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한 골목길에서 시민 156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수 언론에서 ‘이태원 참사’로 부르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로 부르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이번 참사로 이태원 지역 상인들 사이에선 코로나로 침체했던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심리학회는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지난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10·29 참사에 애도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한국심리학회는 지역 혐오 방지를 위해 본 참사를 10·29 참사라 부르고자 한다”고 했다.

▲ 4일 이태원역 1번 출구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4일 이태원역 1번 출구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학회 내에서 10·29 참사로 부를 것을 제안한 인사는 학회 내에서 재난심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현정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다.

최 교수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 회복을 지원하는 게 제일 우선이기도 하지만 피해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특정 지역명을 참사나 고통스러운 상황과 연결지어서 단어를 선택하면 이태원 지역의 주민과 상인들이 있는데 지역 자체에 대해 고통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회복중심의 언어를 쓰자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10·29 참사라는 말보다는 ‘이태원 참사’라는 말이 익숙하다. 특히 정부가 ‘이태원 참사’가 아닌 ‘이태원 사고’로 쓰자고 지침을 내리면서 논란이 돼 ‘참사’냐 ‘사고’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더욱 ‘이태원 참사’가 익숙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들도 거의 다 ‘이태원 참사’로 표기하고 있다. BTN불교TV의 경우 ‘10·29 이태원 참사’로 표기하고 있다.

‘10·29 참사’를 제안했을 때 학회 내에서 이견이 있지 않았을까? 최 교수는 “아직 10·29 참사라고 말했을 때 정보가 충분히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태원이 들어가는 게 장기적으로 피해를 가중시킨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합의를 했다”며 “(성명에서)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라고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10·29 참사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면 좋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 회복을 방해하는 게 피해자에 대한 비난, (이태원 관련) 문화에 대한 혐오 등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나 비난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언론사에서 다 같이 ‘10·29 참사’로 썼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지금은 익숙한 ‘세월호 참사’라는 표현 역시 2014년 4월16일 참사 직후부터 사용하던 단어는 아니다. 사건 초기 언론에서는 ‘진도 여객선 침몰 사건’으로 표기했다. 하지만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하고 ‘진도’ 주민들에 대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건을 다시 명명한 것이다.

이태원에서만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란 점에서 ‘이태원’을 부각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최 교수는 “이러한 참사가 이태원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안전 시스템이 부재하다면 이 참사는 어느 지역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태원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참사 이름에서 이태원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를 제안했다. 신 교수는 지난 3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태원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위험한 곳,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지역에 낙인을 찍는 행위”라고 지적한 뒤 “한덕수 총리가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WHO가 ‘우한 폐렴’ 대신 COVID19(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라고 지역색을 뺀 명칭을 쓴 것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진행자가 “생각해보니 ‘9·11테러’라고 부르지 ‘맨해튼 테러’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이태원 헤밀턴 호텔 옆 골목. 사진=장슬기 기자
▲ 이태원 헤밀턴 호텔 옆 골목. 사진=장슬기 기자

 

신 교수는 “이태원에 있는 상인들, 지역민들 그 다음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을 생각했다면 이태원이라는 말을 빼자고 했어야 정부다운 일”이라며 “(정부가) 사고냐, 참사냐 이걸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부적절한 이름”이라며 “태안은 오히려 피해지역이고 (기름유출의) 주체는 삼성 1호이고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였다”라고 했다.

신 교수도 “10·29 참사라고 부르자는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원역 인근 한 상인 A씨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하루에 20만원 순수익을 올리면 겨우 월세만드는 수준인데 그동안 코로나로 대출받아 상점을 유지해왔다”며 “(거리두기 완화로) 잠시 살아나는가 싶다가 대출 금리 오르고 이번 참사 벌어지니까 이제는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에 대해 “이태원 참사라고 계속 부르면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며 “이태원 참사 말고 다른 이름으로 이번 참사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태원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오는 5일 24시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역 인근 도로에는 경찰차들이 늘어서있고, 곳곳에 경찰이 서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그날은 안 보이던 경찰들이 지금 왜 저렇게 많이 늘어서 있는지 모르겠다”며 “삼엄해서 사람들이 안 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 국가애도기간을 이유로 이태원 상점들이 휴업을 한다는 내용의 언론보도
▲ 국가애도기간을 이유로 이태원 상점들이 휴업을 한다는 내용의 언론보도

 

용산구청은 이태원에 위치한 식품접객업소를 대상으로 추가 사고 예방 등을 위해 자발적인 영업중단과 특별행사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인근에는 참사 추모객을 제외하고는 손님들 발길이 끊겼다. 추모란 이름으로 업종 불문 이태원 상점 주인들이 경제적 손해를 감당하는 분위기다. 다수 언론에선 이태원역 인근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것이 마땅한 애도의 방식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A씨는 “가게 문을 열어도 되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사가 안타까운 게 1번이지만 월세 문제도 고민될 수밖에 없다”며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 이태원 지역이 침체될 텐데, 어디 말도 못하고 있다”며 “언제 (경기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A씨는 이제 뉴스를 보는 것도 답답해서 이미 본 드라마를 반복해 보고 있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이태원 참사라는 말이 너무 싫다”며 “우리들에겐 생계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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