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BBC 기자가 현지 공안에 붙잡혀 폭행 후 구금됐던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정부까지 나서며 국제 이슈로 번지고 있다. 중국의 외신 기자 대응이 폭력적이라는 국제사회 지적은 수십 년째 이어져 왔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 연행되는 BBC기자. BBC 보도 갈무리
▲ 연행되는 BBC기자. BBC 보도 갈무리

지난달 27일(현지시간) BBC는 자사 기자 에드 로런스(Ed Lawrence)가 상하이 현지 공안에 구금돼 몇 시간만에 풀려났다고 밝혔다. 공개한 영상에서 4~5명의 공안은 수갑 찬 로런스 기자를 둘러싸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로런스 기자는 연행 당하는 동안 수차례 구타와 발길질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BBC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던 기자가 이런 방식으로 공격당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시위대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도록 기자 안전을 위해 연행했다고 주장한 현장 관리의 주장 이외에는 중국의 공식 입장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장 관리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튿날 이를 비판하며 “중국과의 황금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수낵 총리는 연설에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 가치와 이익에 체계적 도전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며 “중국이 권위주의에 가까워지면서 도전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총리의 공개적 비판에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수낵 총리의 비판이 “흑백전도”이자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며 해당 BBC 기자가 중국 경찰의 신분 확인 요구를 거부하는 등 법 집행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영국은 런던 주재 중국 대사를 불러 기자 폭행 사건에 대해 공식 항의했다.

▲ 생방송하고 있는 미카엘 푸커 기자. 이후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 RTS 갈무리
▲ 생방송하고 있는 미카엘 푸커 기자. 이후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 RTS 보도 갈무리

구금된 건 BBC 기자뿐 아니다. 스위스 공영방송 RTS는 소속 특파원 미카엘 푸커 기자와 촬영 기자가 27일 저녁 생방송을 마치고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고 밝혔다. 구금 시간은 짧았지만 촬영 장비까지 압수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외신기자클럽(FCCC)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중국 법에 따라 외신기자들은 중국에서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외신기자들을 향한 장벽이 높아지고 폭력성이 표출되는 지금의 모습에 깊은 좌절과 실망을 느낀다”고 했다. 146개국 언론인 60만여명이 가입한 국제기자연맹(IFJ)은 28일 “두 기자의 체포와 폭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모든 언론인의 안전과 보안을 보장할 것을 중국 정부에 촉구한다”고 했다.

반복되는 외신기자 구금, 언론자유지수는 ‘꼴찌’ 수준

중국의 외신기자 구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시위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행동은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2008년 티베트 시위를 취재하던 10명 이상의 중국 주재 외신기자들은 각종 살해 협박을 받은 바 있고, 2009년 위구르자치구 시위, 2011년 재스민 시위 때도 중국이 외신기자를 구금하고 촬영 장비를 압수해 국제사회 지탄을 받았다. 2011년 뉴욕타임스는 사복 차림의 공안 요원들이 베이징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미국 기자의 집을 감시하고 미행하며 비디오로 행적을 녹화했다고 보도했다.

▲ 매일경제 기자가 15일 저녁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매일경제 기자가 15일 저녁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2017년에는 한국 기자 2명이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취재하던 와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한 사진기자는 구타로 눈 주위가 골절되고 안구 출혈까지 일어났다. 당시 현장 경호업체 지휘를 중국 공안이 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 책임론이 대두됐지만 중국은 회피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21년 ‘중국의 거대한 저널리즘 퇴행’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최소 127명의 언론인을 강제 억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언론자유지수는 ‘꼴찌’ 수준이다. 지난 5월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22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중국은 180개국 중 175위였다. 세계 최악의 언론탄압 국가는 북한(180위)이었고 한국은 43위를 기록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절 2차례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박승준 전 특파원은 한 언론사 칼럼에서 “중국 공안들이 외국 기자들을 두들겨 패는 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중국 주재 기자들 사이에 공인된 사실”이라며 “중국 당국이 사과하는 일 또한 없다는 것을 중국 주재 기자들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 BBC는 “일부 주민은 시진핑 주석의 퇴진까지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BBC 보도 갈무리
▲ BBC는 “일부 주민은 시진핑 주석의 퇴진까지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BBC 보도 갈무리

중국은 현재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가 일어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계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데다가 지난달 24일 봉쇄 설치물이 화재 참사 원인이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민심이 폭발했다. 외신은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시위가 어느 규모로 확산될지 주목하고 있다. BBC는 “일부는 시진핑 주석 퇴진까지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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