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주필(62)이 11월30일을 끝으로 한국일보를 떠난다.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지 35년 만이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로만 살아온 ‘신문쟁이’다. 12월1일자로 이성철 콘텐츠본부장을 새 대표에 임명한 한국일보는 이충재 주필을 고문으로 위촉했다.

고문으로서 향후 1년간 보수는 받지만 회사에서 그의 공간은 사라진다. 독자들은 지면에서 ‘이충재 칼럼’을 볼 수 없다. 뉴스레터 ‘이충재의 인사이트’도 더는 배달되지 않는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18층 주필실에서 만난 이 주필은 다소 갑작스러운 ‘기자 은퇴’ 연유에 말을 아꼈다. 그는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는데 우리 언론 발전이라든가 진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그래서 떠나는 심정이 홀가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기자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정년이 지나서까지 누릴 거 다 누리면서도 후배들에겐 좋은 언론 환경을 물려주지 못했다. 그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18층 주필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18층 주필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만 35년 3개월의 ‘신문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정년이 지나서까지 기자를 했다. 그럼에도 후회나 회한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는데, 우리 언론 발전이라든가 진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나 되돌아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떠나는 심정이 홀가분하지 않다. 해야 할 걸 못한 아쉬움이랄까. 특히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요즘 후배들은 우리 때보다 교육이 잘돼 있다. 글 쓰는 실력도 그렇고, 취재도 올바른 방식으로 한다. 생각도 노력도 많이 한다. 내가 경험이 많다는 것 외에 후배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 근무하며 누릴 거 다 누린 세대다. 지금 후배 기자들이 마주한 언론 환경은 우리 때보다 열악하다. 기자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위상이 낮아졌고 기자 희소성도 떨어졌다. 여러모로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럽다. 후배들은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을 것이다.”

- 지난해부턴 뉴스레터 ‘이충재 인사이트’를 연재했다. 지난 22일 ‘이충재 인사이트’를 통해 “만 35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12월1일자로 한국일보 고문으로 비켜선다”고 밝혔다. 지면에 실리는 ‘이충재 칼럼’과는 별도로 지난 1년8개월 동안 뉴스레터를 통해 매일 칼럼을 썼다.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물론 아쉽다. 이충재 개인이 아닌 회사 뉴스레터인 만큼 보다 더 균형적 시각을 담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 우리사회 진영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으니 무얼 써도 호불호가 나뉘지만 ‘중립적이어서 좋다’는 반응도 의외로 많았다. 내 주관을 담기보다 대립한 관점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뒷이야기와 해설에 힘을 실었다.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 했다. 주필이라는 타이틀로 뉴스레터를 발송하니까 구독자 분들이 더 신뢰하시는 것 같다. 여기서 끝나게 돼 참 아쉽다. 뉴스레터 형식이 아니래도 좋으니 논평을 계속 해달라는 독자들 요청도 적지 않다. 앞으로 고민해봐야겠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은 지난 22일 뉴스레터 ‘이충재 인사이트’를 통해 “만 35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12월1일자로 한국일보 고문으로 비켜선다”고 밝혔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은 지난 22일 뉴스레터 ‘이충재 인사이트’를 통해 “만 35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12월1일자로 한국일보 고문으로 비켜선다”고 밝혔다.

- 이충재 칼럼은 균형 감각과 객관적 시각이 돋보였다. 한편에서는 ‘양비론을 고수한다’는 비판도 하지 않나? 그러한 지적에 고민도 있었을 텐데?

“개인적 고민이자 한국일보 차원에서도 오래된 고민이다. 우리가 표방하는 ‘중도’가 가치적 관점에서의 중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도층이랄까, 중도의 영역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가 중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은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아닌, 독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국일보는 균형적이고 중도적인 신문’이라는 걸 인정해줘야 한다.”

- 외부에서 인정 받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기계적 중립이 아닌, 진짜 ‘내공’이 필요하다. 과거 편집국장일 때 ‘이슈 위주의 회의’를 주문했다. 하나의 이슈를 회의 안건으로 놓고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자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취재 기자부터 데스크, 국장단까지 ‘팩트’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팩트가 틀리면 토론 자체가 안 되는 거다. 그 다음 토론을 충분히 해야 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다. 진보지, 보수지라면 기존에 정해진 프레임에 이슈를 넣어 해석하면 될 것이다. 이른바 조선·중앙·동아나 한겨레·경향 편집회의는 아마 일사불란(一絲不亂)하지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일사불란하지 않다. 각자 생각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정해진 프레임이 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토론과 고민이 필요하다. 팩트가 많기 위해선 기자가 많아야 하고, 기자 각자의 고민과 토론이 깊어야 한다. 단순한 기계적 중립에는 회의를 많이 느낀다. 편집국장 시절 강조했던 ‘적극적 중도’라는 말도 이슈가 터지면 그때마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방향을 설정하자, 그런 훈련이 계속되면 이념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적극적 중도’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미디어오늘 2011년 8월11일자 기사를 인용한다. 이 주필이 편집국장에 취임한 지 2개월 후 나온 기사다. “언론 문제에 대한 (한국일보) 입장은 한겨레·경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보적’이다. 지난 7월 중순 MBC가 외부 출연자의 사회참여·대외활동을 제한하는 내부 규정을 마련하자 한국일보는 기사·칼럼을 통해 MBC를 강하게 질타했다.(중략)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진행된 3차 희망버스에 대한 한국(일보)의 시각은 결코 진보적·친노동적이라 보기 어렵다. 잇따라 나온 칼럼·사설은 한진중공업과 조남호 회장의 책임을 분명히 물으면서도, 희망버스 또한 법과 원칙을 무시한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국은 희망버스에 ‘동승’했다. 정치권·시민사회단체 관계자뿐 아니라 왜 수많은 시민이 희망버스에 타는지,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함께 버스에 오른 것이다. ‘적대’하면 ‘배제’해놓고 보는 대다수 언론의 습성과 사뭇 다른 선택이었다.”

▲ 2011년 6월 당시 이충재 한국일보 편집국장(맨 오른쪽) 모습. 오전 부장 회의에서 각 부의 보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이충재 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11년 6월 당시 이충재 한국일보 편집국장(맨 오른쪽) 모습. 오전 부장 회의에서 각 부의 보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이충재 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이 주필의 저널리즘은 정치와 자본권력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회사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1년 한국일보 기자협의회 회장에 선출된 그는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경영진의 ‘기사 빼기’ 등 편집권 침해 사례를 비판하며 언론민주화 운동에 동력을 불어넣었다. 10년 후인 2011년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10개월 만에 경질됐다. 이유는 광고 매출 부진. 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신문을 제작한 탓이었다. 이 주필은 2015년 석사 논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에 대한 인식 연구’를 통해 신문사 편집국장들이 사주와 경영진, 광고주 압박 속에서 어떻게 편집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는지 밝혔다. 

- 2001년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면, 그해 창간한 한국일보 기자협의회 소식지 보도들이 있다. 취재 보도에 악영향을 끼치는 편집국 내 골프열풍을 지적하는 등 한국일보 편집국 내부 문제를 고발했다.

“한국일보는 1987년 노조를 재건하면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을 설립했다. 그런 활동 일환이었다. 그때는 노조 권한이 셌다. 촌지 관행 근절 등 언론계는 과거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젊은 기자들 30명을 기수별로 안배해 각 부서와 우리신문 문제점 등을 파악하게 하고, 2주일에 한 번씩 소식지를 발행했다. 회사도 우리 목소리에 적극 반응했다. 지금은 각 언론사 젊은 기자들 목소리가 많이 사라진 듯해 아쉽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해야 할 관습과 부조리가 상존할 텐데, 사주와 자본권력에 편집권이 억눌려 있는 탓이다.”

- 2011년 편집국장에 임명된 뒤 이듬해 경영 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다. 그때 사건은 ‘기자 35년’에 있어 어떤 의미였을까? 

“편집권 독립 문제는 우리 언론에 있어 영원한 숙제라는 점이다. 흔히 ‘언론 기업’이라고 하지 않나? 언론이 기업화하면서 경영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일보의 경우 동화그룹이 인수하면서 경영에서 안정을 찾았고 기자들도 보다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경영이 어려웠던 과거엔 기자들이 콘텐츠 방안을 제시해도 ‘경영이 어려운데 회사부터 살고 봐야지 무슨 콘텐츠냐’는 식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다만 경영과 편집권 사이 분명 선은 있다.” 

- 기업 자본에 의존하는 언론 문제는 어떻게 보나? 악화하고 있다고 보나? 

“인식 변화는 있는 것 같다. 기업 자본에만 의지해서는 더 성장할 수 없겠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콘텐츠를 강화하여 중장기적으로는 유료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요 매체들이 하고 있지 않나? 과거에는 자본에 의존하는 걸 당연시했다면 그러한 전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콘텐츠 질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한 언론들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 2013년 5월30일 당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장재구 전 한국일보 회장실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조합원 50여 명이 장 전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13년 5월30일 당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장재구 전 한국일보 회장실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조합원 50여 명이 장 전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13년 한국일보는 벼랑 끝에 몰렸다. 사주의 200억원대 배임 의혹과 편집국장 경질에 따른 기자들의 반발, 사측의 편집국 봉쇄 조치 등 파국으로 치달았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은 사설 게재를 거부하며 후배들의 편집권 독립 투쟁을 지지했다. 

“그때는 회사가 청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컸다. 동료들과 우리 신문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 논의도 많이 했다. 새 사주(동화그룹)를 잘 찾았지만 자본의 언론 인수에 대한 본질적 고민과 회의가 적지 않았다. 우리사주 같은 대안도 모색했지만 현실적으로 부채가 워낙 컸기에 그와 같은 논의는 소수에 그쳤다.”

- 2020년 주필에 취임한 뒤 ‘논설실 개혁TFT’를 꾸리기도 했다. 어떤 문제의식이었나?
“논설위원은 보통 사설과 칼럼만 쓰는데 독자들은 논설위원에게 현장 기자들과 다른 식견과 견해를 기대한다. 논설위원들이 기획을 통해 지면 콘텐츠 질을 제고하길 바랐다. 중앙일보가 그런 시도를 먼저 했는데 우리도 논설위원이 한 달에 한 번씩 기획을 맡아 보도한다. 또 하나는 디지털 강화다. 논설위원들이 작성하는 사설과 칼럼, 기획기사와 디지털을 접목하는 것이다. 영상도 시도해 보고, 유튜브도 고민했지만 이를 위해선 영상팀이 뒷받침돼야 한다. 콘텐츠 양질을 높이고 이를 디지털화하는 게 목표였으나 유튜브 영상 등은 중단 상태다.”

- 향후 계획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동안 일을 핑계로 집안일을 등한시했다. 아내에게 가사를 배워야 한다. 칼럼 논평은 오랫동안 해온 작업이니 나가서라도 그 능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계속 고민하고 있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겠다는 차원이다.”

- 정치 생각은 없나? 정치권에서도 러브콜을 보낼 것 같은데?

“과거 그런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혀 생각 없다.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 언론에 있다가 정치로 간 분들을 보라. 그들이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정치와 접목하여 언론 발전에 도움을 주던가? 오히려 언론을 망가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언론은 ‘제4부’라고 불릴 정도로 방대하다. 그 영역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은퇴하더라도 그런 쪽으로 기여하고 싶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18층 주필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18층 주필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 주필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유명하다. 뉴스레터 연재를 위해 1시간 앞당겨 매일 새벽 5시 출근했다. 은퇴하면 루틴(routine)에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한 것이 시간표를 정해 무언가 규칙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넋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시간 단위로 계획표를 짜고 있다.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없다는 기사도 봤다. 개인 재산 축적보다 신문 제작에만 심혈을 기울였다는 내용이다. 노후 걱정은 없는지? 

”국민연금이 나올 것이다. 사적연금 같은 것도 좀 있고. 우리 부부는 소비가 많지 않아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연립주택을 내 명의로 노모에게 사드렸다. 집은 하나 생긴 거다.(웃음)”

- 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최근 이태원 참사를 보며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때가 생각났다. 시경캡을 하고 있었다. 사건 터지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차단선을 치기 전에 무너진 현장에 접근했는데 지하 1층 식품매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살려달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그때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30년이 흘렀지만 참사는 반복된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언론과 공직자, 기득권층이 지난 30년 무엇을 했는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 2022년 11월22일자 이충재 칼럼.
▲ 2022년 11월22일자 이충재 칼럼.

- 본인 칼럼 중 하나를 꼽는다면?

“부장 달았을 때부터 칼럼을 썼으니까…. 25년 넘게 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꼭 집어 어떤 칼럼이 기억에 남는다거나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 있나?

“회사를 떠나지만 나가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난 경험을 토대로 논평 등 언론 영역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글로 찾아뵐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일보는 나름대로 성실하고 깨끗한 신문이다. 극단으로 나뉜 진영과 언론 지형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은 소명 의식을 갖고 열심히 보도하고 있다.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으나 저널리즘 자세나 열의는 그 어떤 언론에 뒤지지 않는다. 끝까지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주필의 마지막 지면 칼럼은 22일자 ‘오만이 가장 무섭다’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이 주필은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윤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라며 “윤석열 개인의 인식과 스타일, 언행이 모든 국정의 중심에 있는 양상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대통령실을 직언은커녕 최소한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고, 여당을 민심보다는 대통령의 심기경호가 우선인 당으로 전락시킨 건 바로 윤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고언에 섭섭하거나 언짢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모두 ‘이충재 칼럼’ 비판을 피하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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