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성범죄 사건을 재연 화면으로 묘사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마치 실제 성착취물인 것처럼 묘사했고, 자극적으로 시청률을 높이려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해당 프로그램을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방송한 것을 두고 ‘청소년들에게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제작진의 소명에 위원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4일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올해 5월9일부터 6월27일까지 방영된 케이블 방송 채널 iHQ ‘걱정말아요 그대, 변호의 신’ 제작진의 의견진술을 들었다. ‘변호의 신’은 연기자들이 촬영한 재연 화면을 통해 드라마식으로 사건을 보여주고 실제 변호사들이 조언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이다.

문제가 된 6월13일 방송분은 남성이 약을 탄 숙취해소용 음료를 여성에게 건넨 후 모텔에서 성폭행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동영상 유포에 대해 협박하고 성착취를 하는 등 폭력적인 행위를 동반한 성범죄 사건을 재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 '변호의 신' 방송화면 갈무리.
▲ '변호의 신' 방송화면 갈무리.

특히 15세 등급으로 편성된 해당 방송은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세 차례나 재방송됐다. 청소년 보호 시간대는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된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되는 시간대로 평일에는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며 토, 일요일, 공휴일, 방학 기간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규정되어 있다.

의견진술에 참석한 배현지 iHQ 외주관리팀장은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대해 “가장 큰 기획의도는 실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추가적 피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해당 프로그램을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편성한 것은 청소년들에게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라고도 말했다. 이제승 iHQ 편성기획팀장은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있어 그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라며 “청소년들에게도 이것이 범죄고 안좋은 일이라는걸 알려주기 위해 15세 등급으로 편성했다”고 했다. 아울러 “처음 기획의도보다 프로그램이 너무 깊숙하게 다루고 있어서, 진행될수록 15세 등급 취지하고는 벗어난 것 같다”고 했다.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폭력, 성폭력 행위를 묘사할 때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며 “성적 폭력행위를 자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19세 등급에도 적합하지 않다. 성폭행한 장면을 마치 휴대폰 동영상 촬영하듯이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피해 여성 다리에 빨간글씨로 ’미안해‘ 라고 새기는 등 마치 성적 착취물처럼 프로그램이 제작됐다”고 지적했다. “성착취물 관련 문제를 영상화했을 때 피해 여성들이 느낄 고통을 예상할 수 있는데 자극적으로 다룬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도 했다. 

아울러 “이 회차만 봤을 때,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법률적 조언을 시청자에게 주었고 청소년들에게 어떤 경각심을 주었냐”며 “앞으로는 직장상사가 준 음료를 먹지 말라는 조언인가. 도대체 피해 여성은 법률 지식을 미리 알았다면 무엇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냐”고 비판했다. 

▲ '변호의신' 방송화면 갈무리.
▲ '변호의신' 방송화면 갈무리.

이에 배현지 팀장은 “아이템에 대해 세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범죄 가해자가 공무원이었고, 충분히 근처에 믿을만한 사람들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이제승 팀장은 ”마지막에 어떤 처벌을 받았고, 어디로 상담을 하라는 안내자막을 냈어야했는데 세심하게 신경쓰지 못했다. 향후에는 좀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에 윤 위원은 “다시 이런 취지의 프로그램은 제작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광복 소위원장(국회의장 추천)도 “n번방 사건과 유사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 내용이) 그 사건들과 다른 게 뭐가 있냐”며 “(이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으로 경각심을 갖게 하고 꾐에 빠지지 말라는 뜻에서 제작했다는 것은 통하지 않는 얘기”라고 했다. 

아울러 “사건을 보고 흥미 위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며 “자극적으로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뜻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우석 위원(국민의힘 추천)도 “관계자 징계나 과징금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조기종영을 한 이유도) 선정성을 통해 시청률을 높이려하다가 결과적으로 시청률이 안나오니까 접은 것 아닌가 의심도 든다”고 했다. 

반면, 황성욱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표현 수위 정도에 대해서는 규율하기가 쉽지 않다. 심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법정제재가 나간다면 현장에서 과연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 안건은 위원들 간의 제재 수위에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해 다음 방송소위 때까지 의결을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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