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지난 2020년 3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사건을 처음 알린 대학생 기자 ‘추적단불꽃’의 ‘불(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단(원은지 얼룩소 에디터)’을 만나 취재 후기를 들었다. 지난 1월 ‘불’은 박지현이란 이름을 밝히며 여의도로 향했고, 최근 ‘단’은 원은지란 실명을 공개하며 미디어플랫폼 alookso(얼룩소)에 합류해 저널리스트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미디어오늘은 약 2년반 만인 지난 1일 원은지 에디터를 만났다. 

[관련기사 : ‘텔레그램 N번방’ 최초 신고자는 텔레그램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N번방 추적기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냈다. 둘이 대학생기자 시절부터 취재하며 지낸 과정을 담았다. 책 쓴 이후엔 피해자들이 지자체 등에서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자문도 했고, 텔레그램 모니터링도 계속했다. 2021년 상반기에는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우리, 다음’이라는 매거진을 내며 대안미디어 역할을 했다. 강연도 많이 다녔다. 위장수사관들 새로 교육해 투입하는 시점이어서 어떻게 잠입했고 모니터링했는지, 성착취 생태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언어나 행동패턴 등을 알려드렸다.(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경찰이 신분을 숨기고 위장해 수사할 수 있다.)”

▲ 추적단불꽃이 운영하던 뉴스레터
▲ 추적단불꽃이 운영하던 뉴스레터

 

-서지현 검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TF’ 활동도 했던데. (법무부는 지난 5월17일 서 검사에게 원대복귀를 통보하면서 사실상 TF가 해체됐다.)

“8개월 정도 밖에 못했다. 디지털성범죄 사후지원 체계가 부족한 부분을 따져보고 법률 권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10개 이상 권고안이 나왔다. 마지막에는 플랫폼의 책임 관련 권고안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서 검사가 아쉽게 떠나면서 TF 실질 동력이 사라졌다.”

-얼룩소(alookso)에는 언제 합류했나? 왜 얼룩소를 택했나? 

“봄에 합류했다. 일단 계속 취재해서 기사를 쓰고 싶었다. (박 전 위원장이 정치권으로 가고) 혼자 미디어를 꾸려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불꽃’ 활동하면서 후원을 받지 않았다. 강연비, 기고 등으로 돈을 벌어 생활했다. 그러던 시점에 얼룩소에서 연락이 왔다. 한참 고민했는데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고 혼자하는 것보다 덜 외롭겠다 싶어서 선택했다. 얼룩소에선 과거 인턴기자할 때처럼 하루에 대여섯개씩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번 기사 세 편도 긴 호흡로 3주 정도 잡고 만들었다. 온전히 취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서 안정적이다.”

-실명을 밝히는 것에 대해 주저하진 않았나?

“아무래도 실명을 공개하면 이전에 활동했던 내역이 노출될 수 있어서 두려움은 있었다. 텔레그램에서 아직도 잡히지 않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취재를 하고 기사를 낼 때는 실명을 밝히는 게 책임있는 모습이지 않나.”

그는 트위터 ‘불꽃’ 계정에 지난달 16일 “활동명 ‘단’이 아닌 제 진짜 이름을 건 기사를 씁니다. 기자의 길을 걸었다면 당연히 썼을 이름인데 어쩌다 보니, 돌아왔네요.”라서 썼다. 

-얼굴 공개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부분인데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도 처음엔 마스크 내린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수개월 뒤에서야 마스크를 벗었다. 지난 1일 박 전 위원장은 JTBC 인터뷰에서 최근 자신에 대한 텔레그램 ‘능욕방’이 생겨 피해자가 됐다며 신고한 사실을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일 때, 그러니까 권한이 있는 자리에 있을 땐 어떻게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내려오니까 기다렸다는 듯 범죄를 자행하는 모습을 보며 ‘성범죄자들이 정말 약자만 노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텔레그램 '능욕방'. 사진=JTBC 보도화면 갈무리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텔레그램 '능욕방'. 사진=JTBC 보도화면 갈무리

 

-가해자가 원 에디터 본인을 사칭했다는 게 화가 나고 황당했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썼는지 몰랐는데 처음 기사에 ‘불꽃을 사칭한 작자’라고 썼더라.(하하) 선배 에디터에게 데스킹(기사 첨삭)을 받았는데 선배가 ‘작자’라는 단어에다가 ‘감정이 너무 티난다’고 해서 지웠다.” 

-기사가 나오고 반응이 어떤가?

“놀랐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지? 물론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만 2019년에는 너무 잠잠했다. 그때 한겨레에서 1면 톱기사로 보도해도 잠잠했다. 처음 경험이 그랬기에 지금 이럴 줄 몰랐다. 벌써 언론사에서 연락이 와서 새롭다. 이번에 KBS와 협업하면서도 느꼈는데 과거에는 기자들 만나면 인터뷰 8할은 개념설명이었다. 이번에는 기자들도 이번 범죄가 과거 N번방․박사방과 어떻게 다른지 차이점에 주목하면서 기사를 준비하더라. 다른 기자들도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잘 이해하고 있다. 감사하다.”

▲ 원은지 에디터 기사 일부. 사진=얼룩소 갈무리
▲ 원은지 에디터 기사 일부. 사진=얼룩소 갈무리

 

-디지털성범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성범죄는 한두 건의 단독기사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일단 함께 다루게 돼서 반갑다. 취재할 때 어렵게 느껴지는 맥락이나 개념이 있어서 문의 주면 나도 답변을 줄 수 있다. 같이 범죄에 대응하며 해결해나간다고 생각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제2의 N번방’이란 표현에 비판적 입장이던데, 이유는?

“‘제2의 N번방’이 쉽게 관심을 끌기 위한 표현이긴 하다. N번방이 디지털 성범죄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진화한 범죄 수법을 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 N번방의 문형욱이나 박사방의 조주빈은 자신의 이름 값을 높이려고 했고 가해자들 사이에서 추앙의 대상이 됐지만 그게 수사기관의 약점이 됐다. 이번에 보도한 가해자 ‘엘’은 선례를 보고 자신의 닉네임을 세탁해가며 활동해 정체를 알기 어렵다. 이렇게 생태계를 교란한 부분을 언론에서 부각해야 한다. 과거에도 피해자 지원단체를 사칭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불꽃을 사칭했다는 소식에만 미디어가 관심을 갖는 건 조금 씁쓸하다.”

-성착취 게시물을 모니터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것 같다. 활동하고 취재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나?

“일하면서 마음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는 ‘이건 일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 자신을 너무 통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더라. 그럴 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도움받기도 한다. 요즘은 운동도 한다. 풋살. 아직 실력은 좋지 않지만 최근에 한 골 넣었다(웃음). 풋살하는 동안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박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물었다. 대학 선후배였던 원 에디터와 박 전 위원장은 서로 잘 알거나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함께 취재를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고, 공모전에 나가면서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라는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렸다. 박 전 위원장이 떠나고 ‘추적단불꽃’은 ‘불꽃’으로 활동명을 수정했다. 박 전 위원장이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에 대해 물었다. 원 에디터는 “친구가 하고 싶어 하고, 내가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지 않냐”며 한참 침묵했다. “좋았다. 좋았었다.”라고 다시 입을 열었고 “그때 열심히 했던 모습들을 기억하면 동력이 된다”고 답했다. 

▲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관련 KBS 보도화면 갈무리
▲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관련 KBS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1일 인터뷰를 진행하기 직전 박 전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원 에디터 기사를 언급하며 “디지털 성범죄, 정치가 해결해야 합니다”란 장문의 글을 올렸다. 

박 전 위원장은 해당 글에서 “저는 디지털 성범죄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모습에 좌절과 환멸을 느끼며 정치로 풀어보려고 정치권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제 임기는 끝나버렸습니다. 그래도 지금 제 자리에서 낼 수 있는 소리를 목청껏 내려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원 에디터는 “같이 활동할 때 여성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N번방 사건 공론화가 계기가 돼서 해결되는 모습이 다행이지만 성착취라는 건 유구한 역사가 있는 범죄라서 우리가 살아있을 때 근절이 된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 수 있도록 불꽃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하며 박 전 위원장에게 “어디에 있든 각자 그런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래 공모전 아이템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동남아 원정 성착취 정보를 공유하는 사건’에 대해 취재하려 했던 원 에디터는 디지털 성범죄를 3년 넘게 들여다보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에 들어간 만큼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됐다. 

그는 아동학대 관련 기사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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