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www.snunow.com) 9월1일자로 실린 것입니다.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편집자 주]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이 가장 재미없을 때 중 하나는 같은 종족끼리의 대전만 연이어서 벌어질 때다. 특히나 중계시간 내내 '테란 대 테란 전'만 이어지는 날이라면, 채널을 돌리고 싶은 욕망이 계속 들게 마련이다. 똑같은 유닛, 똑같은 전략, 똑같은 전술들의 반복적 등장을 계속 지켜본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지루하다. 약간의 과장을 섞자면, '동일성의 폭력'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둔 말인 것도 같다.

   
▲ 임지현 교수. 서강대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유학했다. <당대비평>, <역사와 문화> 편집위원. 대표작으로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이념의 속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공저)가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 스누나우
요새 '고구려사 왜곡'을 둘러싼 논쟁이 가히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논쟁'은 아니다. '성토'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마주칠 손바닥이 하나뿐이니 논쟁이란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인 명찰 단 이들이면 거의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역사'를 빼앗아 가려는 중국놈들은 나쁘다고. 옳은 것은 그저 '우리'일 뿐이라고. 이 문제에 대해선 신기하게도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따로 없다. 그저 이구동성일 뿐.

그런데 뭔가 불충분한 느낌이다. 한국의 역사가가 모두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소개되는 주장들은 모두 천편일률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건 상반되는 입장을 모두 다뤄줘야 한다는 언론의 본분에 비춰 봐도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지루함이 먼저다. 프로토스도 있고 저그도 있는데, 테란전만 줄창 틀어주는 격이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 내용이 도발적이면 더 좋았다. 그래서 한양대 사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의 저작을 통해 사학계의 논쟁을 주도했으며, 몇 달 전에는 '국사 해체'라는 '과격'한 주장으로 주목을 받기도 한 임지현 교수가 거기 있었다. 무던히도 덥던 지난 8월 19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강민의 프로토스와도 같은 색다른 플레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이 날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고구려사 귀속논쟁은 시대착오

- 최근 들어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양국간 논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고 비역사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2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2천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얘기이지요. 가장 비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논리를 역사학자들이 전개하고 있다는 코믹한 상황이랄까요."

- 근대국민국가의 개념틀로 고구려사에 접근하면 안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겁니다. 한반도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건 20세기 초였거든요. 북한의 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마음대로 의역을 해서 '민족'이라는 말을 뽑아내곤 하지만(웃음),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에야 생긴 개념을 고대사에 대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1930년경에 폴란드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의 기록을 보면, 지금의 벨로루시와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폴란드 사람입니까, 벨로루시 사람입니까?' 라고 물은 대목이 나옵니다. 질문자가 들은 답변이 걸작입니다. 그냥 '우리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다'였다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가 20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갔다고 가정하고 '당신 한국사람이요, 중국사람이요?' 물어본다고 합시다. 고구려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당연히, 이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자면, 당시에 고구려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자기들이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고구려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숱할 거예요. '고구려'라는 실체도 인식 못했을 겁니다.

예컨대 19세기 말에 프랑스 농민들에 대한 사회사적인 조사가 있었는데 제목이 'Peasant being into French man'입니다. 해석하면 '프랑스 사람이 된 농민들' 정도가 되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19세기 말의 노르망디 지역의 농민들은 대부분 평생 동안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4km 넘는 곳을 여행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프랑스라는 실체를 모르는 것이죠. 그런데 의무교육을 시키고,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같은 걸 읽히고, 사투리 못쓰게 하고 프랑스 표준어를 쓰게 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나는 프랑스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취득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수입된 거죠. 연구는 19세기 말의 프랑스 농민들이 어떻게 '프랑스인'으로 변모하는가를 그리고 있는데, 그 당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때에요.

국민국가가 만들어지고,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만들어진지 100년이 지난 사회의 농민들의 의식세계가 그랬다면, 2천년 전의 고구려에 살았던 사람들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심지어는 고구려 사람이라는 의식도 안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냥 나는 '여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겠죠. 그런데 그들을 중국사의 일부, 한국사의 주역으로 끌어들이는 건 근대의 국민국가와 그것을 지탱하는 권력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전유해버리는 겁니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고구려가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니라 말하는 그의 논리는 매우 단순한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에서야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에 고대사에 적용 가능하지 않다는 것. 주지하다시피, 이런 관점은 민족을 초역사적 실재로 바라보는 주류 사학과는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것이다.

- 민족이 근대 이후에야 형성됐다는 주장은 제도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그럴 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사'에서는 이런 말 안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게 상식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우리는 하나'라는 구성원 간의 동질감을 그 전제로 하는데, 신분제, 반상제가 존재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과연 그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가령 (스누나우) 기자는 양반이고 나는 상놈이면, 내가 기자한테 저 사람은 우리 동포고 민족이라는 느낌을 가졌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사료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임진왜란 때 한 의병장이 남긴 기록 중에 '쇄미록'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한탄이 나옵니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저 아랫것들이 의병 모이라면 하나도 안 모이고, 일본군 환영해서 걱정이라는 것이지요. 그 때 일본군 점령정책이 동네마다 쌀 나눠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것이었거든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민족의식이 투철한' 민중들이었다면 일본군에 저항하고 게릴라전을 벌여야 했을 텐데, 그 의병장에 따르면 오히려 환영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나라도 그랬을 거 같습니다. (자신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하고 착취나 하는 양반들이 물러가고, 갑자기 쌀 나눠주겠다는 놈이 들어온 건데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민족이 쳐들어올 때마다 관민이 일치단결해서 싸웠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서울에 궁성 불태운 건 노비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이런 것들이 지킬 것이 있는 집단과 지킬 것이 없는 집단의 차이입니다.

다른 예도 수두룩합니다. 예컨대 구한말 의병들의 경우, 동학농민군 진압하던 관군 포수들이 의병장 밑에 용병으로 들어간 것들이 이미 실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무슨 민족의식이 있어서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사직을 구하려던 게 아니고요. 상식적으로, 동학농민군 진압하던 포수들이 의병이 된 현상이 '민족의식'으로 설명이 됩니까?

그리고 문헌들을 보면,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됐을 때 지방 양반들이 도대체 창피해서 밖을 못 나가겠다고 두문불출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종묘사직을 잃어서, 왜놈들에게 나라를 뺏겨서가 아닙니다. 밖에 나가니까 상놈들이 호형호제해서 창피하다는 거예요. 물론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그건 법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관행은 그대로였거든요. 그런데 한일합방이라는 건 이 사람들에게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걸로 다가오는 거죠. 이게 양반이 슬펐던 진짜 이유라는 겁니다.

그런데 국사교과서에서는 마치 '시일야방성대곡'이니, 민영환의 자살이니 하는 것만이 한국의 전반적인 반응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일합방이 잘 됐다는 게 아니라, 신분제, 반상제가 있는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는 건 이렇듯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이런 것만 봐도 민족(nation)이란 건 결국은 법 앞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는 선언이 있고, 신분제가 폐지되고 근대 국민국가와 근대 시민권이 확립된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거죠. 상식적인 얘깁니다 이건."

말 그대로 '재미있는' 기록들이었다. 그는 같은 사실(fact)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사실들을 내놓고 있었다. 기존의 이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론을 이끌어내며, 다른 해석의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이는 생소한 것들을.

국사의 태생 자체가 '만들어진 역사'

   
▲ 임지현 교수 ⓒ 스누나우
- 그렇게 본다면 국사 자체를 민족과 결부시켜 서술하는 지금의 국사 교과서는 거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틀렸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건 거의 왜곡 수준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왜곡'된 역사서술이야말로 주류이고, 현실에서는 여전히도 공신력 있는 '사실'로 통용되고 있는데요.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사학계의 관성이라든가, 폐쇄적인 분위기라든가 등등.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사'라는 것 자체의 성격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국사라는 게 과거에 대한 이미지를 신화화시켜서 만들어 낸다는 속성이 있거든요. 사실 국사 자체가 국가-이를테면 대한민국이나 일본-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인 것이죠.

국사, 다시 말해 내셔널 히스토리(national history)에서 어딜 가나 발견되는 특징은 지금의 국민국가를 정점으로 하고, 과거의 역사를 지금의 국가가 만들어지는 발전과정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다 보면 지금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 불필요하거나, 모순되거나, 좀 헷갈리게 만드는 사실들은 다 제거하게 되는 거죠. 그 쇄미록 얘기만 해도 대학원생들에게 숙제를 내 주니까 찾아온 자료인데, 대학원 애들 눈에도 다 보이는 자료들이 국사에선 다 은폐되어 있는 거죠.

이건 다른 나라의 '국사'도 마찬가집니다. 폴란드의 예만 들어볼까요. 19세기 폴란드 민족봉기에서도 쇄미록의 경우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830년에 한국 의병처럼 폴란드 양반인 슐라흐타(szlachta)들이 봉기를 일으켰어요. 그런데 당시에 농민들이 어떻게 했냐 하면, 장원에 불지르고, 그 '양반' 지도자를 붙잡아서 오스트리아 점령군에게 넘겨버렸거든요.

우리 식으로 따지면 일본 관헌이 진압하기 전에 농민이 먼저 진압해 버린 거죠. 폴란드 농민들은 독립을 무서워했거든요. 왜냐하면 러시아의 짜르가 농노해방을 해 줬는데, 그 '양반'들이 지배하던 세상이 다시 오면 다시 농노제로 돌아갈 것 같잖아요. 당시 폴란드 농민운동 지도자였던 사람의 회고록을 보면, 농민들은 독립을 두려워했다고 나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맨날 들었던 얘기들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퀴리 부인이 어쩌고 쇼팽이 어쩌고 등등. 쇼팽이 봉기가 진압돼서 비엔나에서 무슨 음악을 만들었다느니 하잖아요. 그런 게 다 신화화된 이야기라는 겁니다. 실제와는 다른.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는 근대역사 서술의 특징을 '전도돼 있음'이라고 규정합니다. 우리가 항상 인과론적으로 1차대전이 2차대전을 낳고 2차대전이 냉전을 낳고...라고 얘기하는데, 실은 거꾸로 돼 있다는 거죠. 실제의 논리 크로놀로지(연대기)는 2차대전이 1차대전을 낳고, 1차대전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를 정당화하는 관점에서 출발하니까. 오늘날 모든 역사적인 과정을 지금의 국가를 만들어왔던 과정으로 봐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지금의 국가가 19세기사를 낳고, 19세기사가 18세기사를 낳고... 현실적인 역사과정이 그렇습니다. 국민국가가 목적이 된 목적론적 서술이지요. 사람들은 그걸 실증적 과학적 역사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실증사학의 아버지라는 랑케 자체가 실은 프로이센 국가를 정당화했던 '어용 사가'였다는 사실이 오늘날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나라 역사가들을 빼놓고는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단순히 '어용 사가'들이 교과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라, 발생론적으로 봤을 때 국사라는 것 자체가 체제의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상당히 급진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이 '태생적 한계'에 있다면, 해결책은 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니까.

민족주의적 접근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

- 민족국가의 틀을 고대사에 대입하려는 관점 자체가 학문적으로 틀린 것이라 하셨는데,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론하기도 합니다. 역사를 다룸에 있어 학문적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효과라는 것이죠. 요컨대, 당장 중국이라는 강대국에서 '역사침략'을 시도하며 땅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는 판국이라면 우선 방어논리부터 구축하고 봐야지, 학문적으로 무엇이 더 옳은 견해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적의 공격적 민족주의 앞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주장인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거 정말 많이 듣는 얘깁니다. 중국도 내셔널리즘, 일본도 내셔널리즘 하니까 우리도 내셔널리즘으로 붙어보자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것만큼 웃기는 얘기도 없습니다. 아니 리얼리즘적 시각에서만 생각할 때,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인민해방군이나 자위대랑 싸워서 이길 수 있나요? 과연 그게 과연 '민족을 위하는 길'일까요?

중국의 동북공정의 논리, 즉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논리와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논리는 현상적으로는 서로 팽팽하게 적대하고 있지만 사유의 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국사라는. 근대국가를 과거에 투영하는 인식의 틀을 공유하고 있는 거죠. 그 틀을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판이라면, 결국 논쟁이란 건 "너네는 한국사로 주장해라 우리는 중국사로 주장할게"가 되는 겁니다. 거기서 끝이죠. 그 다음에 무슨 해법이 있습니까. 그저 힘의 논리만 남는 거죠. 그럴 경우 깨지는 쪽은 과연 어디가 될까요?

나는 이게(국사라는 인식틀을 해체하는 게) 훨씬 더 실용적인 해법이라고 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국사의 틀을 깨뜨린다면, 그건 동북공정이 기반하고 있는 인식론적 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비판이 되는 거죠. 실제로 이게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 얘깁니다. 제가 동유럽사 공부하면서 알게 된 리투아니아 학자만 해도 편지를 써서 제게 이야기하는데,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이야... 너넨 해도해도 너무한다. 우린 그래도 그런 것(영토)으로 싸울 때는 근대 이후를 가지고 싸우는데, 어떻게 2천년 전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럴 수 있냐. 동아시아 심해도 너무 심하네.'

사실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건 누구의 눈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국 학계에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코미디에요.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데, 이거 세계학계가 인정해버리면 곤란하니까 우리가 빨리 세계 학계에 나가서 이거 한국사라고 인정받아야 된다고 하잖아요. 이것만 봐도 얼마나 촌놈들이냐는 거죠. 세계학계를 몰라도 저렇게 모를 수가 없어요.

사실 세계 학계에서 중국이 그런 주장 하면 바보 되는 겁니다. 그럼 세계 학계에서 우리가 주장해야 할 건 '이거 한국사다'가 아니라, 동북공정의 주장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중국 역사학이 얼마나 국가권력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어야죠.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에 맞서 '아니다. 그건 한국사다'라고 말하는 게 같이 바보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사실 그들은 세계 학계로 나가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국제 학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또 세계 학계는 왜 팔아먹는지 모르겠습니다. 화가 나거든요. 세계 학계를 몰라도 유분수지요."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톤은 높아지고 있었다. '세계 학계를 나가본 적도 없는 촌놈'들에 대한 타박을 듣고 있자면 '잘난 체'에 대한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그보다는 오히려 그가 호소하는 진한 농도의 답답함에 더 관심이 가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상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나듯이, 폴란드와 영국을 돌며 서양사를 공부한 이 역사학자에게 한국의 사학계란 도무지 그의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갑갑한 동네인 듯 했다. 

- 민족주의 사학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시네요.

"웃기거든요. 최소한의 현실감각조차 갖고 있지 않아요. 민족주의라는 게 항상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과대망상증이 있습니다. 예컨대 2차대전 때 나치하고 소련이 동시에 폴란드를 분할점령했잖아요. 그 때 전쟁하다가 나치가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의 리얼리스트들은 '할 수 없다. 소련은 연합군 측에 가담했고 나치가 더 위험한 적이니까 일단 소련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협력해서 나치와 싸워야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럴 때 나왔던 다른 입장으로는 '아니다. 우리 폴란드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2개의 전선을 펼쳐서 소련과 나치에 동시에 대항해야 한다'라는 게 있었습니다(웃음). 후자에 대해선 우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한번 붙어보자'고 얘기할 때 동아시아 밖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역시나 그저 웃는 거죠. 이렇게 자기를 희화화시키는 민족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의 '민족적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고.

소위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웃긴 거랑 똑같은 거에요. 아니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 하겠다고 하면 일본이나 중국은 과연 들러리나 서 주고 있을까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봐도 상식적이지가 않은 거죠. 결국 이런 발상은 결국 중국이나 일본을 향해서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내용이라는 겁니다. '역시 우리는 위대한 민족. 금메달도 10개나 따는 민족' 뭐 이런 자족적인 정서를 퍼뜨리고자 하는 거죠. 끊임없이 사람들을 민족주의로 규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랄까요."

한국 민족주의, 일본 극우파의 입지만 넓혀준다

- 그런데 그게 뭐가 나쁘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우리'끼리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그저 좋은 것이라 볼 수 있지 않냐는 거죠.

"세계는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한국의 민족주의가 강해질 때, 상대국의 극우파-민족주의 또한 같이 강해진다는 겁니다. 나는 이걸 '적대적 공범관계'라고 규정하는데, 이런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일본 친구들 중에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각급 학교에서 쓰게 한 정부훈령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요. 이 친구들이 일본의 우경화나 재무장을 반대하는 웹사이트를 열고, 일어 한국어 영어 3개 언어로 운영을 해 오고 있는데, 언제 한 번 SOS 메일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죽겠다는 거죠.

자기네들 웹사이트에는 전부 한국의 내셔널리스트들만 들어와서 '일본놈들 나쁜놈들, 독도는 우리땅' '기미가요 하는 놈들은 나쁜 놈들, 태극기는 좋은 거' 하는 식으로 마구 도배해놓고 나간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 놓고 가면, 그 다음에는 일본의 내셔널리스트들이 들어와서 똑같은 짓을 한다는 거죠. '그거 봐라. 네놈들이 히노마루나 기미가요 반대하는 건 결국 조선의 민족주의를 돕는 것이고, 너네는 일본을 팔아먹는 매국노 같은 놈들이다'라는 식으로요.

이런 경우, 한국의 내셔널리스트들이 일본의 내셔널리스트들을 깨버린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거기서 웹사이트 운영하는 친구들 입지만 좁아지게 만든 거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나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것들이 나 같은 사람 입지를 좁게 만들고 한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켜주지 않습니까. 이 민족주의들은 서로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강화시켜주는 공범관계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대적 공범관계라는 거죠. 이 고리를 깨부숴야 합니다."

'적대적 공범관계'. 적지 않은 감정적 반발과 함께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표현이라 알고 있다. 여기에 쏟아졌던 그 수많은 비난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그런데 이에 관해선 일본의 민족주의와 한국의 민족주의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됩니다. 이른바 '저항적 민족주의'를 과대평가해서 팽창적 민족주의와 동급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거죠.

"그걸 두고 역사적 비대칭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국의 경험을 가졌던 나라의 민족주의와 식민지의 경험을 가졌던 나라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경험이 대칭적이지는 않죠. 지금 얘기한대로 '급'이 다른 겁니다. 근데 문제는 그 비대칭성을 우리가 충분히 인정을 하지만,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이름과 비대칭성이 권력담론으로서 혹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담론의 모습을 은폐하는 기능을 쭉 해왔다는 겁니다.

한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일본의 이른바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일본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하면서도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의 우파들과 일본의 좌파들이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 연합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근데 그렇게 됐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냐 하면, 일본의 좌파들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켜주고 정당화시켜줌으로써 그 부메랑 효과로 일본의 민족주의가 다시 강화된다는 겁니다. 적대적 공범관계에 오히려 기여하게 되는 셈이죠."

- 그런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이라는 건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사실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게 중국이나 일본에게 실질적 위협씩이나 된다고는 보기는 힘들잖아요.

"적어도 핑계거리는 충분히 된다는 거죠. 자기네 것을 강화시키는. 중국이 동북공정 정당화시키는 걸 보세요. 국회의원이라는 김원웅, 몇 년 전 국회연설에서 만주수복 이야기했잖아요. 이런 친구가 진보적인 국회의원이라 불리고 어떤 라디오방송에서는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던데, 어이없는 일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논리가 실제로 그렇잖아요. 한국을 가 봤더니 고토수복이 국회에서까지 얘기되고 있고, 육사 교장실에 갔더니 만주도 한국 땅으로 칠한 지도가 있어서 중국 장성이 그거보고 놀래고. 다 그런 걸로 정당화시키잖아요. 이런 식으로 권력 간의 담합구조가 형성이 되는 거죠. 내가 볼 땐 그래요."

임지현 교수의 논리는 이렇다.

고구려사, '변경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 고구려사에 국사의 틀로 접근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세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변경사(border history)입니다. 연구 대상이 어느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국가의 단위에 포섭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으로 보는 관점이죠. 그 안에서 문화적 긴장이 생기고 거기서 역동성도 생겨나는. 그러나 사실 200년 동안 근대역사학이란 게 국사의 틀로 짜여져 온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완벽한 대안이 나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은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법한 것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지요.

이를테면 보더 히스토리(border history)라든가 페미니스트 히스토리(feminist history) 같은 것들. 그 중에서도 고구려사에 대한 연구방법론으로라면 변경사적 관점이 적절하다 보고요. 참고로 이성시 선생은 발해에 대해서도 변경사라고 보는 거고. 김한규 선생은 요동사라는 컨셉으로 고구려를 보자고 하는 거죠. 한국사도 아니고 중국사도 아닌."

- 변경사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우선 국가간 경계라는 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으로, 보통 자연적인 경계(산맥이나 강 따위)에 기반한 현대 국가의 국경선만 보고서, 국민국가의 경계란 대단히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경계라는 게 근대의 국경선이 지도 위에 선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다시 말해 근대국민국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선처럼 확실히 그어진 게 아니었죠. 대충 보고 '저기까지가 우리땅이다' 하는 식이었죠. 그러니까 그 때의 경계라는 건 사실 하나의 지도 위에 컴퍼스와 자 대고 그은 게 아니라, 복수의 점들로 산포돼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변경이란 지역은 여기에 속하기도 하고, 저기에 속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죠.

가령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이라 하면 한반도의 문화와 만주 기마민족의 문화와 대륙의 문화가 서로 만나서 교류하고 융합되기도 하면서 한반도와도 다르고 대륙과도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나오기도 하는 거죠. 거기서 어떤 역동적인 것들이 창조되기도 하는 공간이고요. 바로 거기에 대한 연구를 '변경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학제학문으로 자리잡은 게 20년이 채 안 됩니다. 1984년도에 '저널 오브 보더 스터디스'(Journal of Border Studies)'라는 게 처음 나왔을 겁니다. '보더 아이덴티티'(Border Identity)와 같은 서적이 모두 1998년 등 전부 최근에 나온 것들이죠. 이건 원래 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학문적 경향인데, 왜냐하면 유럽에서 영토분쟁이 심했거든요.

원래 (유럽이) 지리적 경계가 유동적이지 않습니까.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경이 계속 끊임없이 변화하잖아요. 19세기 유럽에서 영토 싸움이 치열했죠. 여기는 원래 내 땅이다, 여기는 원래 우리 역사다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런 식의 싸움이 인식론적으로 전혀 역사적이지 못하고, 그래 봐야 해결도 나지 않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봐면 결국은 국가권력이 대중을 민족주의적인 선전선동에 동원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변경사 같은 방법론들이 등장하게 됐지요.

예를 들어봅시다. 가령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경우, 노르망디 공은 영국 왕의 가신이기도 했지 않습니까. 이런 게 변경이지요. 그리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에 위치한 바스크 지역 같은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바스크는 나는 스페인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라는 입장이잖아요. 하지만 바스크는 완전히 동떨어진 역사입니까?

그리고 일본의 대마도. 대마도의 영주는 도쿠가와 막부의 가신이자 조선 왕의 신하가 공식 명칭이었잖아요. 그렇다면 대마도 같은 경우에도 일본사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로 주장하자는 건 아니고.

같은 관점에서 제주도도 다룰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오키나와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오키나와의 음악이 제주도와 놀랄 정도로 같다는 겁니다. 이럴 경우 오키나와와 제주의 연관성을 연구해 볼 수도 있겠죠.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제주 분리운동 혹은 제주 분리당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제주도의 경우 외지인이 소유한 땅의 비율이 90%가 넘거든요. 그래서 분리당 같은 거 하나 만들고, 오키나와-제주 연합을 구성해서 본토 사람들 땅을 다 뺏고 그 동안 당해왔던 것에서 벗어나면 안 되냐는 거죠. 제주도는 당연히 우리 땅? 그건 대체 누구의 입장이냐는 겁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국사냐 한국사냐는 식의 싸움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 근거를 밑바닥에서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거니까. 일본의 국사에 대해서도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마도 규슈 하나하나 변경으로 털어버렸을 때 일본의 국사도 순조롭게 해체할 수 있는 것이고요."

변경사.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 변경사가 국사를 해체한 다음의 대안이다?

"꼭 변경사만은 아닙니다. 보더 히스토리는 가장 큰 차원에서의 얘기지만 가령 교육 같은 경우에는 로컬 히스토리(local history), 내가 충청도 연기중학교에 다닌다 하면 충청도 연기군의 역사를 쓰는 거죠. 지금까지 로컬 히스토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 중앙정부의 연관 속에서만 다뤄져 왔거든요. 충청도에 관찰사가 언제 왔고 하는 식이죠.

그런 게 아니라 연기군에 살았던 주민들의 입장에서 로컬 히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게... 그 교사와 학생들이 해나갈 수 있는 훨씬 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동학농민군 때 관군이 와서 어떻게 해서 어떻게 했다더라. 구술사 같은 방법론으로, 한국전쟁 때 국방군이 와서 어떻게 했대더라, 인민군이 와서 어떻게 했대더라. 그런데 이런 게 가능하려면 입시가 바뀌어야지(웃음). 지금같이 하나의 해석만 주어 놓고 달달 외우게 하는 식의 입시제도 하에서는 힘든 얘깁니다.

오히려 이런 얘기에 가장 반발하는 게 전교조 역사교사 모임 같은 경우에요. 지금 역사교사들이 다 이런 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우리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장 같은 경우에 죽겠다고 하거든요. 출판사에서 전교조 역사교사들이 만든 대안교과서도 냈는데, 그 교사들이 이 책(<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냈다고 항의를 하는 겁니다. 어떻게 대안교과서를 낸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낼 수가 있냐고. 출판사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하고."

적당히 좀 하지... 생각은 다르다고 해도 이런 배타성까지 보여 줄 필요까진 없는데. 그간 많이 지적돼 오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개방성이나 관용과 같은 덕목과 '진보'라는 딱지 간에는 필연적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

- 사실 그런 데서도 드러나듯이,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국사가 강력하게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그래서 국사 해체라는 게 과연 한국에서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일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있는데요.

"유럽의 경우를 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더 이상 국사(national history)를 주장하는 집단이 주류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건 정치상황과 좀 맞물려 있는 것도 있지요. EU(유럽 연합)라는 새로운 단일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국사의 틀을 유럽으로 확장했다고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한계들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겠지요.

그렇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국사라는 게 200년간 권력에 봉사해 왔는데, 그 틀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겠어요? 이제 도전이 시작된 거죠. 그러나 그러한 역사학이 어떤 기능을 해 왔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분명히 있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거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적 시각을 갖고 대안을 모색할 일이 남은 것이죠. 적어도 그런 바탕, 교두보는 확보가 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현재 그런 교두보조차도 확보되지 않은 게 문제지만, 앞으로 해결해 가야 할 문제입니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은 민족주의가 유례없이 강력한 나라 중 하나다. 월드컵이 열리면 모두가 붉은 악마로 돌변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스포츠 종목이라 할지라도 올림픽만 열리면 '태극전사'들의 성적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그들이 어쩌다 금메달을 '뺏기기'라도 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다. 독도 망언이나 미군 장갑차 사건과 같은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에는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단결을 보여주며, 공황(IMF)이 발생하면 혁명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라 살리기'를 위해 금을 모은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 강력한 내셔널리즘의 나라에서, 임지현 교수는 얄궂게도 돌 맞기 딱 좋은 얘기들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한국의 '역사 지키기'나 시대착오이긴 마찬가지이고, 일본의 내셔널리스트와 한국의 내셔널리스트는 '적대적 공범'이며, 제주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는 건 과연 누구의 입장이냐고 되묻는 임지현 교수. 그는 마치 골리앗 앞의 다윗을 연상케 했다. 돌팔매 대신 연구결과와 논리라는 무기를 양손에 쥐고, 그는 '상식'의 씨를 뿌리는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상식'이 '생소함' 내지는 '발칙함'으로 여겨지는 땅에서.

토인비는 역사가 발전하는 원인을 이른바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에서 찾았다. 기존의 것에 대한 지배적 다수자들의 기계적 반복과는 구별되는, 그들의 새로운 발상과 행동이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상당한 논란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 견해다. 과연 '창조적 소수'만이 역사를 밀어 가는지에 대해서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많고, 그 '창조적 소수'를 과연 누구로 간주해야 되는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다만 토인비의 견해에서도 경청할 만한 지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반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전복적인 목소리들이 때로는 다음 사회의 단초가 될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홀로 '노'를 외치는 이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번쯤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돌은 이미 충분히 맞고 있을 테니까. 

웅조 / 스누나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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