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5일 MBC 시사프로에 출연해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밝힌 데 대해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이 "대통령이 국민 간 갈등과 혼선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신문 등은 오히려 "한나라당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법리적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지난날 국가보안법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보면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며 "국민주권 시대, 인권존중 시대로 간다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에 와서는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지키고자하는 것이고,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며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형법 몇 조항 고쳐서라도 형법으로 하고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 "북 위협 없다는 확신 심어줘야"…중앙·동아 "대통령이 혼선 부추겨서야"

이에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6일자 사설을 통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 ⓒ 조선일보 6일자 31면
조선일보는 <국보법 없애야 문명국가라는 대통령 인식>이라는 사설에서 "대통령 이야기는 결국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야만국가라는 말과 한 가지"라며 "대통령이 정말 국보법이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왔다고 주장하려면 그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대통령이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법 없이도 대한민국이 북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 국보법의 유지 또는 개정측에 서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과거 국보법의 악용 사례를 규탄해 왔으면서도 이제는 정권에 의한 악용의 위험은 없어졌으니 국보법의 체제 보호 기능을 살리자는 입장이란 걸 대통령 주장과 비교해 보면 여러 생각이 심중을 오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 중앙일보 6일자 34면
중앙일보도 <대통령이 보안법 혼선 부채질하나>라는 사설에서 "국민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정책의 혼선을 부채질하는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며 "사법부와 행정부의 핵심기관이 보안법 개폐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안법이 역대 정권에 의해 악용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를 보위하는 순기능을 해왔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아직 북한은 남측을 해방하겠다는 노동당 규약을 손댈 생각도 않고 있다"며 "그렇다면 지금은 보안법을 개정하고, 폐지문제는 남북한의 신뢰가 구축되고 화해협력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동아일보 6일자 2면
동아일보도 <대통령, 헌법기관과 대립각 세워서야>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헌재와 대법원이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그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려깊지 못했다는 지적은 면할 수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법의 상징성이 너무 커서 찬반이 첨예하게 갈려 있는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방향을 미리 제시하고 그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면 균형 잡힌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도 <"국보법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라는 사설에서 "분단 상황에서 국보법이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는 보호벽 역할을 해온 것 자체까지를 부정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도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으로">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공적인 행사인 방송 인터뷰를 통해 극단적인 표현으로 보안법 폐지론을 피력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보안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야만의 국가에서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과한 표현'" "보안법의 부분적 폐해를 인정한다 해도 '야만의 국가' 등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철저히 부인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서울 "한나라, 정체성 논란 확대 안돼" 한국 장명수 "보안법 논란 정치화 경계"

   
▲ ⓒ 서울신문 6일자 31면
반면 서울신문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정략적 이용을 경계했고,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는 국보법의 논란을 정치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해 대조를 보였다.

   
▲ ⓒ 한국일보 6일자 3면
서울신문은 <대통령의 국보법폐기 희망 발언>이라는 사설에서 "첨예한 정치쟁점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국보법 논란이 빨리 정리돼야 한다"며 "토론은 충분히 하되 결론은 빠를수록 좋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안보적 무장해제, 헌법체제 도전'이라고 폄훼하면서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시켜서는 안된다" "현행 국보법이 크게 손질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본다"며 "대통령과 사법부의 정면충돌로 몰아가고 여야가 극한대립을 하는 빌미로 삼는다면 우리의 정치는 또 뒷걸음질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는 이날 <국보법 논란 정치화 말라>는 '장명수 칼럼'에서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보안법 논란의 정치화"라며 "여야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보안법 개폐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당론이 아닌 소신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