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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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심한 사과’의 ‘심심(깊은 마음)’을 ‘심심하다(지루하다, 재미없다)’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해 논란이 벌어지면서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75%로 심각하다는 내용이 다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실질문맹률 75%’라는 기사 내용이 왜곡․과장이며 최신 통계가 나왔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언론의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 실질문맹률이 75%라는 내용이 담긴 과거 기사들
▲ 실질문맹률이 75%라는 내용이 담긴 과거 기사들
▲ 실질문맹률이 75%라는 내용이 담긴 과거 기사들
▲ 실질문맹률이 75%라는 내용이 담긴 과거 기사들

 

진짜 실질문맹률 75%인가?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3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21년 전 조사를 이용한 침소봉대”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실질문맹률 75%’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인적자원지표’다. 

해당 문건에서 다양한 국가의 ‘문서문해 단계별 성인의 비율’ 자료를 인용했는데 이는 OECD가 20여개국을 대상으로 1994~1998년에 걸쳐 수행한 국제성인문해조사 결과다.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했기 때문에 해당 조사에서 빠졌다. 이에 한국은 같은 방식으로 2001년 별도의 조사를 진행했다. 

▲ 2001년 성인 문해력 국제비교. 자료=2004년 한국의 교육인적자원지표
▲ 2001년 성인 문해력 국제비교. 자료=2004년 한국의 교육인적자원지표

 

이 조사는 1~5단계로 문해력 단계를 나눴는데 1단계는 문해력에 취약한 수준, 2단계는 단순 작업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새로운 직업 등을 학습하는데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이다. 2001년 진행한 이 조사에서 한국은 1단계가 38.0%, 2단계가 37.8%로 집계됐다. 이 둘을 합하면 약 75%가 된다. 

신 교수는 “문해력을 측정하기 위해 문서문해력, 산문문해력, 수량문해력(수리문해력) 등 세 가지 분야가 있는데 이중 문서문해력만 가지고 실질문맹률이 75%라고 하는 것”이라며 “다른 분야는 OECD 평균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즉 2001년 조사 세 가지 중 2004년 자료에 한 분야만을 인용했는데 이를 왜곡해 ‘실질문맹률 75%’가 탄생했고 현재까지 언론에 수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후 한국인의 문해력 조사 결과의 변화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보면 문해능력 1단계 비율은 4.5%, 2단계 비율은 4.2%로 각각 나타났다. 4단계(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 이상이 79.8%였다. 

▲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신 교수는 “1~2단계를 실질문맹률이란 기준으로 하더라도 2020년 조사에선 8.7%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며 “누구의 문해력이 문제인지 감이 오냐”고 말했고, 진행자 김어준씨는 “많은 기사에서 엉터리 통계를 가지고 계속 (보도했다)”라며 “기자들 문해력이 문제인 것 아니냐”고 답했다. 신 교수는 “그렇다. 통계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층이 문제인가?

‘심심한 사과’ 등 일부 표현을 젊은 층에서 뜻을 모른다는 이유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소위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다’라는 말도 나온다. 김어준씨도 “20대들이 책을 안 읽고 문해력이 문제야. 한자 실력이 모자라 등 해석이 나온다 기사들을 보면”이라고 묻자 신 교수는 “성인 안에서 20대 독서율이 가장 높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내려간다”고 답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1년 국민 독서실태’를 보면 50대는 35.7%(2019년 대비 9.2%p 하락), 60세 이상은 23.8%(2019년 대비 8.6%p 하락)로 나타났고 20대를 제외한 중장년․고령층의 독서율은 지속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20대의 독서율은 78.1%로 2019년보다 0.3%p 늘었다. 

신 교수는 OECD가 발표한 2013년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한국인의 문해력은 273점으로 OECD 평균인 266점보다 높았다. 연령별로 보면 16~24세의 경우 OECD 중 4위였지만 25세를 기점으로 하락해서 35~44세는 평균 수준을 밑돌았고, 45세 이후는 하위권, 55~65세는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황혜진 건국대 국문과 교수의 연구 “OECD 성인역량조사결과에 나타난 세대 간 문해력 차이”를 보면 OECD 여러 나라와 비교한 결과 “한국은 55~65세층과 16~24세층 문해력 차이가 가장 큰 나라”라고 평가한다. 

▲ 국가별 연령대별 문해력 평균과 연령대간 문해력 차이. 자료=OECD 성인역량조사결과에 나타난 세대 간 문해력 차이
▲ 국가별 연령대별 문해력 평균과 연령대간 문해력 차이. 자료=OECD 성인역량조사결과에 나타난 세대 간 문해력 차이

 

황 교수는 해당 연구에서 “한국 최고 연령대와 최저 연령대 문해력 차이는 교육 경험 차이에 비추어 쉽게 이해된다”며 “55~65세 경우 출생년도가 1947~1957년에 해당하며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는 상당히 적었다”며 “문해력 교육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전후 산업화시기 청소년기를 지낸 이들에게 높은 문해력을 기대하기란 무망한 노릇”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해 “한자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단어들은 좀 늦게 배우는 단어”라며 “그 연령층(젊은층)에서 주목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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