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에 정부광고를 의뢰받고 광고비를 받았는데 지면에 다른 광고를 게재한 일명 ‘도둑 정부광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당국의 해결책 모색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광고주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에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신문사는 묵묵부답이다. 언론재단은 도둑 정부광고 전수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언론재단·문화체육관광부 등 당국이 도둑 정부광고 문제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감사원 감사·검찰 수사 등을 통해 문제를 저지른 신문사와 광고주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윤수현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윤수현 기자.

최우선 과제는 언론재단 역할·책임 강화다. 정부광고 독점대행사인 언론재단은 광고주와 신문사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언론재단은 신문사와 광고주 중간에서 지면 구매, 증빙자료 전달·검증 등 업무를 맡는다. ‘증빙자료’란 광고 게재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신문사가 만든 자료를 뜻한다. 신문사는 광고가 실린 지면을 촬영하거나, PDF를 증빙 자료로 제출한다.

증빙자료는 ‘도둑 정부광고’ 사건의 스모킹건이었다. 언론재단은 신문사가 허위 증빙자료를 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이를 확실하게 검증하지 않고 광고비·수수료를 청구했다. 언론재단이 증빙자료를 실제 지면을 비교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절차’는 언론재단이 광고비 10%를 수수료로 받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민간 광고업계에서도 대행사가 광고 전반을 관리한다. 익명을 요구한 광고업계 관계자 A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민간광고에서 도둑광고 사태가 벌어진다면) 광고주가 대행사에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기업은 수수료를 주고 대행사에 일을 시키는 거다. 광고가 정상적으로 집행된다는 전제 조건에서 수수료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한국광고PR실학회장)는 정부광고 시스템 고애드(GOAD) 체계화를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홍 교수에 따르면 고애드는 업무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일 뿐 관리·감독 기능은 없다. 도둑 정부광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고애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광고 통합지원시스템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광고 통합지원시스템 홈페이지 갈무리.

언론재단은 정부광고 업무이행계약서를 갱신하는 것을 도둑 정부광고 후속 조치로 내세웠다. 갱신 계약서에 따르면 언론재단은 언론사가 정부광고 의무를 다하지 않을 시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사가 계약서 갱신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언론재단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마땅히 없다. 실제 일부 언론사는 계약서 갱신에 반대하고 있다. 홍문기 교수는 “그런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고애드에는 그런 게 없다”고 밝혔다.

언론재단 내부관계자 B씨는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현재 직원 규모로는 모든 정부광고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는 “언론재단에서 실제 광고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60명 안팎이다. 이들이 모든 정부광고를 검수하고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공공기관 인력이 대폭 늘어나긴 쉽지 않다. 이에 B씨는 정부광고 전문 모니터링 요원을 시간제로 채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했다.

B씨는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정부광고를 검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체 검수가 불가능하다면 정부광고 10~15%를 무작위로 점검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B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 광고 전문가, 주무 부처 관계자 등이 모여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며 “문체부 중심의 TF를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LH 측은 “언론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조속히 사후조치를 진행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LH, 팩트 틀린 광고 의뢰하기도…“감사원 정부광고 감사해야”

언론재단에만 사건의 책임을 물을 순 없다. 하나의 지면을 가지고 광고를 두 번 받은 신문사, 국민 세금으로 광고를 의뢰했음에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광고주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신문사가 단독으로 광고를 바꿔친 것인지, 광고주들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거나 요구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광고주의 정부광고 의뢰 과정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LH는 광고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수년간 동일한 시안을 사용했고, 이 중에는 팩트가 틀린 부분도 있었다. 증빙자료를 보면 2019년~2021년 광고 시안이 동일했다. 시안에는 ‘정부경영평가 2년 연속 A등급’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LH는 2021년 6월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12월18일, 2021년 8월31일 LH 광고 시안에는 ‘정부경영평가 2년 연속 A등급’ 문구가 있다. 이 광고들은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LH 경영평가 등급에 대한 보도와 이후 LH가 조선일보에 의뢰한 광고 시안 편집.
▲LH 경영평가 등급에 대한 보도와 이후 LH가 조선일보에 의뢰한 광고 시안 편집.

LH가 8개 종합일간지에 집행한 정부광고 총액은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2년3개월 기간에만 73억7928만 원인데, 바꿔치기된 정부광고는 50억2300만 원에 달했다. 총광고 건수는 353건, 이 중 바꿔치기된 정부광고는 170건(48.15%)이다. LH가 신문사에 집행한 광고 10건 중 5건이 도둑 정부광고인 셈이다. LH 측은 언론재단이 보내온 증빙자료를 확인했다는 입장이지만, 수백만 원~수천만 원에 달하는 광고를 의뢰한 후 170차례나 실제 지면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홍문기 교수는 감사원 감사·검찰 수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현재 정부광고는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는데, 광고비가 국민 세금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감사 대상이 되는 게 맞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당연히 감사받아야 한다. 검찰의 수사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역시 “이번 사건은 정육점이 고기 중량을 속여 판 것과 다르지 않다. 언론사가 사기 친 것이고, 정부·공공기관의 직무유기이자 직무태만”이라며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우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광고비 단가 산정을 체계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광고가 실린 지면 부수를 책정해 광고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도둑 정부광고를 게재한 신문사들은) 초판·지방판에만 광고를 싣고 자신들의 발행부수 만큼의 광고비를 받았을 것”이라며 “언론재단이나 문체부가 정부광고 지면이 얼마나 되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신문사, 지면에선 “부채 규모 우려” 뒤에선 ‘도둑광고’

한편 LH의 정부광고를 바꿔치기한 신문사들은 해당 기간 지면에서 LH 경영 상황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2020년 11월24일 사설 ‘전세 대란 만든 정부, 빚더미 공기업에 또 8조 떠넘기기’에서 ‘11·19 부동산 대책’ 때문에 LH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정부는 전세 대란 대응책으로 2년간 전세 물량을 11만여 가구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10조 원이 넘는 비용 중 최소 8조 원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부채로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한다”며 “안 그래도 부채 덩어리인 LH를 빚더미에 앉히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LH 관련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 동아일보 LH 관련 사설 갈무리.

사설이 나오고 사흘 뒤인 11월27일과 11월28일, 조선일보는 LH 광고 2건을 바꿔치기했다. 총광고비는 5000만 원이다. LH 광고가 있어야 할 지면에는 복층형 오피스텔 분양 광고, 밍크코트 광고가 있었다. 조선일보는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해 중순에도 3차례(3월·5월·8월) 지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3월22일 기획재정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사설 ‘‘LH 성과급’ 성난 민심에 公기관 평가 뒤늦은 땜질 개편’을 내고 LH에 ‘준법정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설 발표 한 달 뒤인 지난해 4월 말, 동아일보는 LH 광고 2건을 바꿔치기했다. LH 광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속초 아파트 분양 광고, 현대자동차그룹 광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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