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1월11일, 아세안+3국 정상회의와 G20 참석차 4박 6일간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순방을 위해 출국했습니다. 출국 전부터 MBC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며 언론탄압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실은 현지 공동취재단 차단 등 언론 취재를 지속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은 채,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전달하거나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하고 언론 질의응답도 생략했는데요. 이와 달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 회담 성과를 13분이나 브리핑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윤석열 정부의 취재제한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한겨레 “중요 회담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

대통령실의 언론 취재 제한은 한겨레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한겨레 <이번엔 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차단>(11월14일 배지현 기자)은 대통령실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순방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라며 “통상 각국 정상과의 회담은 ‘풀(대표) 기자 취재’ 형식”이지만, 이번엔 “대통령실 관계자가 회담장에 들어가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전속 취재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실 전속 취재의 경우, 공개 회담 전체 내용이 아니라 편집된 발언과 영상·사진만이 전달”된다며 취재 제한 문제를 짚었는데요.

한겨레는 대통령실이 이동시간을 이유로 “한-일, 한-미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한 채 언론 질의응답은 생략했다”며 “순방 일정 중 가장 핵심 일정이었던 두 회담이 사실상 언론에 비공개나 다름없이 진행된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받아쓰기, 주요 이슈 외신 인용

대통령실이 제공한 자료를 받아쓴 기사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조선일보 <바이든 “한국기업, 미경제 기여 커… IRA 논의때 고려”>(11월14일 김경화 기자)는 예상 시간보다 길게 “주요 경제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한미 정상은 IRA 개정 문제를 깊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대통령실을 출처로 대통령실 의견을 위주로 전달했습니다.

한국경제 <바이든 “한국기업, 미경제 기여 큰 점 고려해 IRA 이행 논의”>(11월14일 김인엽·전범진 기자)도 “대통령실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략)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중략) 공감했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내년에 (중략)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등 대부분 출처를 ‘대통령실에 따르면’으로 보도했는데요.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 관련 보도도 “대통령실에 따르면 회담에서”로 표기됐습니다.

▲ 11월14일, 대통령실이 제공한 한·미 정상 대화 사진을 보도한 조선일보
▲ 11월14일, 대통령실이 제공한 한·미 정상 대화 사진을 보도한 조선일보

한국경제는 한국 대통령실과 다르게 언론 인터뷰를 한 기시다 총리의 일본 언론 보도도 덧붙였습니다. 즉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회담 이후 기자들을 만나 ‘윤 대통령과 강제징용 문제를 조속히 해결한다는 방침에 의견을 같이했다’며 ‘외교당국 간 협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된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매일경제 <윤·기시다 “징용문제 해결 공감”>(11월14일 박인혜·김규식 기자) 역시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 문제와 관련해서 외교당국 간 협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는 상황에 근거해 조기 해결을 모색한다는 방침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는데요. 취재 제한과 질의응답에 나서지 않은 대통령실에 막히자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우리 입장이 아닌 일본의 시각에서 보도한 내용이 전해진다는 점에서 우려가 됩니다. 더욱이 북핵 위협과 강제징용 등 주요 현안이 산적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실이 제공한 정보만 받아쓸 경우 정보 한계 문제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취재 제한으로 보도내용 획일화

대통령실의 제한된 자료를 받아쓰는 언론보도 문제는 이뿐만 아닙니다. 한·미 정상회담 소식을 따로 전하지 않은 한국일보와 비판적으로 보도한 한겨레를 제외하고, 모니터 대상 중 4개 일간지와 3개 경제지의 보도 제목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동아일보 <바이든 “한기업, 미경제 기여… IRA이행방안 마련때 고려”>(11월14일 홍수영 기자)는 윤 대통령이 먼저 “IRA에 관한 (양국 간) 협의 채널이 긴밀하게 가동되고 있”으며 “올해 10월 바이든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IRA 관련 미국 측의 진정성 있는 협의 의지를 확인해 주었다”고 평가하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큰데 이를 고려해 “IRA의 이행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보도는 제목이 거의 같은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경제 기사에서도 반복됐는데요.

반면, 한겨레 <바이든 “인플레감축법 우려 잘 알아”… 원론적 논의 그쳐>(11월14일 배지현 기자)는 “관심을 모았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문제에 관해서는 양쪽이 협의를 이어가자는 원론적 차원의 논의에 그쳤”다며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감축법의 이행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짚었습니다. 그대로 받아쓴 획일적 기사와 달리 차이점이 드러난 유일한 보도였습니다.

▲ 11월14일, 한·미 정상회담 소식을 비슷하게 전한 신문 보도 제목
▲ 11월14일, 한·미 정상회담 소식을 비슷하게 전한 신문 보도 제목

김건희 여사 심장병 어린이 방문조차 ‘대통령실 제공’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대한 보도는 주말 동안 포털뉴스의 언론사별 ‘가장 많이 본 뉴스’에 오를 정도로 이슈였는데요. 김 여사는 11월12일 아세안 정상회의 주최국 캄보디아가 준비한 각국 정상 배우자 참여 프로그램은 참석하지 않은 채,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 역시 대통령실의 취재 제한으로 서면브리핑을 통해 기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한국일보 <김건희 여사, 캄보디아서 이틀째 심장질환 소년 위로>(11월14일 김지현 기자)는 김 여사가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인 앙코르와트 사원에 방문하는 대신 환아의 집을 방문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브리핑으로 전했다”고 보도하고, 이어 친환경 업사이클링 회사인 스마테리아사도 방문했다고 전했는데요.

▲ 11월14일, 대통령실이 제공한 김건희 여사 독자 행보를 보도한 한국일보
▲ 11월14일, 대통령실이 제공한 김건희 여사 독자 행보를 보도한 한국일보

한겨레 <김 여사 ‘나홀로 일정’ 정상 부인 행사 불참>(11월14일 배지현 기자)은 김건희 여사가 “개별 일정에 취재를 허용하지 않은 채 행사 뒤 일방적으로 ‘사후 공지’하고 있다”며 “김 여사의 행동과 말 등을 포함한 전체 행보는 순방 동행 기자단의 취재 없이 대통령실이 브리핑 자료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의료진 상담 내용 등을 기자를 통해 공개할 이유는 없다”며 기자단 동행 취재 비허용 이유를 설명했다고 전해졌는데요. 김 여사가 방문한 어린이의 질병과 사진까지 그대로 공개한 대통령실이 취재 비허용에 대한 해명치고는 매우 궁색합니다.

해외순방 따라간 공동취재단 취지 무색

한겨레는 <사설-첫 포괄적 공동성명 내며 북·중 겨냥한 한미일 3국>(11월14일)에서 “3개국 합의를 이유로 공동취재단의 한-미, 한-일 정상회담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순방 직전 대통령실이 <문화방송>(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데 이어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정상회담 취재가 제한된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개인 일정이 아닙니다. 국익을 목적으로 한 대통령의 외교 행보로 국민 세금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정상회담조차 기자단 비공개로 진행되고, 대통령 배우자 행보 동행 취재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전용기까지 타고 간 기자단의 동행 의미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실은 정상 회담이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이유로 “‘당사국끼리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합니다.

기자단이 대통령실 순방을 함께하는 취지는 현지에서 일어나는 대통령의 외교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제공하는 정보만 받아 동일한 내용을 보도한다면 해외순방을 직접 따라나설 이유도 없어집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해외순방의 공식회담 취재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 기자단이 가장 먼저 따져 물어야 할 것입니다.

▲ 11월12일, 대통령실 사진 기자단이 촬영한 동남아시아 순방을 위해 전용기에 오르는 기자들, 경향신문
▲ 11월12일, 대통령실 사진 기자단이 촬영한 동남아시아 순방을 위해 전용기에 오르는 기자들, 경향신문

 

- 모니터 대상 : 2022년 11월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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