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영화의 존재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알고는, 잘 잊히지 않는 특색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두 여자가 서로 같은 속옷을 입는다면 그건 어떤 사이일까. 여자로 태어났지만 자매 없이 살아왔고, 친구와 동거해본 경험도 없는 입장으로서는 퍼뜩 떠오르지 않는 답이었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를 뜯어보니, 관계는 다름 아닌 모녀다. 두 사람은 정확히 말하면 팬티를 같이 입는다. 50대 엄마와 20대 딸이 같은 팬티를 입는다면, 몇 가지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중년이 된 엄마는 젊은 딸과 똑같은 사이즈의 속옷을 입을 정도로 여전히 날씬하다. 두 번째, 딸이 2차 성징을 경험하고 성인이 되는 동안 엄마는 그의 몸에 맞는 속옷을 따로 챙겨주지 않았다. 세 번째, 딸은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와 속옷을 공유하는 습성에 매여 있다.

▲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스틸컷.
▲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스틸컷.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모녀의 관계가 어딘가 기형적일 수 있다고 짐작할 것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엄마 수경(양말복)이 딸 이정(임지호)을 차로 받아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사건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괴팍하고 무책임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엄마와 그로 인해 늘 움츠러들어 있는 미성숙한 딸, 두 인물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향하는 방향은 결국 ‘통상적인 모녀 관계’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다. 엄마는 딸을 혐오할 수 있는가, 딸은 그런 엄마를 ‘손절’할 수 있는가.

자칫 전형적인 갈등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가 인물을 워낙 공들여 묘사하는 까닭에 관객은 인물의 입장에 이입해볼 기회를 얻는다. 엄마는 몸무게 39kg로 ‘뼈밖에 없던’ 젊은 시절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4kg 넘는 우량아 딸을 낳았다. 남편도 없이, 이렇다 할 재주도 없이 평생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야 했던 삶이 때로 사무치도록 분했다.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극 중 엄마 역을 맡은 배우 양말복의 되바라진 호연은 그런 인물의 생동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엄마의 서늘한 그늘에서 자란 딸이 몸집만 큰 불안한 어린아이가 된 것도, ‘진심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집념이 집착 성향으로 비화하면서 주변 동료와의 관계에서마저 어려움을 겪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포스터.
▲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포스터.

이 끝에 고민스러운 질문이 남는다. 세상이 규정한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의구심을 품어본 관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모녀는 어떤 경우에도 함께하는 것이 나은가? 이 질문은 모녀가 아니라 부녀, 부자, 형제지간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힘을 지닌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왔지만 각자 삶의 가치관이 충돌해 기어코 서로에게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좀처럼 개선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나. 논쟁적인 고민거리를 전하는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 5관왕에 올랐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였던 영화 속 모녀는 결국 각자의 결말을 맞는다. 특히 딸은 자기만의 속옷을 구입하기 위해 가게에 들어선다. 가치판단 없이 지독할 정도로 인물을 ‘보여주기’만 하던 영화가 유일하게 어떤 결정을 내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결말은, 모녀 관계라는 숙명이 각자의 삶을 갉아먹는 그럴싸한 이유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같은 속옷을 입고 평생을 희망 없는 관계로 지내는 대신, 다른 속옷을 입고 자기 삶을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내내 심경을 복잡하게 했던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는 한 가닥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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