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국가가 전문가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학자들은 국회의원처럼 개별적으로 독립된 존재다. 전문지식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 그 판단이 필요해서 정부가 전문가를 쓰는 것이다. 학회의 추천을 받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감사원 감사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문가 역할이 부정당하는 것이다. 당신의 점수가 범죄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정훈 신한대 리나시타교양대학 교수)

“앞으로 언론학자들이 심사위원으로 들어갈 상황이 생기면 들어가겠나. 며칠 동안 갇혀서 자유가 억압되는 심사절차다. 지금 같은 상태가 벌어진다면 저는 안 들어간다. 점수를 높게 줬냐 낮게 줬냐 따져 묻고, 공무원이랑 공모했는지 묻는다. 합리적으로 앞으로 어떤 심사도 안 들어가는 게 맞다. 내 판단이 부정당할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결국 도구적·당파적인 사람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15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대 언론학회가 ‘방송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15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대 언론학회가 ‘방송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15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대 언론학회가 ‘방송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에선 언론학자로서 전문가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앞서 지난 8월부터 감사원 행정안전감사 4과가 종편(TV조선·채널A)·보도전문채널(연합뉴스TV·YTN) 재승인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 13명 중 일부가 TV조선·채널A 재승인 점수 조작 정황이 있다며 감사원 출석을 요구하거나 방문하는 등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이후 감사원은 재승인 심사가 조작된 정황을 발견했다며 감사자료를 검찰에 이첩했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재승인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자택 압수수색을 비롯해, 차량과 핸드폰 등을 압수했다. 또 방통위 직원들을 찾아가 핸드폰 등을 압수했다.

“감사원 감사, 행정부 권력이 직접 작용할 통로 만든 것”

이날 긴급토론회에 참여한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번 감사원 감사를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린 행위’로 평가했다.

홍원식 교수는 정당이 직접 참여하는 대신 위원을 추천하고, 심사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하는 현재의 방통위 논의 구조를 언급하며 “그런 구조에서 견제와 균형이 발생한다. 정치 중화적 모델에 가깝다”며 “이번 감사원의 감사는 견제와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정치적 독립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린 선례를 만들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행정부의 권력이 직접 작용할 통로를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감사원 모습. ⓒ 연합뉴스

홍원식 교수는 “그렇다면 감사원은 이런 영향력을 발휘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투명성을 갖췄어야 한다. 적어도 감사 결과 발표를 했어야 한다”며 “최근 서해 공무원 사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 감사 결과는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학문적 자존심을 갖고 심사위원을 추천했는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추천 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다.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임위원 4명(정부 추천 1명, 여당 추천 1명, 야당 추천 2명) 등으로 구성된다.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심사위원 13명은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뽑는데, 심사위원들은 학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한다. 이처럼 여러 단계의 추천을 거쳐 정치적 개입을 ‘중화’시키는 모델을 운영해왔는데 감사원(행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최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방송사들이 재승인·재허가 심사를 받는 이유는 ‘시청자 보호’ 때문”이라며 “위원장을 빼고 12명의 심사위원들이 평가했다. 정성평가 부분에 있어 개인 차이는 분명 있을 수 있다. 성향에 따라 채점할 수도 있지만, 그걸 고려해 학회에서 복수로 전문가를 추천했다”고 했다. 

최용준 교수는 “18년간 여러 심사를 해봤지만, 감사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심사위원이 점수를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조사하는 걸 처음 봤다”며 “점수 수정은 가능하다. 수정은 전문성을 가진 심사위원의 권한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나. 특정 사업자(TV조선)에 의해 이 문제가 발발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TV조선은 감사원 감사 결과 점수조작 정황이 있다는 점 등을 보도했다.

최 교수는 “동료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 다 통과된 다음에도 왜 이제 와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건지 알 수 없다”며 “종편 사업자들이 국민을 위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평가한 건데, 거부되는 상황이라면 학자들의 양심, 전문가로서 자질에 기반한 심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재승인·재허가 제도와 전문가 자질 등이 모두 부정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재승인 관련 시청자의견 3만2355건 접수
TV조선, 1만7133건 접수… ‘75%’ 불승인 원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개된 자료인 700페이지가 넘는 2020년 상반기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재승인 백서를 살펴봤다”며 “최초로 도입된 ‘국민이 묻는다’(재승인 관련 시청자 의견)에서 시청자 의견을 방통위가 물어본 다음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주고 비정량 심사를 했다. 3만2300건 정도의 의견이 접수됐다. 이중 1만7000여건이 TV조선에 관련된 것이었다. TV조선이 시청자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합의할 수 있는 사실관계가 아닌가. 심사위원 심사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상반기 종편·보도전문채널 재승인 백서’를 보면 방통위가 2020년도 종편·보도전문채널 재승인 관련 시청자 의견청취(국민이 묻는다 포함)를 2019년 12월20일부터 2020년 1월19일까지 실시한 결과 TV조선 1만7133건, 채널A 8154건, 연합뉴스TV 4118건, YTN 2950건 등으로 총 3만2355건이 접수됐다. 백서는 “TV조선의 경우 불승인 비율이 약 75%, 채널A 약 77.6%였다”고 밝혔다.

▲‘2020년 상반기 종편·보도전문채널 재승인 백서’.
▲‘2020년 상반기 종편·보도전문채널 재승인 백서’.

김민정 교수는 이어 “중점 심사에서 과락이 나면 총점 합격선이 넘는다고 해도 조건부 재승인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TV조선은 중점 심사 항목에서 과락이 됐다. 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공정성의 역할을 따지는 항목이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교수는 또 “730쪽의 자료를 다 읽으면서 업무량이 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위원들이 상당히 꼼꼼히 자료를 검토한 다음에 구체적이고 자세히 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원 간 이견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심사 점수를 고치는 건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고유한 권한이다. 점수를 수정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심사 과정을 방해하고 부당한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한 것처럼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TV조선 재승인 심사를 담당한 일부 심사위원들은 검찰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김민정 교수는 “이 혐의는 두 가지 성립요건이 필요하다. 행위자가 자신의 유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무원과 국가기관을 속이면서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TV조선 재승인을 막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허위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나”라고 짚은 뒤 “심사위원들 평가 이후 방통위의 사업자 청문 절차,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총 심의를 한다. 방통위원들의 심사 절차를 무시하는 법 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정훈 신한대 교수는 “재승인·재허가 심사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필요로 학계 추천을 받아 심사에 참여했다. 전문가들의 평가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부정당하는 것”이라며 “전문가 집단인 학회가 전면적으로 부정당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대 사회의 복잡도가 높아지면 질수록 정부는 전문가 의존도 활용이 높아지게 될 텐데 제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면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우려했다.

이정훈 교수는 “제일 싫었던 감정은 제가 불안하고 무서웠다는 점이다.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서웠다. 이런 식으로 전문가와 국가의 관계 설정되는 게 맞는가. 근본적으로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학회는 날 보호해줄 수 있을까.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있나. 정성평가라고 해도 전문가들은 수시로 회의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단이 일말의 주관성이 안 들어갈 수 있겠느냐. 사실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부조리하고 현 상황이 초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긴급토론회 시작에 앞서 안차수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은 “방통위는 공적 기구로서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심사를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 심사해왔다. 전문가를 학회에서 추천해왔다”며 “올해 감사원에서 감사하면서 민간 심사위원을 조사했다. 특별히 드러난 증거도 없이 검찰에 넘겼다. 학자들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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