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당장 특정 정권이나 정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국면에 위치한 순 있지만 지지할 명분과 이유는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자신이 표를 주진 않았지만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올리거나 좋은 정책을 내놔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면 일시적으로 국정 운영을 긍정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취임 6개월 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는 위기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9월 5주차)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24%가 긍정 평가했고 65%는 부정 평가했으며 그 외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11.2%다. 

24%는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받은 득표율이기도 하다. 대다수 언론이 ‘취임 후 최저치’에 초점을 뒀지만 또 다른 위기 요인이 있다. 

▲ 지난달 24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 지난달 24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한국갤럽 해당 조사 중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 평가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가장 많은 답변은 ‘모름·응답거절’로 23%를 차지했다. 이미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지지한다고 답변했음에도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답하지 못한 비율이다. 

그 다음으로 비율이 높은 건 ‘외교’(8%), ‘열심히 한다’(7%), ‘전반적으로 잘한다’(7%) 순이었다. 이 역시 현 정부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이유로 보기 어렵다. ‘열심히 한다’나 ‘전반적으로 잘한다’는 것은 ‘모름·응답거절’ 못지않게 사실상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지지하는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외교의 경우 전반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서 비속어 논란 등 불필요한 이슈로 번졌기 때문에 긍정평가 요인으로 평가받긴 어려운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 1위가 외교(17%)인 것을 볼 때 ‘외교’를 잘했다고 응답한 답변자들 역시 윤 대통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층일 가능성이 크다. 

앞선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달 20일에서 22일 실시한 9월4주차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역시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평가한 응답자 중 21%가 긍정평가 이유에 대해 ‘모름·응답거절’을 택했다. 그 뒤로 ‘열심히 한다’가 9%, ‘국방·안보’가 7%, ‘전반적으로 잘한다’가 6%로 각각 나타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30%대로 내려가면서 윤 대통령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마저 돌아섰다는 게 수치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지지의 이유나 내용 면으로 봐도 별 다른 이유 없이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만 남은 것이다. 또한 국정운영에 중요한 부분은 거대 양당에 대한 지지를 옮겨가는 스윙보터(중도)층이다. 이들은 긍정평가의 이유가 구체적이고 명확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 새 정부는 자신들 정부의 핵심 의제나 키워드를 내걸고 정권 초 전국민적 기대감을 받으며 이를 추진한다. 마땅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평가가 여론조사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어렵기에 정권 초부터 ‘무엇을 하려는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임 정부의 비슷한 시기엔 어땠을까. 2017년 9월26~28일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 1위가 ‘소통잘함·국민공감노력’(16%), 2위가 ‘개혁·적폐청산·개혁의지’(12%), 3위는 ‘서민위한노력·복지확대’(11%)로 집계됐다. 당시 정부의 성격과 추진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그것들이 지지를 받으며 정권 초를 보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65%, ‘잘못하고 있다’가 26%로 각각 나타났다. 

▲ 지난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 지난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한편 9월5주차 조사에서 부정평가 이유로 ‘외교’(17%)를 가장 많은 응답자가 선택했고, ‘발언 부주의’도 8%로 나타났다. 이번 해외순방 과정에서 실책이 이번 지지율 하락에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그 외에 ‘경험·자질 부족/무능함’(13%), ‘경제·민생 살피지 않음’(7%), ‘전반적으로 잘못한다’(6%), ‘진실하지 않음/신뢰 부족’(6%) 등이 부정평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권 초 인사실패가 부정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던 가운데 최근 대통령의 무능과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 부족이 실망감으로 나타나는 분위기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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