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 공방 보도 홍수 속에서 유독 빛나는 뉴스가 있었다. 경기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투병과 생활고 끝에 생을 마감한 세모녀의 인생사를 재조명한 지난 9월 29일자 한국일보 1면 “20년 가난과 싸우다 아플 새도 없이 떠났다”라는 기사다. 

지난 8월 21일 세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을 때 우리 언론은 앞다퉈 유서의 내용을 소개했다. 그리고 암 투병을 한 어머니, 희소병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40대 두 딸이 겪었던 고통을 전하면서 복지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모녀사건 이후 여전히 정부 시스템이 부족한 현실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됐다는 내용이 뒤따랐다. 위기가구와 공적지원 비율 숫자도 재소환됐다. 그리고 9월 한 달간 세모녀 사건은 서서히 잊혀갔다.

한국일보는 세모녀 사건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관련기사를 통해 세모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한발짝 더 들어간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모녀가 수원으로 이사오기 전 살았던 동네를 찾았고 2년 전 첫째 아들이 사망한 일을 보도했다. 아버지 회사 부도로 생계를 책임졌던 첫째 아들의 삶에서비정한 세모녀 사건은 예고돼 있었다.

한국일보는 “20년 동안 죽어라 일만 했던 현수씨를 쉬게 해준 건 ‘루게릭병’이었다”면서 이번 사건을 ‘세모녀’ 대신 ‘현수네 식구’로 명명했다. 그리고 “현수씨 가족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꿈 많았을 20대 청년은 20년간 아등바등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면서도, 왜 국가에 SOS(구조) 신호 한 번 보낼 수 없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국일보 보도는 세모녀 사건의 이면을 한층 더 파헤치고 맥락을 전달하면서 비극의 책임이 사회적 무관심에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타까운 사건이 터지면 온갖 통계가 등장하고 재발방지라는 틀에 박힌 말로 끝을 맺고 잊혀져간다. 언론이 현장에 오랜 시간 천착해야되고 이야기를 길어 올려야하는 이유다. 

독자의 눈을 붙들기 위한 우리 언론의 노력이 없진 않다. 동아일보는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고 텍스트 문법에 벗어난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들었다. 이야기 전달 방식인 ‘네러티브’를 잘 구사하기 위해 팀에 배속된 취재기자들이 샘플기사를 쓰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뽑힌 기자가 초고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최근 선보인 콘텐츠 주제는 순직 공무원이다. 사망 사고가 터져야만 반짝 관심을 기울이고 열악한 환경을 탓하는 형식의 보도 패턴에서 탈피해 순직 공무원 유족을 설득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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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문제를 어떻게 우리네 삶으로 연결 지을지도 머리를 싸매고 있다. MBC 현인아 기자는 ‘방송기자’(방송기자연합회 발간)에 기고한 글에서 “기후 이슈가 언제나 뉴스 아이템으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뉴스 결정권자들의 취향에 따라 그저 비가 온다는 이야기, 아니면 어차피 틀릴 게 뻔한 이야기, 혹은 머리 아픈 과학 이야기로 치부하기가 쉽다”면서 “이산화탄소 농도 421ppm, 메탄농도가 1,909ppb를 넘어 또다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는 걸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에게 이러한 숫자가 어떤 의미라는 걸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까”라고 털어놨다.

결국 독자에게 적극적인 말걸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포털 네이버가 양질의 기획기사를 배치한 심층기획 코너의 알고리즘 추천 비중이 늘어났다는 소식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비록 ‘가두리 양식장’이라 비판받는 포털이지만 좋은 보도를 유통시키는 창구로서의 변화를 꾀하는 건 고무적이다. 포털 다음이 기자협회 등 언론유관단체들로부터 상을 받은 보도 수상작을 모아 소개하는 코너를 운용하는 것도 변화 중 하나다. 

매체별로 좋은 보도를 출품하고 독자들이 투표해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정파적 뉴스 소비로 흐르고 인기 투표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출품작 기준을 엄격히 하고 독자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를 만들면 좋은 보도를 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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