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에 관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밖에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되레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고, 민주당도 법원의 증거인멸 우려 판단에 황당하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책임을 피하고 싶어 서 전 실장을 두둔하는 것이냐며 본인이나 도를 넘지 말라고 비판했다.

강영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공보판사(부장판사)가 4일 미디어오늘에 SNS메신저로 밝힌 서훈 전 실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결과를 보면,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새벽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김정민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사유로 “범죄의 중대성 및 피의자의 지위 및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고 강영재 공보판사는 전했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반발하고 나선 점이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4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서훈 전 실장을 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모든 대북협상에 참여한 최고의 북한전문가, 전략가, 협상가”라며 “한미간에도 최상의 정보협력관계를 구축하여, 미국과 긴밀한 공조로 문재인 정부 초기의 북핵 미사일위기를 넘고 평화올림픽과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 내면서 평화의 대전환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간에도 한미간에도 최고의 협상전략은 신뢰”라며 “신뢰는 하루아침에 구축되지 않는다. 긴 세월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더욱 힘이 든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다”며 “그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문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일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전달한 검찰의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수사에 대한 입장에서 본인이 직접 승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며 “당시 안보부처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획득 가능한 모든 정보와 정황을 분석하여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이른바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포되었던 부처의 판단이 번복된 점을 들어 “피해자가 북한해역으로 가게 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저 당시의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할 뿐”이라며 “안보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국가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으며,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처사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서훈 전 실장의 구속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비판하고 나섰다. 임 전 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너무도 뜻밖이고 통탄스럽다. 참으로 동의하기 어려우나 영장전담판사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민주주의의 보루’라 부르는 사법제도도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고 그 보루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실장은 “깨어있는 시민의식의 힘으로 검찰의 수사 편의성보다는 피의자의 방어권과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더 엄격하게 존중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확신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법원이 증거인멸을 구속 사유로 제시한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3일 서면브리핑에서 “모든 자료가 윤석열 정부의 손에 있는데 증거인멸이라니 황당하다”며 “검찰이 삭제했다고 주장하는 자료 역시 버젓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임 대변인은 서 전 실장의 공개 기자회견을 증거인멸 시도라고 한 검찰 주장을 두고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하기 위한 공개 기자회견이 증거인멸이라면 방어권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정권의 입맛에 맞춰 결론이 정해진 정치보복 수사는 결국 법정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3일 마지막 국무회의를 위해 국무위원들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문재인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3일 마지막 국무회의를 위해 국무위원들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문재인 페이스북

 

이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비판을 두고 법원은 별도의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강영재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는 4일 오후 서훈 전 실장 구속으로 ‘사법제도에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수사 편의성 보다 피의자 방어권과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임종석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한 미디어오늘 질의에 SNS메신저 답변을 통해 “결국 재판 관련 사항이어서 답변을 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이어 법원 결정가지 직접 비판하고 나선 데에는 검찰의 수사 대상에 본인이 포함되더라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반발의 의도를 문제삼으며 재반박에 나섰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구두논평에서 문 전 대통령의 입장 발표를 두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평범한 우리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것도 모자라 국가가 나서 자료를 조작 은폐해 월북몰이로 규정한 사건”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훈 전 실장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서훈 전 실장을 두둔해 어떻게든 자신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에게 “제발 도는 넘지 말아달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서훈 전 실장이 지난 2020년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피살됐을 때 관계기관에 월북이 아니라는 정황이 담긴 첩보 삭제를 지시하고, 월북으로 결론을 짜맞춰 허위 자료를 쓰게 했다 혐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은 이를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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