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종합일간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주요 종합일간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언론계에서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이슈가 있다. 신문사들이 공공기관의 광고를 의뢰받았는데 지면엔 엉뚱한 광고가 실린다. 신문사가 광고를 내기로 하고 받아간 돈은 국민 세금이다. 유령광고 혹은 도둑광고 사태로 불릴만한 일이다.

미디어오늘은 구체적인 실태 그리고 해결책 모색까지 도둑광고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미디어오늘 독자권익위원회는 관련 보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부실광고’ ‘세금광고’ ‘노쇼광고’ ‘선물광고’ ‘탈세광고’ 등의 용어 사용을 제안했다.

어떤 말이라도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권언유착이다. 도둑광고 사태를 키운 건 신문사 각자 이익에 골몰해 쉬쉬한 탓을 포함한 비대칭적 힘을 가진 한국 특유의 언론 환경 때문이다.

[관련기사 : 지면에서 사라진 유령 광고를 찾습니다 (10월05일) / 18개 신문사, 인천국제공항공사 정부광고 14억 바꿔치기 (10월17일) / 인천공항 신문사 광고 바꿔치기 사태에 “신문사에 돈 대준 것 아니냐” (10월18일) / 한국토지주택공사, 10건 중 5건 대규모 ‘유령 정부광고’ 적발 (10월26일) / 신문사들 ‘도둑 정부광고’, 혈세 낭비 해결책은 (11월02일) / 언론사 광고집행내역 공개 못 하겠다는 IBK기업은행 (11월07일)]

도둑광고 규모만 보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 공공기관이 2년3개월 동안 정부광고를 의뢰하면서 신문 지면에 실지 않고 집행한 광고비가 50억 원이 넘는다. 해당 기관이 의뢰한 총 광고 건수 중 도둑광고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48% 가까이 된다.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신문사를 대상으로 한 도둑광고 실태가 이렇다.

신문사는 도둑질을 한 것이고 공공기관은 눈뜨고 세금을 내준 공범인 셈이다. 의뢰받은 광고의 게재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 언론재단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공공기관-신문사-언론재단이 서로 끌어주고 눈감아주고 방치하면서 국민은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됐다.

▲ 동아일보의 정부광고 바꿔치기 사례. 동아일보는 2018년 6월29일 A32면에 인천국제공항공사 광고를 게재했다면서 증빙자료를 제출했으나 실제 지면에는 삼성전자 광고가 있었다.
▲ 동아일보의 정부광고 바꿔치기 사례. 동아일보는 2018년 6월29일 A32면에 인천국제공항공사 광고를 게재했다면서 증빙자료를 제출했으나 실제 지면에는 삼성전자 광고가 있었다.

가해자가 분명한 신문사들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건 예상했던 바이지만 공공기관과 언론재단이 피해자인양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공공기관은 광고를 의뢰해놓고 자사 광고가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도둑질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세금을 광고비로 온전히 집행하지 않고 향후 신문사 비판 보도에 대한 보험용으로 지불했다라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

이를 관리 감독할 언론재단도 신문사들이 내는 허위 증빙자료에 속았다고 하지만 실제 지면과 비교하는 수고로움을 조금만 투입했어도 거를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언론재단은 광고비 10%를 수수료로 챙겨가는데 도둑광고에서 발생한 수수료 역시 정당한 수익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비상식적 행태의 이런 권언유착이 가능한 건 유력 일간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의 우위, 그리고 이를 지적해도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는 현실 등에 기인한다. 수억 가까운 국민 혈세가 셌는데도 어떤 언론도 책임을 묻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국민 혈세 운운한 보도를 지금도 쏟아내지만 자신들이 도둑질한 사실은 은폐하면서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거나 동종업계의 잘못을 외면하는 것이다.

공공기관과 언론재단은 피해자라면서도 신문사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걸 절대 꺼려한다. 도둑을 맞은 피해는 있는데 도둑질을 한 대상을 숨겨주는 이상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기업에서 비판 보도를 막는 보험이라며 ‘협찬’이란 이름 아래 언론사에 돈을 주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종이신문 광고가 큰 효과도 없을뿐더러 특정 신문에 광고를 내게되면 다른 매체의 형평성 문제제기로 골치 아프기 때문에 협찬을 명분으로 광고 없이 돈을 주는 것이다.

이상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판을 흔들어야 한다. 언론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면 해결의 실마리를 의외로 쉽게 풀 수 있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감사원 정문. ⓒ 연합뉴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감사원 정문. ⓒ 연합뉴스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윤석열 정부 감사원이 도둑광고 사태에도 전면 나서면 된다. 국민혈세 수십억 원이 세고 있다는 사실관계를 누구 하나 부인하지 못한다. 도둑광고가 실리게 된 과정에서 범죄(배임, 사기 등)로 볼 수 있는 혐의를 적용해 조사하고 수사의뢰하면 된다. 도둑광고로 인한 피해를 바로잡겠다라고 하면 정치 편향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감사원도 억울함을 풀고 만회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감사원이 조사에 착수하면 조용했던 언론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도 사뭇 궁금하다. 적어도 언론이 표적감사라며 탄압이라고 주장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윤석열 정부 감사원이 가릴 것 없이 환영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한다. 감사원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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