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해외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현지에서 촬영한 봉사활동 사진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과열되고 있다. 야당 의원이 김 여사가 심장병을 앓는 아동을 안고 찍은 사진을 ‘빈곤 포르노’라 비판하자 여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다.

김 여사는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방문했다.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주최국인 캄보디아 당국이 별도의 대통령 배우자 행사를 마련한 날이었지만, 김 여사는 취재진 동행 없이 개인 일정을 가졌다. 대통령실은 전날 김 여사가 현지 의료원을 방문했을 때 참석하려던 아동이 건강문제로 오지 못했기에 김 여사가 아동을 직접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11월12일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동의 가정을 방문한 모습을 담은사진들. 사진=대통령실
▲11월12일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동의 가정을 방문한 모습을 담은사진들. 사진=대통령실

대통령실은 이날 김 여사의 모습이 담긴 9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김 여사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동을 안고 있는 장면이 5장, 김 여사가 울고 있는 아동의 어머니를 위로하는 장면이 4장이다. 특히 검정색 반팔 셔츠와 흰 바지 차림의 김 여사가 아동을 안은 채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과거 소말리아의 유니세프 급식센터를 방문한 배우 오드리 헵번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를 두고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 누구의 홍보수단으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16일 장경태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수일간 지속된 정치권의 공방은 해외 언론을 통해서도 기사화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15일 ‘한국 영부인이 ‘오드리 헵번을 따라한’ 사진 속 ‘빈곤 포르노’로 비판 받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여사 사진을 둘러싼 논란을 전했다.

▲영국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홈페이지
▲영국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홈페이지

대통령 배우자의 행보에 여야간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김 여사를 옹호하고 민주당을 비판하기 위해 ‘빈곤 포르노’를 여성에 대한 모욕으로 규정하는 일은 의도적 오독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빈곤 포르노’는 기부·모금 캠페인이나 미디어에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대중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모금, 지지 등을 유도하기 위한 사진·영상물을 말한다. 40여년 전인 1981년 덴마크 비영리단체 단처치에이드(Danchurchaid)의 프로젝트 디렉터인 요르겐 리스너(Jorgen Lissner)가 ‘빈곤을 파는 사람들’(MERCHANTS OF MISERY)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처음 등장했다.

1980년대는 에티오피아 대기근에 대한 모금광고가 빈곤의 이미지화에 기댄다는 비판이 일던 시점이다. 요르겐 리스너는 굶주린 아이의 이미지가 비윤리적인 이유는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고에서 콰시오커(kwashiorkor·단백 결핍성 소아영양실조증)로 배가 부푼 아프리카 아이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포르노인 이유는, 인간의 삶에서 섹슈얼리티만큼이나 개인적이고 섬세한 고통을 드러내기 때문”이고 “망원렌즈로 촬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몸, 비참함, 슬픔, 두려움을 낱낱이 무분별하게 전시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1981년 '더인터내셔널리스트'에 기고한 요르겐 리스너의 기고문 요약 문구. 사진=더인터내셔널리스트 홈페이지
▲1981년 '더인터내셔널리스트'에 기고한 요르겐 리스너의 기고문 요약 문구. 사진=더인터내셔널리스트 홈페이지

누군가를 구호의 대상으로 두고 이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는 이가 등장하는 방식의 ‘빈곤 포르노’도 오랜 비판 대상이다. 개발도상국 청소년·가족을 지원하는 캐나다 구호 단체(plan canada)의 2005년 광고영상이 일례다. 이 단체의 대표는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 아이의 사정을 설명하고는, ‘우리는 부모가 되어야만 하고, 하루 1달러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쉼 없이 말했다. 2017년 국내의 한 논문은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기부자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를 위해 구성된다”고 지적했다.

2017년엔 세계적인 팝스타와 영화배우들이 ‘가장 불쾌한 구호 캠페인을 연 스타’로 선정됐다. 가수 에드 시런은 라이베리아를 방문해 바닷가에 버려진 배 위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하는 내용의 4분50초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배우 톰 하디와 에디 레드메인은 각각 예멘과 동아프리카를 찾은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구호단체 홍보 영상을 찍었다.

당시 영국의 저술가 아푸아 허시(Afua Hirsh)는 가디언지(The Guardian) 기고문에서 이런 광고의 문제점으로 “굶주리고 아픈 아이들을 가장 취약하고 노출된 상태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존엄성이 그의 아이들만큼 가치가 있다는 인식에 반하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인위적인 구분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자원이 풍부하고 자비로운 ‘우리’는 변화의 주체이고, ‘그들’은 우리의 자선이 필요한 수동적인 타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홍보는 아이들이 고통을 겪는 구조적 맥락을 지운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7년 세계적 팝스타와 헐리우드 배우 등의 구호활동 홍보 콘텐츠가 '빈곤 포르노'라고 지적한 칼럼. 사진=더 가디언 홈페이지
▲2017년 세계적 팝스타와 헐리우드 배우 등의 구호활동 홍보 콘텐츠가 '빈곤 포르노'라고 지적한 칼럼. 사진=더 가디언 홈페이지

국내외 아동지원 비영리단체들도 ‘빈곤 포르노’성 활동을 반성하면서 변화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한국의 경우 2014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와 6개 아동지원 비영리단체들이 아동후원을 요청하는 모금 캠페인 등에서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미디어 관계자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기본 원칙 중에서는 ‘아동의 존엄성과 권리 존중’이 맨 위에 있다. “선의를 기반으로 한 보도 및 홍보자료가 보호대상인 아동의 권리를 도리어 침해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며 “절대적인 약자나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권리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인격체로서 보도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이드라인은 특히 ‘빈곤·기아·질병 상황의 아동’을 촬영하거나 보도할 때에는 아동이 빈곤이나 기아의 상징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절박한 위기상황보다는 해결책을 강조해야 하고,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탈피하라는 제안이다. NGO·미디어 관련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지만, 정치권 홍보자료 제작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와 6개 아동인권구호단체들이 참여해 제작한 '아동권리보호를 위한 미디어가이드라인' 중 '빈곤·기아·질병 상황의 아동' 부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와 6개 아동인권구호단체들이 참여해 제작한 '아동권리보호를 위한 미디어가이드라인' 중 '빈곤·기아·질병 상황의 아동' 부분

김 여사의 행보도 ‘선의’가 낳은 ‘빈곤 포르노’의 문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 여사 일정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아동이 처한 어려움을 나열했다. 2018년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추가로 수술이 필요한 상태이고 최근 뇌수술을 받아 회복 중이지만 생활고로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아동이 형제를 잃었다는 점을 비롯한 가족관계도 상세히 전했다. 김 여사는 해당 아동에게 “잘 이겨낼 수 있지? 건강해져서 한국에서 만나자”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고 한다.

‘빈곤 포르노’에 대해선 이만큼 효과적인 관심 유도 수단이 없다는 한계도 이야기된다. 동시에 이렇게 빈곤을 전시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빈곤 문제에 대한 무력감과 무관심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 정치권은 이에 대한 논의가 아닌 엉뚱한 논쟁만 확산시키고 있다.

‘빈곤 포르노’ 지적을 여성혐오이자 모욕으로 규정한 집권여당 대응은 여성혐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 ‘빈곤포르노라는 발언이 대한민국 모든 여성을 비하하고 폄훼한다’는 국민의힘 여성의원들의 기자회견은, 3년 전 남성 국회의장을 일부러 여성의원이 막아선 뒤 ‘성추행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했던 때처럼 기만적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김 여사를 옹호한다면서 “역대 영부인 중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고 말한 것은 여성을 외모로 품평하는 전형적 여성혐오다. 

김 여사를 향해 옷차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진 찍을 때 낀 팔짱 등을 문제 삼는 더불어민주당 및 범야권 정치인들 목소리는 필요한 비판을 가리고 소모적 논쟁을 키웠다. ‘빈곤 포르노’ 비판의 파장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16일 YTN에 출연해 “정치적으로 어떤 여파가 있을지 장경태 의원이 몰랐을까요. 역지사지로 문재인 정부 때 국민의힘에서 김정숙 여사한테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를 썼으면 민주당 가만히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이번 사안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 대다수는 양당의 다툼 중계에 치우치거나, 정당한 비판과 정파적 논쟁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16~17일 아침 신문에서 ‘빈곤 포르노’ 공방을 다룬 주요 기사 제목은 △‘추락 기원’ ‘빈곤 포르노’ 막말 저주 도 넘었다(서울신문) △與 ‘빈곤 포르노’ 발언한 野장경태 윤리위 제소키로(조선일보) △국민의힘 “빈곤 포르노 발언, 국격살인”(경향신문) △與여성의원들 “‘빈곤 포르노’ 발언 장경태 사퇴를”(동아일보) 등이다.

※ 참고자료

MERCHANTS OF MISERY (1981, 더 인터내셔널리스트, 요르겐 리스너)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Ed Sheeran means well but this poverty porn has to stop (2017, 더 가디언, 아푸아 허시)

빈곤포르노현상(Pornography of Poverty)에 대한 비판적 연구 : 국내 온라인 모금 사례를 중심으로 (2017, 김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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