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K씨와 국정원 요원을 함께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만난 그 분(K)은 까무잡잡한 인상이었으며, 눈매가 매우 날카로웠다. 강인한 인상이었다. 한눈에 봐도 ‘이 분, 살면서 왠지 많은 일을 겪은 분 같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갑생 중앙일보 기자가 떠올린 2011년 '한국인 K'에 대한 기억이다. 그는 2011년 중앙SUNDAY 기자로 재직할 당시 넷플릭스 ‘수리남’의 실제 사건인 ‘마약왕 조봉행 사건’ 검거의 조력자, 사업가 ‘한국인 K’(하정우 배역)를 단독 인터뷰한 기자다.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강갑생 기자는 2011년 중앙SUNDAY에서 단독 인터뷰를 썼을 때 이미 17년차 고참 기자였다.

강갑생 기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국정원’이라고 하면 ‘안기부’, ‘중앙정보부’ 등 좋지 않은 이미지가 컸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정원이 마약범을 잡으려고 외국에 나가서 정말 위험한 일을 해내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건 정말 알려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국정원 요원도 그랬지만 조력자 K씨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놀라웠고 이분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러한 일을 했는데 그냥 잊혀지기는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사를 쓴 이유를 밝혔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사업가 K의 역할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출처=넷플릭스 홈페이지.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사업가 K의 역할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출처=넷플릭스 홈페이지. 

넷플릭스 ‘수리남’이 하반기 화제작으로 대두되면서 2011년 실제 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언론은 2011년 국제 마약상 조봉행씨의 사건을 다시 한번 보도하고 있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마약왕 조봉행의 근황과 함께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한국인 K’에 대한 언급도 늘고 있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남미의 수리남에서 한국인 마약상(황정민)과 마약상으로 인해 사업에 피해를 받은 민간인 사업가(하정우), 마약상을 잡으려는 국정원 요원(박해수)의 이야기이며, 민간인 사업가의 공조가 빛나는, 실화 바탕의 이야기다.

2011년 조봉행 검거 기사는 나왔지만 자세한 사정은 안 다뤄져

해당 시리즈의 기반이 되는 실제 사건과 관련해, 2011년 6월 수많은 언론에 기사가 나왔다. “한국 출신 마약왕, 범죄인 인도로 구속 기소” 등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이고, 조씨가 검거됐고 10년간 감옥 살이를 하게됐다는 기사들도 나왔다.

수많은 스트레이트 기사 가운데,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중앙SUNDAY 강갑생 기자의 “수리남 군경이 마약왕 비호, 잡을 방법은 오직 외국 유인뿐”(링크)이라는 기사(2011년 10월2일)다. 해당 기사는 국제 공조를 실감나게 전달해, 넷플릭스 ‘수리남’이 공개된 이후 수많은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읽히고 있다. 이 기사 외에도 ‘한국인 K’에 대한 단독 인터뷰도 강갑생 기자의 기사다.

▲2011년 10월2일 중앙SUNDAY의 수리남 관련 국제공조 기사. 
▲2011년 10월2일 중앙SUNDAY의 수리남 관련 국제공조 기사. 

2011년 남미 수리남에 대규모 마약밀매조직을 구축한 조봉행씨가 브라질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된 뒤 검찰은 범죄사실을 소개했지만, 검거 과정에 대해선 ‘국제 공조’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강 기자의 기사에서는 2009년 7월23일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공항에서의 현장, 조씨가 처음 수리남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 그가 수배자가 된 사건들, 2007년 10월 국정원에서 검거를 나선 상황, 2007년 11월 ‘한국인 K’가 나타난 일 등 국정원과 ‘한국인 K’가 공조를 나서게된 배경과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강갑생 기자의 2011년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잘 전달돼 있다. 사진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강갑생 기자의 2011년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잘 전달돼 있다. 사진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그는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강갑생 기자는 “‘수리남’이 넷플릭스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 내가 썼던 기사가 소재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며 “11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학교 후배가 국정원 홍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기자는 “당시 국정원에 홍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고 기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연히 아는 후배가 그 일을 하고 있었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조봉행 사건 이야기가 나왔다”며 “그가 넌지시 말하기를, 조봉행 사건과 관련해서 사연이 정말 많은데 언론 기사로 노출할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일부분이라고 했다. 너무나 간략한 기사로만 전달되니 활약을 했던 많은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후배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괜찮으니 나에게 그 분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꼭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부탁했다”며 “그러나 국정원 측에서는 조직의 특성상 언론 공개를 꺼려하는 분위기였고, 부탁을 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일단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한국인 K와 국정원 요원 만나 기사 써, 첫눈에 인상 강했던 분”

그렇게 강 기자는 국정원 요원과 함께,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사업가 ‘한국인 K’를 만나게 됐다. 강 기자는 “국정원 요원과 K씨를 만났는데 K씨를 처음본 순간 정말 강인한 인상을 받았고 ‘참 많은 일을 겪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인상이었다”며 “그날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기사에 쓸 수 있는 부분을 추리고 정리하면서 기사를 쓰게됐다”고 전했다.

당시에도 강 기자의 기사가 나간 후, 한 영화사 쪽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진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당시 강갑생 기자가 쓴 '한국인 K' 단독 인터뷰. 
▲2011년 당시 강갑생 기자가 쓴 '한국인 K' 단독 인터뷰. 

“당시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K’에게, ‘이제 조씨가 검거됐고 당신 신원이 드러날 수도 있다. 다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K씨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K씨는 별다른 말은 안하시고, ‘그런 부분은 국정원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도 K씨의 정확한 신원이나 연락처는 나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국정원 요원과 함께 앉아 인터뷰를 했던 상황이고 K씨의 실명도 모른다. K씨가 인터뷰 내내 매우 놀랄만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셨던 기억은 뚜렷하다.

최근 넷플릭스의 ‘수리남’을 보고 난 후 강 기자는 “처음에 ‘수리남’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거 내가 옛날에 쓴 기사가 모티브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고,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수리남’을 보니 각색을 한 부분이 많았다.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고, 기사를 쓸 때도 ‘이건 정말 영화를 만들면 좋을 소재’라고 생각했었는데 10년 만에 영상화가 됐다”고 말했다.

강 기자가 쓴 K씨 인터뷰에도 등장하는 대목이지만, K씨는 당시 언제나 권총을 지니고 살았고 잠을 잘 때도 권총을 지니고 잠에 들었다고 한다. 강 기자는 “K씨가 늘 권총을 지니고 살았다고 말했지만, 현장에서는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여러 번 갔다고 한다. 국정원과 연락하는 걸 들킨 때에도 죽기 직전의 상황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정말 엄청난 인생을 사셨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수리남'.
▲넷플릭스 '수리남'.

강 기자는 “기사를 쓸 때 가급적 이 분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운 내용이 되거나, 피해가 가지않도록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분들이 했던 일 중에 드러나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어서 굉장히 신경을 쓰면서 기사를 썼다. ‘수리남’의 인기를 계기로 그때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를 많은 이들이 알아봐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K씨와 국정원 요원의 활약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리남’을 이유로 뒤늦게라도 알려져 뿌듯하다.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어쩌면 대규모로 마약이 들어올 수도 있었을 일이 막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K씨가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정말 궁금하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그렇게 지내시고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그 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강갑생 기자는 2000년 국토교통부 교통 담당을 하게된 것을 계기로 교통 관련 석박사 공부를 하게됐고, 현재는 중앙일보에서 교통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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