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지역언론만의 방법은 다양하고, 노력은 끝이없다. 지역언론 기자들은 더 소외된 곳을 찾아가 직접 마을신문을 창간해 미디어를 만들기도 하고, 언론 제보가 망설여지는 군민들을 위해 ‘작은 쓴소리’도 버리지 않고 직접 사실 확인에 나서기도 한다. 서울지역에서는 더 이상 주목하지 않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겪은 피해, 지자체의 문제점을 파헤쳐 세상 앞에 밝혀내기도 했다. 

지난 4일 2022 지역언론 컨퍼런스에서 ‘옥천신문’과 ‘전남일보’, ‘낭주신문’ 기자들은 지역 공론장을 형성하고 미디어를 확장하기 위한 그들만의 치열한 고민과 결과를 공유했다. 

옥천신문이 끝없이 확장하는 지역 미디어 공론장

“더 저널리즘으로, 더 변방과 소외된 곳으로.”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는 다채로운 공론장 구축을 강조했다. 옥천신문은 인쇄매체를 넘어서 음성, 영상 미디어를 만들고, 옥천 내에서도 더 소외된 지역을 찾아 미디어를 보급하고, 더 많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세우며 끊임없이 지역 미디어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옥천신문은 지난 1989년 9월30일 옥천군민 222명이 창간 주주로 참여해 자본금 5000만원으로 창간한 충북 옥천군 단위의 지역신문이다. 약 55%가 구독료 수입이고 나머지 45%는 광고 등의 수익이다. 월 구독료는 1만 원으로 한부에 2500원 꼴이다. 광고는 지역주민과 지역업체 광고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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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이사.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옥천신문은 더 다양한 공론장을 구축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실천했다. 지역의 문화적인 결핍이 심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017년 문화콘텐츠사업단을 만들었다. 문화공간과 함께 지역문화를 깊게 다룰 잡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회적 기업 ‘주식회사 고래실’을 설립했고, 군 단위 유일한 지역 잡지 ‘월간옥이네’를 발행하고 있다. 주말 청소년 자립카페를 운영하고 만화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민들의 문화 공간으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발간하는 월간 '옥이네' 11월호. 사진=고래실.
▲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발간하는 월간 '옥이네' 11월호. 사진=고래실.

사업이 확장되며 ‘고래실’의 인원이 많아졌지만, 옥천신문은 인큐베이팅을 끝낸 뒤 출자를 하거나 산하로 편입하는 대신, 별도법인으로 독립시켰다. ‘자회사가 아니라 이웃이 되도록 하는 것’. 옥천신문이 사업을 벌이며 만든 원칙이다. 

매체 또한 다양화했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의 공동체라디오 사업에 응모했고, 옥천FM 공동체라디오를 시작했다. 34년 전 5000만원의 자본금을 모아 옥천신문을 만든 것처럼, 6개월만에 주민들의 1억3000만원 기부금을 모아 개국했다.

초등학생부터 89살 노인까지 모두 자발적으로 직접 라디오에 출연한다. 5~60대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공론장을 넓히기 위해 할머니 기자단과 청소년 기자단을 만들었다. 2021년부터는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운영하며 전국 풀뿌리 신문들에 기자들을 배출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옥천군에서 가장 변방인 지역으로 분류되는 청산면·청성면에 찾아가 주간 마을신문 ‘청산별곡’을 창간하기도 했다. 

▲ 옥천청소년신문 옥수수. 사진=옥천신문 제공.
▲ 옥천청소년신문 옥수수. 사진=옥천신문 제공.

옥천읍 금구리 골목은 ‘미디어거리’다. 미디어 관련 7개 기업이 사회적경제로 연대하고 있다. 황민호 대표는 “서울에 상암DMC가 있다면 옥천에는 OMC(옥천미디어시티)가 있다”며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독립하고 있지만 서로 간의 신뢰의 관계도 끈끈하다. 각각의 독립된 구역이지만 지역에 공론장 미디어 플랜을 설계한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 옥천에는 OMC(옥천미디어시티). 사진=옥천신문 제공.
▲ 옥천에는 OMC(옥천미디어시티). 사진=옥천신문 제공.

전국에서는 이제 새 마을신문을 만들거나 지켜내기 위해 옥천을 방문한다. 황민호 대표는 “4년에 한 번 투표하는 이벤트식 민주주의가 아닌 일상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말과 글은 시민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무기”라며 “5년 전부터 공론장을 재설계하면서 어떤 주민이라도 쉽게 제보와 민원을 할 수 있고 직접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명원 인권침해 사건’ 밝혀낸 전남일보가 전하는 지역언론 취재 이야기

“형제복지원 말고…광주, 전남에서는 목포에 동명원이라고 하나 있네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전남일보의 ‘동명원 취재’는 관계자의 무심코 지나간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전남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목포의 자활센터 ‘동명원’에서 벌어진 1980년대 폭행, 성폭행 등 인권침해 사건을 취재해 밝혀낸 전남일보 사회부 취재팀은 곧장 목포 지역으로 이동해 피해자들과 직접 접촉해 올해 2월 총 7건의 심층기사를 보도했다. 

기자들은 첫 번째 피해자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과도 접촉하는 식으로 한 명씩 한 명씩 전국에 퍼져 있는 피해자들을 만났다. 동명원에 있었던 피해자들은 엄격한 감시 속에서 청소, 밭일, 돼지우리 관리 등의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도망가는 아이들을 다시붙잡아 사냥개와 함께 가두거나 사망에 이르게 해 암매장하는 과정을 목격하거나 매장에 동원됐다는 설명도 있었다. 어떤 피해자는 여전히 1980년대 시설 관계자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 전남일보 2022년 2월17일 지면 갈무리.
▲ 전남일보 2022년 2월17일 지면 갈무리.

기자들이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현장을 뛰는 과정에서도 신문 제작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취재하는 기자의 빈자리를 사회부장과 다른 기자가 돌아가며 메웠다. 수소문 끝에 과거 동명원이 자리했던 목포 대성동을 찾아냈고, 한 주민은 옛 동명원을 보고 “집단수용소 같았다”라고 말했다. 목포시에 근무하면서 자신이 직접 트럭을 몰며 부랑아를 동명원에 옮겼다는 노년의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동명원의 피해사실 제보가 여럿 들어왔지만 이를 묵살한 지자체의 고질적인 업무 행태 또한 밝혀낼 수 있었다. 후속 취재 결과, 박정희 정권이 만든 내무부훈령 410호에 의해 전국에 ‘부랑인 수용시설’이 생겼고, 목포 동명원은 당시 내무부훈령에 근거한 전국 부랑인 수용시설 36개소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은 “이 과정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동명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중앙지라고 불리는 신문, 통신사도 ‘찾아보는 것은 고사하고 있었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제보가 없는 한 그들은 지역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광주·전남의 지역신문인 전남일보만이 ‘우리지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사명감으로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보도 이후, 편집국에는 입소 피해자, 과거 직원, 목포 시민 등의 제보 전화가 이어졌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목포시민신문 등에서도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목포시, 진실화해위원회, 전남도 등에서 관련 자료 공유 및 (무안에 있는) 동명원 직원 대상 인권 교육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노병하 부장은 “서울지역 신문들이 ‘중앙지’라고 자칭하며 엄청난 파급력으로 수십여년간 지역 일간지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끊임없이 기자를 교육시키고 체제를 이어갈 수 있도록하는 시스템과 ‘진실보도와 심층 기획’, 나아가 ‘지역신문이 아니면 결코 쓸수 없는 기사 발굴’이야말로 지역신문이 있어야할 이유”라고 말했다.

할말하않’ 그래도 말하고싶은 이들을 위한 ‘군민의 쓴소리’

전라남도 영암군에 위치한 낭주신문만의 코너 ‘군민의 쓴소리’는 기사소재로는 애매하고 그냥 넘기기도 애매한 가십거리 이야기들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2020년 10월 창간때부터 시작한 코너다. 방법을 몰라서, 군청에 지인이 있어서, 해코지가 무서워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할말하않(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굳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굳이 꺼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신조어)이던 군민들이 마음껏 쓴소리를 낼 수 있는 지역주민들만을 위한 공론장이다. 

▲ 낭주신문 '군민의 쓴소리' 온라인 페이지 갈무리.
▲ 낭주신문 '군민의 쓴소리' 온라인 페이지 갈무리.

‘군민의 쓴소리’ 코너에 들어오는 제보는 익명으로 받는다. 정치, 비방 목적의 제보는 삭제한다. 하고싶었던 말들은 많았지만 할 곳도, 기회조차 없었던 군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익명이 보장되며 추후에서 신상이나 연락처 등을 묻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낚시성 글도 적지 않다. 장정안 낭주신문 편집국장은 게재 전 현장 방문과 사실 확인을 위해 실제 취재 과정에 소요되는 노력을 똑같이 들이고 있다. 

낭주신문을 통해 낸 ‘쓴소리’는 꽤 파급력있다. 현재까지 신문에 게재된 총 91건의 쓴소리 중 10여건은 해결되었거나 해결 중에 있다. 한 고등학생이 버스 승강장이 설치되지 않아 ‘뙤약볕에 계란후라이가 될 것 같다’며 그늘막이 설치가 시급하다고 하자 1주일 뒤 그늘막이가 설치됐다. 아이를 키우는 한 주민이 야간에 아이가 크게 아프지만 응급실 운영을 하는 병원이 없어 급하게 인근도시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했던 사연을 남겼더니, 군의회에서 군정 질의 안건으로 상정해 해결방안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 낭주신문 '군민의 쓴소리' 온라인 페이지 갈무리.
▲ 낭주신문 '군민의 쓴소리' 온라인 페이지 갈무리.

장정안 국장은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히 신생사인 탓에 오피니언이 부족해서 지면 채우기 목적이 강했다. 하다보니 반응이 좋고 행정기관에서도 제일 먼저 읽는 코너가 됐다”며 “글을 모르거나 SNS 활용이 어려운 고연령 층에게는 손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있다. 일반 군민들의 경우 전화상이나 군청 홈페이지에 올려도 공무원들이 큰 관심이 없어 해결이 안되는데 국민의 쓴소리는 즉각 반응이 온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장정안 낭주신문 편집국장.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장정안 낭주신문 편집국장.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그러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코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민원 소통 창구로서 이제 계속 이 부분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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