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들은 같은 것들끼리, 다른 것들은 다른 것들끼리 놓고 서로 억지로 섞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네팔이 지금까지 민족과 종교 때문에 다툼을 벌이지 않았던 이유다. 서로 섞이지 않지만 서로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 이게 네팔 사람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존중한다. 다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는 타협하지 않는다.”(지극히 사적인 네팔, 245~247쪽)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라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며 적당하게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이 큰 갈등 없이 공존한다는데 일단 경외감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이에도 사생활을 서슴없이 물어보고 나이와 직급을 물어 상하관계를 정하며 평균과 다른 삶에 끊임없이 질책성 질문을 던지는 한국에서 이러한 네팔에 대한 평가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 수잔 샤키야. 사진=JTBC 비정상회담 갈무리
▲ 수잔 샤키야. 사진=JTBC 비정상회담 갈무리

 

JTBC ‘비정상회담’에 네팔 대표로 출연해 10년 넘게 한국에 거주하는 수잔 샤키야가 쓴 책 ‘지극히 사적인 네팔’에서 책 제목보다 “섞이지 않지만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이란 부제에 더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네팔에 대해 조금 더 접하고 나면 이 역시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을 세뇌받으며 살아온 한국인의 선입견이 포함됐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약 15년 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이 된 네팔에선 여전히 신을 믿고 소의 모든 것(배설물까지) 신성시하며 카스트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 뽑은 대통령마저 임기 5년을 다 채우지 않은 채 끌어내리기도 하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네팔은 쉽사리 바뀌지 않아 다소 답답해 보이는 사회다. 그럼에도 ‘내 안에 있는 신(神)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한다’는 뜻의 ‘나마스테’로 인사하는 네팔인들의 태도는 한국 사회에 부족한 부분이다. 

네팔을 구성하는 126개 민족이 서로의 다름을 평가하며 개입하는 순간 이 사회는 유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갈등 속에서 사회가 변한다면, 갈등하지 않는 법을 잘 터득한 네팔과 갈등을 또 다른 갈등으로 밀어내는 한국의 우열을 가리긴 곤란하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사회’라는 사실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본문에서 밝혔고, 책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이 책 하나로 네팔을 단정할 수 없다. 그저 카트만두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현재도 한국에서 일하는 수잔이 본 네팔일 뿐이다. 그렇지만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미지의 공간이기에 네팔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네팔에는 매달 축제가 있고, 축제로 인해 휴일이 있다. 휴일이 부족한 한국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수많은 축제 중 처음으로 소개한 축제는 네팔 여성의 날 ‘띠즈(Teej)’였다. 힌두교 전통에서 나온 축제인데 8월경에 진행한다. 축제 때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지 않고 기혼 여성들은 친정에 간다. 사흘 간 여성들은 금식을 하며 밖에 나가 춤을 춘다. 여권이 약한 네팔사회에서 이 기간 동안 여성들을 해방시켜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홀리(Holi)’라는 색채의 축제, 네팔의 할로윈으로 불리는 ‘가이 자트라(Gai Jatra, 소의 축제)’, 빛의 축제 ‘띠하르(Tihar)’ 등이 있다. 네팔을 여행할 생각이면 이 축제들을 기억했다가 참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 지극히 사적인 네팔/ 수잔 샤키야·홍성광 지음/ 틈새책방 펴냄
▲ 지극히 사적인 네팔/ 수잔 샤키야·홍성광 지음/ 틈새책방 펴냄

 

히말라야 얘기를 빠뜨릴 순 없다. 저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14좌 정복’을 소개하면서도 이렇게 지적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봤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왜곡이나 마찬가지다. 네팔 사람들은, 특히 셰르파들은 산을 오르면서 절대 ‘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산은 셰르파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들을 지켜주는 신이다. (중략) 이런 그들이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138쪽)

셰르파는 히말라야 등정을 돕는 이들이 직업명이자 민족명이다. 저자가 한 셰르파를 인터뷰해서 책에 담았는데 이 역시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저자는 전직 쿠마리와 인터뷰한 내용도 실었는데 이 인터뷰가 더 인상 깊었다. 

쿠마리는 살아있는 여신이다. 4~5살짜리 여자아이를 선발해 첫 생리 전까지 신으로 섬기는 네팔의 전통이다. 왕정 시절엔 쿠마리를 뽑을 때 왕과 궁합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쿠마리로 선정한 뒤 일상과 단절시켰다가 생리를 시작하면 일반인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악습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세 살부터 열두 살까지 쿠마리로 지냈던 현 고등학교 1학년(2022년 기준) ‘머띠나 샤키야’의 인터뷰 내용은 낯설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이 딸을 낳았는데 쿠마리 후보가 된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쿠마리가 되길 바란다”(192쪽)는 그의 대답에서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서구문명의 틀로만 특정 공동체의 문화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호문화주의의 사례다. 
 
수잔은 한국에 와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물에 놀랐다고 한다. 네팔에는 기록이 많지 않다. 따라서 특이한 모양과 문양을 하고 있는 네팔 국기에 대한 기록도 부족하고, 네팔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많지 않은 기록을 수잔이 취재해 그러모은 듯하다. 

▲ 네팔 국기. 사진=pixabay
▲ 네팔 국기. 사진=pixabay

 

한국에선 맛보기 어려운 네팔 맥주, 그 원인인 고립된 내륙국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와 관계, 없어진 건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소 다른 카스트 신분제도, 조심해야 할 문화적 차이, 네팔인들이 불쾌해할지 모르는 네팔의 몇몇 관습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분야도 다루고 있다. 

한 국가를 대표해 책을 쓴다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지극히 사적’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기록은 네팔의 중요한 역사일 것 같다. 특히 왕정을 폐지하고 2008년부터 공화국을 시작해 “세상에서 가장 어린 공화국”(75쪽)인 네팔은 왕이 있을 때보다 더 다채롭게 변화하리란 사실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한편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와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등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도 있다. 러시아 편은 역시 JTBC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를 맡았던 벨랴코프 일리야가 썼고, 프랑스 편은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였던 오헬리엉 루베르가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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