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처음으로 자사 콘텐츠의 다양성을 분석한 조사를 진행했다. 뉴스·드라마와 일부 시사·교양 프로그램 위주로 조사가 진행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자체 조사를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각 단위별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KBS 성평등센터·공영미디어연구소는 지난 6~9월 방송통신위원회의 ‘미디어 다양성 조사’(2017~2021) 데이터 자료와, 일부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뉴스브런치’)의 지난해 방영분을 분석했다. 다양성 평가 기준은 등장인물의 성, 연령, 직업, 장애여부 등으로 판단했다. 조사 결과는 24일 오후 서울 KBS 본사에서 진행되는 ‘KBS의 다양성 증진을 위한 개선 방안 모색’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된다.

조사 결과 KBS 뉴스 속 한국 사회는 50·60대 남성에 편중돼 있었다.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등 7개사 뉴스 등장인물의 남녀 비율이 3대1인 가운데, 지난해 KBS 뉴스에 등장한 여성은 23.5%에 그쳤다. 이전 4년간 KBS 뉴스 등장인물 중 여성은 2017년 21.8%, 2018년 23.7% 2019년 23.3% 2020년 26.4% 등으로 7개사 전체 평균보다도 적다. 실제 성비는 남성 49.9%, 여성 50.1% 수준이다.

▲자료=KBS
▲자료=KBS

남성 중에서도 특히 50~69세 비중이 높다. KBS 뉴스의 남성 등장인물 중 50~69세 비율은 2017년 57.8%에서 2021년 46.8%로 감소세이긴 하나 여전히 압도적이다. 여성 등장인물은 남성에 비해 연령대별 차이가 크지 않다. 남녀 등장인물의 15~29세 비중은 2017년 남성 2.5%·여성 3.0%, 2019년 남성 1.2%·여성 3.7%, 2021년 남성 4.7%·여성 3.7% 등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게, 더 낮은 연령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는 ‘전문가 정보원’이 남성에 편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2021년 10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기반한 국내 전문가는 남성 50.4% 여성 49.6%로 구성돼있다. 그러나 지난해 KBS 뉴스의 핵심 정보원 성비는 남성 76.4% 대 여성 23.6%로 나타났다. 2018~2020년 KBS를 비롯한 7개 채널 뉴스의 여성 정보원 비율은 2018년~2020년 20% 안팎이 유지됐다.

▲자료=KBS
▲자료=KBS

뉴스에서 장애인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통계를 기준으로 국내 전체 인구의 5%는 장애인이다. 반면 채널 뉴스의 등장인물 중 장애인은 2017년~2020년 4년간 0.3%를 넘지 못했다. KBS의 경우 2018년과 2021년(각 0.6%)을 제외하고 0.3% 이하 수준이다.

등장인물 성비는 왜 개선돼야 할까. 조사팀은 다수의 여성전문가 출연이 이슈의 다양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일례로 여성 관점을 표방하며 대부분 출연진을 30~40대 여성 전문가로 구성한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뉴스브런치’의 경우 “시기적으로 코로나, 대선과 같은 정치·사회 이슈들이 중점적으로 논의됐지만, 여성 관련 이슈나 여성 피해자를 다루는 사건 및 사고를 많이 다뤘다”며 “성소수자, 환경, 장애 등 주류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프로그램을 차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의 경우 뉴스에 비해 비교적 고른 성비를 보이지만, ‘30~40대 비장애인 중심’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KBS 드라마 주인공 중 여성은 2017년 48.4%에서 점차 늘어 2021년 53.1%로 과반을 차지했다. 동시에 KBS 드라마에선 “10·20대 등장비율이 줄어드는 반면, 50·60대가 등장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특징”도 확인됐다.

▲자료=KBS
▲자료=KBS

조사 기간 KBS 드라마의 장애인 등장인물은 0~1.9%에 그쳤다. 그마저도 주로 ‘비바 앙상블’(2017) ‘반짝반짝 들리는’(2018) ‘오늘도 안녕’(2019) 등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집중됐다. 특집 기획이 아닌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등에서는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

조사팀은 한편 KBS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등장인물 특성을 분석했다. ‘아침마당’ 등장인물은 특정 성별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주시청층 특성상 50~69세가 44.5%로 절반에 가깝다. 출연진 중 국내 거주 이주민(다문화)은 2.2%(실제 3.6%), 장애인은 1.8%로 파악됐다. 장애인의 경우 특정 직업 도전, 장애인 가정의 삶과 이야기 등을 주제로 등장했다.

정보성 프로그램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도 성비 격차는 크지 않았으나, ‘전문가’ 역할이 50~60대 및 남성에 집중됐다. 전체 등장인물 중 남성은 48.0%, 여성은 52.0%로 나타난 가운데 교수·(한)의사·변호사·검사 성비는 남성 73.2%, 여성 26.8%로 남성 편중이 확인됐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조사에 참여한 유수정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발표 자료에서 △여성 전문가 과소 재현 △젊은 세대 목소리 부족 △다문화·장애인 소멸 등 KBS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을 짚었다. “제작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콘텐츠 제작시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새롭고 다양한 전문가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다양성 선도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출연자의 최소 50%를 여성으로 구성하기 위해 시행한 ‘50:50 프로젝트’처럼 미디어 다양성을 이끌어갈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KBS 주요 콘텐츠를 분석·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다양성 조사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

▲2021사업연도 KBS 경영평가 보고서 중 팀장급 이상 보직자 성별, 장애인 인원 현황
▲2021사업연도 KBS 경영평가 보고서 중 팀장급 이상 보직자 성별, 장애인 인원 현황

근본적으로 KBS 조직 다양성도 보장돼야 한다. 지난해 경영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KBS의 집행기관 및 센터장급 구성원 중 여성은 0%이다. 직급별 여성 비중은 국장급 7.4%, 부장급 7.7%, 팀장급 18.3% 등 높은 직급일수록 여성이 적은 구조다. 장애인은 집행기관·센터장급이 한 명도 없는 가운데 국장급 3.7%, 부장급 0.5%, 팀장급 1.1% 등이다.

유 연구원은 또 “성평등센터를 통해 학술, 연구단체, 시민단체, 언론, 공공기관과 소통해 KBS 콘텐츠의 다양성 및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며 “KBS의 거버넌스에도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사회와 집행기관, 시청자위원회 등에 다양한 영역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하고 KBS 다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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