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등에 업고 당선된 대통령은 지지율이 추락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사회의 곳곳에 차별과 혐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끔 촘촘히 신경 쓰는 이 국가는, 끊임없이 “공정”과 “자유”를 앞세워 국민들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 가짜뉴스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해외순방에서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승인 안해주고 날리’면서 언론통제를 하더니, 이번에는 공교육을 ‘날리고’ 있다.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고시했다. 일상에서 수많은 국민이 죽었지만 ‘슬퍼하되 구조는 묻지 말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이 국가는, 국민들이 차별과 착취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도록 공교육을 바꾸려 하고 있다. ‘성평등’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노동자’는 ‘근로자’로 바뀌었다. 빠른 속도로 국민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요구받으며, 그 자리를 기업이 차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모양새다.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을 총론 교육목표에 반영하라는 시민들과 교사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월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월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철학의 부재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국가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정’을 부르짖는다. 민주주의 개념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대체표현으로 넣으며 ‘좌편향 교육’을 막겠다고 한다. 사회구조를 볼 수 있게 하는 “위험한 교육”은 모두 없애고, 모두가 개별적으로 각자 ‘노-오력’하여 ‘공정’한 게임에서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한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도록 요구받는 이 국가의 방향성은, 초1부터 심폐소생술을 배우도록 추가하게 했다. 10·29 참사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국가가 내놓은 교육개정안이라는 점이 참담하다.

이 교육개정의 방향성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뜻이 정확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말 빠른 속도로 오랜 시간 일궈온 성평등, 노동, 역사 교육운동의 결실을 무너뜨리며 다양성과 포함의 시대로 나아가는 방향에 역행하는 결정을 하고 있다. 마치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미국인의 자부심을 훼손시키는 다양성교육을 금지하라’고 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사람보다 자본을 우선한다는 점 때문이다. 씁쓸하게도, 참 닮았다.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도 ‘자유’를 강조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도 ‘자유’를 강조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후퇴하고 있는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의 속도감을 높이는 데에는, ‘국민의 목소리’라며 차별과 혐오를 방조하는 국가의 역할이 크게 작동하고 있다. 지난 9월과 10월에 있었던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는 조직된 극우세력의 폭력과 혐오 선동의 장이었다. ‘동성애 옹호교육 반대, 성평등 반대, 페미교육 반대’ 등 혐오 메시지를 쏟아내는 피켓을 든 사람들의 고성, 욕설, 물리적 폭력, 단상 난입 등으로 공청회는 진행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경찰이 현장에 와있었지만 교육부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11월이 되고 행정예고안이 나왔다. 교육과정 연구를 맡은 연구진의 의견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길 원하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공청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안이 나왔다. 교육부는 이 행정예고안을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교육과정 개정’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를 방조하면서 이를 유일한 “국민의 목소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공교육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순응하는 “근로자”를 양성하겠다는 국가는, 동시에 초·중등 예산을 깎아 고등교육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쯤 되면 공교육을 포기하겠다는 국가의 의지표명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공교육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존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를 깨닫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나라의 공교육은 충분하게 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까닭에, 이 사회는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이주배경, 인종, 경제력 차이, 장애, 외모에 따른 차별과 혐오가 점철되어 자신을 긍정하기 어렵고 생존마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퇴행 이전에도 공교육은 너무나 불충분했고, 더 나아지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국가는 오히려 오랜 시간에 걸쳐 공교육이 다루도록 해온 수많은 ‘존재’들을 지우고,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며 착취가 용이한 교육으로 바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정권이 시작한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4년 반을 더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존버’할 때가 아니다. 인내가 아니라 분노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여서, 11월29일 화요일까지 행정예고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고 한다. 이미 어떤 목소리만 반영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가지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목소리를 기록에 많이 남겨두자. 이메일을 보낼 곳은 nacur@korea.kr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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