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MBC에서 11년 간 정직원과 다름없이 일하다 잘린 ‘프리랜서’ 예능·교양 PD가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춘천MBC는 해당 PD를 ‘해고’한 지 두 달 뒤 사내 파견·하청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 4명과 근로계약을 맺었다.

김현남(37·가명)씨는 지난달 11일 춘천MBC를 상대로 서울남부지법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춘천MBC가 한 해고가 무효임을 확인하고, 부당 해고된 지난 2월28일부터 근무에 갈음한 월 230만원 급여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김씨는 2011년 26세에 춘천MBC 조연출로 입사해 2014년부터 8년 간 편성제작팀 소속 예능·교양 AD 및 PD로 일하다 잘렸다. 김씨는 매일같이 춘천MBC 2층 제작팀 사무실 또는 현장에 출근하며 ‘맛깔세상’ ‘신나군’ ‘나이야가라’ 등을 연출 또는 조연출했다. 아이템 선정와 현장 통제, 완제(광고와 편성 시간대에 맞춰 방영분을 다듬음), 시사, 메인PD 지원 등 프로그램 제작 업무를 수행했다. 공채 신입사원과 인턴 교육을 수행하는 등 연출 외 다양한 업무도 해왔다.

▲김현남씨가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김현남씨가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그러던 그는 지난 1월 사측으로부터 카카오톡을 통해 ‘계약서 9조에 따라 계약을 종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측은 해당 조항의 뜻과 사유를 현재까지 설명하지 않았다. 11년차 정규직 직군이라면 노동법상 정당한 절차와 사유를 거쳐 해고해야 하지만, 사측은 ‘프리랜서’ 계약인 김씨에 대해선 간단한 ‘계약종료 통보’로 끝냈다.

앞서 김씨는 춘천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으나 사측의 완강한 태도에 이를 취하하고 소송을 택했다고 밝혔다. 김씨를 대리하는 정일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선)는 “사측이 노동자성을 전면 부정하는 태도를 확인했고, 노동위원회에선 법정에서처럼 증거 제출을 강요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 측은 소장에서 “원고(김씨)는 피고(춘천MBC) 방송사에서 9년 재직했고 그 중 7년이라는 기간 춘천MBC와 아무런 계약없이 춘천MBC가 지시하는 업무를 아무런 이의 없이 수행했다”며 “2018년 4월부터 4차에 걸쳐 도급 등 형식 계약을 김씨로부터 받아냈고 4차 계약 기간만료 시점인 2월28일 김씨를 해고했다”고 했다.

김씨 측은 “김씨가 수행한 직무 자체가 춘천MBC 메인 PD로부터 지휘와 감독을 받는 조연출 AD 내지는 코너 PD”였다며 “제작 및 연출 업무 외에도 춘천MBC의 명령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 예시로 △춘천MBC가 방송통신위원회 제작지원을 받기 위한 신청서와 사업계획서 작성 △공채 신입사원 직무교육 △김씨 담당이 아닌 프로그램 완제 △프로그램 수출과 판매 등을 춘천MBC 지시에 따라 해왔다고 밝혔다.

▲춘천MBC 나이야가라 프로그램 크레딧에 올라온 김현남 PD 이름.
▲춘천MBC 나이야가라 프로그램 크레딧에 올라온 김현남 PD 이름.

김씨 측은 “춘천MBC는 스스로 김씨가 자신의 소속임을 확인하는 (소속과 직무를 밝힌 경력증명서)증명서를 발급해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또 그가 2019년 9월 한국방송협회 한국방송대상과 한국PD연합회 이달의 PD상도 춘천MBC 소속 팀원으로 받았고, 춘천MBC는 방송사고에 따른 경위서도 제출하게 했다고 밝혔다. 김씨 측은 이를 두고 “전형적인 근로관계인 법률관계에서 보이는 양상으로 춘천MBC와 김씨 사이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라고 밝혔다.

김씨 측은 “춘천MBC는 2018년 즈음에 들어 돌연 김씨가 프리랜서라며 그가 독립 사업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며 “각 사안에 대하여 증거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춘천MBC 측 해고는 14년 간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CJB청주방송으로부터 해고된 고 이재학 PD의 사건과 겹친다. 청주방송에서 계약서 없이 14년 일하던 이 PD는 동료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해고당했고, 이후 부당해고로 사측과 법적 다툼을 벌이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저 처벌, 방송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촉구하며 ‘청주방송 고 이재학PD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청주지법은 지난해 5월 이 PD가 숨진 지 1년 3개월 만에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판결을 냈다. 

한편 춘천MBC는 김씨를 해고한 지 두 달 뒤 사내 일부 하청·파견 비정규직 또는 ‘프리랜서’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춘천MBC 등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5월 사내 MD와 뉴스편집자, 전기 시설 담당 노동자 등 4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은 춘천MBC에서 최소 10년 간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측은 이 같은 고용 구조를 유지해온 상황에 위법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춘천MBC 경영국장은 “지난해부터 고용구조 컨설팅을 진행해 나온 결과를 반영했다. 협력 직원 중 일부를 업무직으로 전환했다”며 “(김씨) 계약 해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다. 김씨 고용 형태에 대한 검토 여부를 묻는 질문엔 “고용 형태 판단에서 (계약 해지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이번 소송에 대한 입장과 이재학 PD 사건과 유사하다는 평가에 대한 질문엔 “김씨 건이 이재학 PD 사건과 상당히 다른 점을 확인했다”면서도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변론을 통해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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