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8월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원 세 모녀의 사망부터 관악구 반지하 침수 사망, 인하대 성폭행·살해 사건을 비롯해, 근래 인명 피해 보도를 쏟아낸 한국 언론에는 하나의 과제가 있다. 비극적 사고를 첫 보도하며 ‘단독’ 문패를 붙이는 관행은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 보도를 지켜본 해외 언론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은 ‘단순 사건·사고에 단독을 붙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나아가 비극적인 사건에 ‘시간 차’를 기준으로 단독을 붙이는 관행은 또다른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인명피해 사건 사고를 단독 문패로 보도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8월 한 달만 해도 일간지와 방송사들은 경기 수원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 등에 ‘단독’ 문패를 달고 보도했다. 잇달아 벌어진 빈곤층의 가족 단위 사망 사건, 반지하 거주자들이 침수 피해로 숨진 사건에도 어김없이 ‘단독’이 달렸다. 아래는 이들 헤드라인의 일부다.

[단독] 수원 연립주택서 ‘세 모녀’ 추정 여성 시신 3구 발견(8월21일)
[단독] 함께 살아 문제, 떨어지면 고독사…잇단 ‘가족 사건’(8월27일)
[단독] 관악구 반지하, 첫 신고 뒤 ‘통한의 151분’…무슨 일 있었나?(8월17일)
[단독] 워터파크서 8분간 떠 있었는데..끝내 하늘로 간 아이(8월19일)

▲포털 뉴스페이지에서 사망 사고에 단독 문패를 붙인 보도 검색 결과 갈무리
▲포털 뉴스페이지에서 사망 사고에 단독 문패를 붙인 보도 검색 결과 갈무리

그러나 이런 언론 문화는 한국에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접촉한 복수의 외신 언론인들은 “비극적 사고를 전하는 기사에 ‘단독’을 붙이느냐”는 질문에 갸우뚱한 반응을 보였다. 외신 언론은 단순히 ‘비극적인 사고여서’가 아니라, 당초 사건·사고 첫 보도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관행에 있어 “한국 언론은 갈라파고스, 즉 외딴 섬”이라고 진단했다.

 “단독 문패 관행, 한국 언론은 ‘외딴 섬’”

강진규 AFP 기자는 “외신은 기본적으로 단독이라는 꼬리표를 좀처럼 붙이지 않는다”며 “더더욱이 사망 사고 같은 인명 피해에 단독을 달아 보도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강 기자는 “한국 언론은 ‘타사에서 보도 안 했다면 단독’이라는 기준을 강하게 적용한다고 생각한다”며 “외신은 사실의 종류, 사회적 맥락이나 보도 가치를 반영한다. 단순 사실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몇 개월 걸쳐 취재한 내용을 폭로할 때에 ‘익스클루시브(exclusive)’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일본의 한 주요 일간지 기자도 통화에서 “일본에는 ‘단독’이라 붙이는 문화 자체가 거의 없다. 다만 기사 본문 첫줄에 ‘우리가 이것을 알아냈다’는 식의 문장이 들어가면 그게 단독이라는 뜻”이라고 전했다.

라파엘 라시드 영국 프리랜서 기자도 “영국과 달리 한국에선 어느 보도든 단독이 될 수 있다”며 “이른바 대통령 ‘도어스테핑’이나 일일 확진자도 매일 ‘속보’ 괄호를 달고 나와 외신 언론인들은 신기해한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을 보도할 때 단독을 남용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쾌하고 유감”이라고 했다.

이들 기자는 한국 언론의 ‘단독 문패’ 관행을 “낚시” 또는 “독자 놀래키기” 용도라고 표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주요 외신 한국 주재기자는 통화에서 “(인명피해 기사에 단독 달기는) 결국 낚시, 영어로는 베이팅(baiting)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라시드 기자도 “한국엔 단독뿐 아니라 ‘속보’ ‘긴급’처럼 자극적인 단어를 넣은 기사 제목이 많이 나온다. 당연히 독자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 봐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영국에도 연예인 성형수술 따위 소식에 ‘단독’을 붙이는 타블로이드 미디어가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그 매체를 웃음거리로 여긴다. 그러나 한국은 방송사를 비롯한 거의 모든 매체가 보도에 쉽게 단독을 붙인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했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참사에 이 같은 관행을 적용할 때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건이 즉각적인 주목거리로 전락하는 해악이 피해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인하대 캠퍼스에서 발생한 성폭력·사망 사건의 유가족은 관련 언론보도를 접하고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할 것을 호소하는 공문을 한국기자협회에 보냈다. 언론이 선정적인 제목으로 범죄 사건을 보도하면서 당사자와 유족에 2차 피해를 가한 것이다.

▲조화 사진. ⓒUnsplash
▲조화 사진. ⓒUnsplash

언론 관련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이 같은 보도 배경으로 단연 포털 중심 뉴스생산 구조와 공익·독자보다 생산자를 우선하는 관습을 꼽는다. 저널리즘과 거리가 먼 한국만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포털에서 뉴스가 소비되는 구조에서 언론사들은 똑같은 기사를 쏟아내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주목받으려는 유인이 강해 단독을 남발한다”고 분석했다.

기자상도 시간 차 단독 보도에…잘못된 관행이 저널리즘 가치 깎아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언론사도 ‘누가 먼저 사안을 보도하느냐’를 중시해 내부 상을 주고, 한국의 유수 기자상들도 같은 차원의 ‘단독’과 ‘특종’을 심사의 절대 기준으로 한다”며 “‘[단독]’을 붙이면 조회수가 높아진다는 데이터가 확실한 만큼 한국언론은 거기에 1차적으로 주목한다. 반면 해외언론은 그 다음단계인 언론의 신뢰도와 기사의 호감도에 관심을 가진다. ‘빨리 보도한 것’을 기준으로 주는 상 부문도 없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주요 외신 한국 주재기자도 “국외 언론도 페이스북이든 구글 검색을 통해서든 헤드라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노출 위치와 클릭 수가 달라지기에 많이 보도록 하려는 노력은 다들 한다”면서도 “한국은 언론사가 속보로 강조해야 할 정보가 뭘까, 또 자제해야 하는 것은 뭘까가 뒤집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발생하는 사건을 보도하는 주제인데, 더구나 잔혹범죄이거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사고일 때 ‘빨리 보도한다’는 이유로 ‘단독’을 붙이는 건 맞지 않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피해자나 유족의 고통에 대해서도 최소화하는 방식의 저널리즘을 고민해야 하고, 개인 기자가 아닌 언론계 전체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기존 사건사고 보도 관행을 돌아보고, 다른 방향에서 차별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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