 수 있지만, 의견 자체를 억압하면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진리의 잠재적 혜택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밀의 <자유론>을 자신의 인생책으로 꼽았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행동은 밀이 말한 공익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문화방송의 보도가 공익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 자유는 공론장의 공정한 경쟁을 전제한다. 공정치 못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억압과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화방송은 정부 지원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언론사다. 민간 언론사와 달리, 신중함 또는 비당파성이라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공정하다. 실제 선진국 공영방송 대부분이 특별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문화방송은 당파적이라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검증이 덜 된 대통령 욕설 의혹을 보도했다. 나는 문화방송이 이번 건에 한해서는 공익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생각한다.

경영계의 집단 이기주의 비판은 모순적이다. 사익 추구로 공익을 달성한다는 게 경영계가 신봉하는 시장의 원칙이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의 박애심이 아니라 이기심 덕분”이라고 애덤 스미스가 말했다. 우리가 화물운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 화물차주의 이기심 덕분이며, 운송거부 역시 화물차주의 수입 극대화를 위한 선택일 뿐이다. 기업들도 종종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감산을 선택한다. 물론 화물연대 일부 조합원의 폭력 사용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쟁점은 일부의 경쟁 방해이지, 화물연대라는 집단의 이기주의는 아니다.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가 공익에 부합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노동계의 공익에 관한 관점은 존 롤스의 차등 원리와 가깝다. 즉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의 최대 이익이 보장되어야 공익(정의)에 부합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안전운임제는 경제 조건에 따라 밑바닥 계층의 이익을 훼손할 수도 있는 결점이 있다. 안전운임은 비용 증가분과 이익을 강제성 있는 최소운임에 반영한다.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 과적, 과속 같은 위험을 줄인다는 좋은 취지다. 하지만 고물가와 저성장이 함께 나타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성장률이 하락해 일감이 감소할 때 고물가로 인해 운임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확보한 차주는 괜찮은 소득을 얻지만, 나머지는 일감조차 얻지 못한다. 밑바닥에 위치한 화물차주들이 더 어려워진다. 한국경제는 수년간 고물가·저성장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타깝게도 안전운임제는 최소한 몇 년간은 공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의 결론은 공익에 관해 양비론이다. 각자가 내세우는 공익은 모순적이거나 허울만 좋다. 현대사회는 인류가 지혜를 모아 합의한 공익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이것이 ‘사회계약론’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계약이 해지되고 있는 느낌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일 뿐인 시대가 올 수 있다. 누구의 편에 서는 것보다 사회가 합의하는 공익을 재건하는 게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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