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한 욕설이 파문을 부른 가운데, 15시간 만에 내놓은 대통령실의 해명도 석연치 않다. 국내를 넘어 외신, 미국 의회까지 이번 논란이 전해지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윤 대통령이 현지 시간으로 21일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면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을 바라보면서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것이 현장취재하던 방송사 카메라에 담겼다. 국내엔 22일 오전 소위 ‘지라시’ 형태로 해당 영상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MBC를 시작으로 주요 방송사가 이를 유튜브 등으로 공개했다.

맥락상 이 문장의 ‘이XX’는 미국 의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앞선 기조연설에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에 6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뒤라는 점에서다.

▲MBC 유튜브 갈무리
▲MBC 유튜브 갈무리

발언에 대한 대통령실의 첫 반응은 현지 시간으로 22일 자정 무렵 대통령실 관계자와의 백브리핑이었다. 순방 기자단이 대통령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외교참사’라는 비판에 대한 대통령실이나 미국 백악관·의회 반응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당시 윤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당사자들은 어떻게 들었냐는 질문도 나왔다.

당시 질문을 받은 관계자는 되레 해당 영상의 ‘진위 여부’를 문제 삼았다. “무대 위에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얘기한 것을 누가 어떻게 녹음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진위 여부도 판명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외교 참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들었냐는 데 대해선 “대통령께서 무사히 행사를 다음 회의가 많이 지체됐기 때문에 부리나케 나가시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취재진이 “그 영상은 누가 사적으로 불법으로 녹음 녹취한 것이 아니라 순방 기자단이 풀단(pool·대표취재단)을 지정해 풀러가 촬영한 것”이라며 “국내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고 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해당국의 의회 인사들이 굉장히 불쾌감을 표시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YTN 뉴스 갈무리
▲YTN 뉴스 갈무리

약 9시간 뒤인 오전 9시46분경, 논란이 불거진 시점으로부터 약 15시간 만에 김은혜 홍보수석이 입장을 밝혔다. ‘이XX들’은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의회이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결과적으로 어제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70년 가까이 함께한 동맹국가를 조롱하는 나라로 전락했다”며 “한 발 더 내딛기도 전에 짜깁기와 왜곡으로 발목을 꺾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라며 윤 대통령이 아니라, 그의 발언을 문제 삼은 행위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XX들’이 비속어라는 점은 인정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많은 기자들이 다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바이든이다’ ‘짜깁기, 왜곡은 누가 했다는 거냐’는 항의 섞인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국회를 향해 ‘이XX’라고 한 것이 맞다면 그에 대한 입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수석은 이에 “컨텍스트를 보면 충분히 이 안에 진영싸움이 얼마나 있는지 알게 된다”면서 “개인적으로 오가는 듯한 거친 표현에 대해 느끼시는 국민적 우려를 잘 듣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의회에 대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해명이 윤 대통령의 입장인지에 대해선 모호한 답변을 이어갔다. 직접 윤 대통령에게 물어봤느냐는 질문에 “나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라 답한 김 수석은, 대통령이 ‘날리면’이라고 말했느냐고 묻자 “오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바이든’과 ‘날리면’ 혹은 다른 바이든이 아닌 말로는 오차가 굉장히 크다. 바이든이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선 확신 갖고 말씀드린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 논란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폴리티코, 블룸버그 기사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 논란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폴리티코, 블룸버그 기사

이런 해명 뒤 윤 대통령의 페이스북 게시글은 또다른 논란을 불렀다.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참석 후기를 전하는 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대통령이 한국 국회를 향해 욕설을 했다면서, 사과 없이 협조 요청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해외 언론은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비난했다면서 해당 발언을 전하고 있다. 프랑스 뉴스통신사 AFP와 이를 인용한 미국 CBS와 폭스뉴스 등은 ‘이XX들’이라는 표현을 ‘f***rs’, 미국 워싱턴포스트나 블룸버그 등은 ‘idiots’로 번역했다. 앞서 트위터 등 온라인에선 이를 ‘bastards’라 표현한 번역 문장이 공유되기도 했다.

AFP의 경우 기사를 통해 “이 발언은 윤 대통령이 ‘교통 체증’을 이유로 영국 엘리자베스2세에 대한 조문을 생략한 결정으로부터 며칠 만에 나온 것”이며,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낸시 팰로시 미 하원의장의 한국 방문에 대해 혼란스러운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한국에서 ‘허니문’이라고 불리는 취임 초기에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윤 대통령 발언 논란은 미국 정가에도 상당히 확산된 상황으로 보인다. 김양순 KBS  워싱턴 특파원은 23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미국 의회관계자 특히 보좌관들에게 관련 내용을 물어봤는데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한 뒤, “한국 의회든 미국 의회든 간에 의회를 대통령 눈 아래로 본다는 시선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라는 미국 의회 보좌관의 반응을 전했다. 왕종명 MBC 워싱턴 특파원은 이날 ‘뉴스투데이’ 리포트에서 미국 국무부는 “한국 공직자의 발언은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면서 답변을 거부했고, 백악관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