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제24대 한국언론정보학회장에 취임한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비판언론학’을 되살리겠다고 천명했다. 학계가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 언론 공공성 훼손 논란 등 당면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전임 학회장들은 환영의 뜻을 표하며 언론정보학회가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은규 교수 취임사의 주요 키워드는 ‘비판언론학’이다. 김 교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 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탐욕이 공정과 능력주의로 포장된 퇴행의 시대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한 걸음 이루어 왔던 공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가 사회 전반에서 흔들리며 퇴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자유는 선택적 자유가 되었고, 공정은 선택적 공정이 되었다”며 언론정보학회가 ‘비판언론학’이라는 정체성을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국언론정보학회.
▲사진=한국언론정보학회.

김은규 교수는 “비판언론학은 공공성의 가치, 공동체적 가치, 노동의 가치를 추구한다. 더불어 비판언론학은 지역성의 가치를 존중한다”며 “이러한 가치들이 퇴행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비판언론학의 굳건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학술·조직·대외 활동을 통해 비판언론학 가치를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비판언론학은 언론·미디어를 사회적 구조·소유구조 등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론이다. 기존 언론·미디어 이론과 문제적 현상에 대해 비판적·대항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비판언론학이 한국에 도입된 건 1980년대로, 미디어 효과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미국 언론학이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한국사회언론연구회가 1988년 조직되면서 관련 연구가 본격화됐고, 연구회는 1998년 언론정보학회로 거듭났다. 언론정보학회 초대 학회장인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성균관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은 2008년 “기존 질서가 부정의와 모순으로 차 있어 더 나은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임 언론정보학회장들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은규 회장의 취임사와 관련해 ‘실천’을 핵심으로 꼽았다. 언론의 자유와 공공성이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정보학회가 비판언론학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 학회장인 안차수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3대 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언론정보학회)가 나서서 서명운동을 했다”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언론인들이 정치권에 어떤 말도 못 했을 때 유일하게 언론학자들이 나섰다. 언론정보학회가 윤석열 정부의 언론 관련 논란에 맞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과거와 같은 전통이 복원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16대 학회장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이라면서 “언론자유 문제나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김은규 회장은 비판언론학을 통해 학계를 자극시켜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윤석열 정부와 관련된 논란뿐 아니라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레거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해서도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14대 학회장을 역임한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언론정보학회는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며 “학자들의 연구가 연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실천의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 등 우려스러운 점이 많이 있는데 언론정보학회가 목소리를 내 언론자유가 훼손되거나 억압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연우 교수는 언론정보학회가 미디어 공공성 훼손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문재인 정부 때도 있었던 일인데 기획재정부는 서울신문 지분을 시장에 넘기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YTN을 민영화하려 한다”며 “언론은 효율성을 따지는 영역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공공성이 약화될 조짐이 있는데, 언론정보학회가 실천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한국언론정보학회.
▲사진=한국언론정보학회.

최근 언론정보학회를 중심으로 학계가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 공공성 훼손’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에 참여한 학자들에 대한 수사 중지 연대 서명을 하는 것 역시 ‘실천적 학문’에 포함된다. 정연우 교수는 “수사기관이 학자들을 압박한다면 학계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며 “이 시스템은 방송 공공성이 침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인데, 학계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15대 학회장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학문이 자신들의 세계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에 기여하고자 해야 한다”며 “연구의 결과로 가지고 있는 소신을 사회적 실천에 연결하는 것이 학자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언론정보학회는 그런 의지를 갖고 시작한 조직인데, 김 회장이 이를 강조한 것에 공감한다”고 했다.

또 김서중 교수는 언론학자들이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글 쓰는 것에 머물지 말고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실천과 학문은 분리된 게 아니다. 연구하고 논문 썼다고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언론정보학회 회원들도 더 많은 참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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