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일정이 유출되는 보안 사고가 발생했다. 윤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날짜와 시간이 김건희 여사 팬 페이지 페이스북 ‘건희 사랑’에 올라오면서다. 유출 행태도 비상식적이지만 유출 경위를 해명한 내용도 황당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구시당 차원에서 참석하려는 당원들이 적지 않아서 익히 일정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졌던 상황”이라며 “이 행사에 참여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어서 특별하게 누군가 특정한 의도가 있다기보다 당의 행사로서 마음을 보태주시려다 이렇게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신변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정이 노출됐는데 ‘알음알음’이라느니 ‘특정한 의도’를 찾기 어려웠다며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모습에 기가 찰 뿐이다.

특히 대통령실이 언론에 보안을 강조해왔던 터라 이번 보안 사고 대응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이례적으로 경호처장의 경질을 요구하면서 보안 사고를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질타한 것도 언론에 엄중한 잣대를 요구해왔던 대통령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지난 8월24일 KBS가 뉴스9에서 보도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 갈무리.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지난 8월24일 KBS가 뉴스9에서 보도한 건희사랑 페이스북의 대통령 외부일정 유출 내용 갈무리.

대통령실은 지난 5월 출입 신청 기자에게 개인 신상 정보를 기재하도록 한 보안 각서 문제로 논란을 빚었다. 출입기자 휴대폰에 ‘보안앱’ 설치를 강제하면서 개인 정보 유출 우려를 낳기도 했다. 사진 촬영이 원천적으로 불가한 보안앱 설치는 무산됐지만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외부 유출시 청사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공지도 있었다.

지난 5월21일 한미정상회담 결과 기자회견 당시 회견장 안 취재를 위한 녹음 촬영은 가능했지만 개인SNS 게재와 회견장 외 장소에서 녹음 촬영은 금지됐다. 기자회견 결과 보도 현장에서도 엄격한 보안 조건을 내걸고 있는데 이번 보안 사고는 무려 경호 문제가 뚫린 대통령 일정이 유출된 것이고 유출 경위 및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출입 기자단에 주요 주간일정을 공지하면서 대통령 참석 일정에 ‘경호 엠바고’를 걸고 있다. 관련 일정이 단 한 줄이라도 기사화가 되면 엠바고 파기를 이유로 기자단 자체 징계에 들어간다.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아닌 다른 부서의 기자가 보도하는 경우에도 매체에 강한 제재를 내린다. 의도와 무관하게 ‘경호 엠바고’를 깨는 건 보안 사고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경호 엠바고 딱지가 붙은 내용은 이전 정부부터 절대 유출돼선 안되는 보안 제1원칙이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페이스북에 일정이 유출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큰 오점을 남긴 셈이다. 대통령실이 해당 보안 사고 책임자를 일벌백계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보안에 대한 당부는 내로남불이 될 수밖에 없다.

▲ ‘모바일보안’앱 작동 화면
▲ ‘모바일보안’앱 작동 화면

윤 대통령 취임식 참석 명단을 요청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도 기만이다. 미디어오늘은 취임식 다음날인 5월 11일 대통령비서실, 경호처, 행정안전부 등에 취임식 참석 명단을 정보공개하라고 청구한 바 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명단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정보부존재’라고 알렸지만 취임식 초청을 받은 사람이 직접 초청 여부 질의를 하자 ‘초청됐다’라고 확인해줬다.

이후 행정안전부는 “대통령 취임식 초청대상자 명단은 개인정보로서 관련 법령에 따라 5월10일 취임식 종료 직후 삭제했으며 실무추진단 사무실에 남아 있던 자료도 5월13일에 파기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KBS 보도에 따르면 행안부는 초청자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폐기했지만 공문으로 접수한 초청자 명단은 공공기록물법 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명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놓고서 각 기관 공문상 접수한 초청대상자 명단이 있다고 한 건 말장난에 가깝다.

▲ 지난 5월10일 취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지난 5월10일 취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정보공개청구제도는 “공공기관이 업무 수행 중 생산 접수하여 보유 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정보공개 사이트)인데 취임식 초청 명단을 공개하라는 청구에 대한 답변은 제도의 취지에 역행한다. 말장난식으로 국민 알권리에 반하게 은폐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대통령실의 보안 사고 대응과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은 국민보다는 정권을 우선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도어스테핑(출근길 질의응답)을 앞세워 아무리 소통을 강화한다고 외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소용없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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