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변화시키는 인간만이 세상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저부터 바꾸겠습니다. 함께 바꿉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1일 후보 시절 신년 인사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후 윤 대통령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후보 시절 물의를 빚은 거친 언행에 감정에 휘둘린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는데 대통령이 되고서도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언론에 적대적인 감정까지 표출하면서 국정운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 심기를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하루하루 지켜보는 게 괴로울 정도다.

MBC 기자와 설전을 벌인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의 발언을 보면 정권이 정한 ‘악의’를 기준으로 언론보도를 문제삼아 해당 매체를 배제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YTN 출신 이기정 비서관은 언론인 출신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현실적 악의’에 대한 법리 문제를 망각하거나 정반대로 적용한 듯하다.

[관련기사 : “지금 군사정권이에요?” 대통령실-MBC기자 설전의 전말]

▲KBS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KBS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1964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한 비폭력 시위에 흑인들이 가담하자 뉴욕타임스는 경찰이 가혹한 진압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경찰 책임자였던 설리번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법원은 손해배상 지급 판결을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상고했고 연방대법원은 공직자의 명예훼손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선 ‘현실적 악의’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허위임을 알았거나 허위임을 부주의하게 무시하면서 표현하였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고가 된 언론의 현실적 악의를 원고가 증명할 수 없다면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 악의에 대한 검증 책임이 공인과 권력자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고 그만큼 공인에 대한 비판과 공적인 토론은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MBC 기자와 설전 이후 나온 대통령실의 ‘악의적이다’이라는 입장문은 MBC 보도 혹은 MBC 기자의 태도에 ‘악의’가 느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적 악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있는 셈이다. MBC 보도 시점 바이든 관련 발언은 믿을만한 정황(영상 발언 및 대통령실 해명, 타매체 보도 등)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현실적 악의를 증명키 어렵다. ‘악의가 있다’라는 말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겠지만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비판 언론 및 보도에 대한 무책임한 변명 내지 감정적 반응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급기야 전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하고 시행된 언론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출근길 질의응답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로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MBC를 ‘가짜뉴스의 숙주’처럼 대하는 대통령실 입장으로 봤을 때 MBC 기자가 대통령실 출입 금지를 당할 것이란 예상도 상상 불허의 영역이 아닌 게 됐다.

애초부터 대통령의 언론관과 대통령실 대응에 문제가 많았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면책 특권 뒤에 숨지 말고, 어디 제소자 들먹이지 말고, 또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들 통해서 문제 제기해줬으면 좋겠다”며 뉴스타파와 뉴스버스를 폄훼했다. 올해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해당 매체의 출입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허하면서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대가로 해석됐다. 지난 8월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변인의 질문 선정도 진보 성향 언론을 배제하고 외신에 치중함으로써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대통령실의 출근길 질의응답 중단 선언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 기자)라고 했다.

소통 창구를 막아버렸다면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이 들고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다. 별 행동없이 넘어간다면 언론이 대통령이 심기를 살핀다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대통령 리더십을 평가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미디어 메시지 관리에 철저히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와야 한다.

지난 8월 휴가에 복귀해 출근길 질의응답을 재개한 대통령을 향해 어느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친 걸 기억한다. 이번 출근길 질의응답 중단 선언에 대해 언론은 무어라 논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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