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와 관련,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응급실 상황을 찍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브이로그’(video log·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게시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또 다른 응급의학과 의사는 참사 직후 페이스북에 사건에 관한 세세한 묘사를 포함한 글을 올렸는데, 이 역시 희생자를 대상화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의료진이 다양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자진해 올리면서 환자들을 ‘에피소드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등은 ‘소셜 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식별가능한 환자 정보를 게시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설사 가이드라인에 규율 받지 않는 수준이래도 의료진의 환자에 관한 게시물은 언제든 윤리적 논란이 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 사이에서 관련 교육과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하고 미디어 종사자와 의료진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올린 브이로그 장면 중 일부.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올린 브이로그 장면 중 일부. 

“심정지 환자 도착” 영상, “환자 살리는 ‘나 자신’에 취했나” 

지난달 30일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올린 2분짜리 브이로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호사인 A씨는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면서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가 다수 내원 예정이라는 동료의 연락을 받고 가고 있다”며 응급실로 뛰어들어간다. 옷을 갈아입고 소생실로 간 그는 “벌써 네 번째 심정지 환자가 도착했다”며 피묻은 장갑을 보여준다. 이후 “2시간30분이 흘렀다. 열심히 소생술하고 퇴근하는 길이다. 20~30대 젊은 환자라서 안타깝다” 등 멘트가 들어가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브이로그는 마무리된다.

원본 브이로그를 올린 간호사는 영상을 삭제하고 “환자가 있을 땐 영상을 찍지 않았다. ‘조회수 각 잡아서 신났겠다’고 하는데 저는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크게 논란을 부른 영상인 탓에 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간호사 브이로그 백업본’ 영상이 유통되고 있다. 백업본은 11월1일 기준 12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간호사 브이로그 백업본 영상에 달린 비판 댓글. 
▲간호사 브이로그 백업본 영상에 달린 비판 댓글. 

백업본 영상 댓글에도 원본을 찍은 간호사에 대한 비판이 여전하다. “현직 간호사인데 너무 충격이다. 정신없는 소생실에서 피묻은 장갑 찍고, 애초에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영상을 건지려고 출근한 것 같다”, “환자에 대한 사항은 가족분만 공유하는 것인데 간호윤리와 의료법 시간에 주무셨나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급박한 상황에 핸드폰 찍고 돌아다닌다는 게 소름이다”, “피해자분들을 살리는 ‘나 자신’에 취한 듯”과 같은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해당 대학병원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내 징계 등의 사안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만 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도 “요즘 온라인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된 징계 논의나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협, 지난해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배포

대한의사협회의 경우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많아짐에 따라 지난 2015년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개인 SNS를 이용하는 의사들이 많아져 지난해 9월에는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일부 의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환자 진료 정보를 누설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이것이 윤리적, 사회적 문제로 확대·재생산됨에 따라 이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2018년부터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개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 가이드라인 기본원칙 1항(개인의 정보와 비밀보호)은 “의사는 환자의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령과 의사윤리 지침이 소셜미디어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며 식별 가능한 환자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4항(전문가로서의 품위)은 “부적절한 소셜미디어 사용은 의사 개인의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동료 의사를 포함한 의료계 전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부정적 인식을 유발할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대한의사협회의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대한의사협회의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대한의사협회의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 

“의대 교육 등에서 SNS 활용 교육 확대 중”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1일 통화에서 “얼마 전 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SNS만 보고 언론을 통해 진단하는 상황이 있어서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적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사회적으로 물의가 된 사안이고,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의 경우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수많은 의료진의 SNS를 직접 살펴보면서 징계하는 사례는 드물다”면서 “다만 최근 의대 교육에서부터 소셜미디어 활용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관련 교육을 확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이번 참사와 관련 한 의사가 SNS에 세세한 묘사를 올려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는데, 내부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다”며 “그러나 TV 방송이나 SNS를 통해 환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환자 정보가 특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교육이나 정보 제공 목적에서 사례로서 이야기할 수 있다. 경계가 매우 모호한 상황이라 내부적으로도 계속 논의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 스스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의협에서도 이런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가이드라인을 전달할 것이다. 관련 교육 역시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의사들 SNS 사용으로 면허정지도…“선 지켜야”

실제 지난 6월 의료정책연구소가 펴낸 ‘의사의 올바른 소셜미디어 사용 실천을 위한 온라인 교육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소셜미디어 활용 가이드라인 실천을 위해 의사들을 교육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서에 따르면 이미 해외에서는 페이스북 등을 활용하는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미국의사협회 의료윤리강령, 미국내과학회 및 주정부의료위원회연맹, 미국외과학회 소셜미디어 윤리적 사용 지침, 미국 성형외과 전공의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 영국 ‘General Medical Council’(GMC)의 의사 소셜미디어 사용 지침 등을 소개한다. 또한 의사의 소셜미디어 사용 관련 부적절 행동 사례를 연구해 교육에 사용하고 있다.

연구서가 언급하는 미국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996명을 조사한 결과 39명이 전문직업성 위배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폭음, 음란 사진, 환자 개인 정보 보호법 위반이 이에 해당됐다. 또한 영국 GMC는 의사대표연합체이며 면허관리기구인데 2015년 1월1일부터 2017년 6월30일까지 의사의 SNS 28건을 조사했는데 그 가운데 의사 3명이 경고를 받고 2명의 의사는 의사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사진출처=의료정책연구소, “의사의 올바른 소셜미디어 사용 실천을 위한 온라인 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서. 
▲사진출처=의료정책연구소, “의사의 올바른 소셜미디어 사용 실천을 위한 온라인 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서. 

연구서는 소셜미디어에서의 환자 정보 보호와 관련 “의사가 환자 정보를 특정하지 않았더라도 온라인에 게시할 때 환자 본인 또는 환자와 가까운 사람은 식별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모범사례를 소개하면서 “의도치 않았더래도 휴게실이나 화장실에서 동료와의 대화에서 환자 정보를 이야기할 때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다”, “환자의 메모나 종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까지 포함돼 있다.

더 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는 의료정책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의사의 올바른 소셜미디어 사용 실천을 위한 온라인 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링크)

‘헬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지난 31일 통화에서 “의료진이 브이로그를 올리거나 각종 콘텐츠를 통해 환자 이야기를 전하는 문제는 의협의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지 여부와 함께 윤리적 차원에서 따져야 한다”며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환자나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선 넘는 사례들이 늘어나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중적 인기에 취하면 윤리적으로 둔감해질 수 있고 의사의 소명 의식이 옅어질 수 있다. 최근 의사들이 유튜브 콘텐츠 등에 출연하여 환자 사례를 이야기하며 예능화하는데 아슬아슬해 보인다”며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 종사자들과 의료진 스스로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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