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언론사 이직자 종합 정리하는 날인가 보네요!!” “2022 기자→홍보 이직 사례” 지난 3월부터 지난달까지 돌았던 지라시의 제목이다. 언론 매체에 몸담고 주로 기업 관련 기사를 썼던 기자들이 기업 홍보 담당자로 이직한 명단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돼 돌았다.

SK텔레콤의 티맵으로 이직한 전직 기자의 소식으로 시작해 SK케미칼, 중외제약, DL이앤씨(대림산업), 마켓컬리, 교보생명, 현대백화점, SK이노베이션, 탤런트뱅크, 오늘의집, 국민연금기금, 신세계, 카카오페이, SK하이닉스, LX하우시스, LG생활건강, 드래곤플라이, 두나무, 현대자동차, 신세계 프라퍼티, 삼성SDI, 한샘, LS전선, 카카오뱅크, 스마일게이트, 케이뱅크, 직방, IHQ 등 알려진 사례만 33곳이 넘는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gettyimages.
▲사진=gettyimages.

기자가 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이직한 사례를 보면 연차가 낮은 ‘주니어’급이 주로 옮겨갔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기자를 만나 상대하는 홍보맨의 업무뿐 아니라, 기업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직군으로 옮겨간 사례도 있다.

2022년 언론계를 떠난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사명감을 실현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처우 문제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언론의 낡은 문화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5년 차에 이직한 A 전 기자는 “산업부에 오래 있었는데, 현상을 따라가는 기사를 많이 쓰게 됐다. 현실은 기업들의 요구를 많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그러다 보니 의미 있는 기사를 점점 못 쓰게 됐다. 기자에게 중요한 건 (기사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등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실현할 수 없으니 처우 문제가 보이더라”고 말했다.

A 전 기자는 “(산업부) 기자는 점심 저녁으로 술을 마신다. 기사 욕심이 있으니 주말에도 취재원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무엇보다 발제(기사를 쓰기 위한 계획안) 스트레스도 컸다. 계속해서 뭔가를 찾아야 하고, 술을 먹는 순간에도 취재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했다”고 토로한 뒤 “5년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언론계에 있을 때보다 정신적·급여 부분 등에서 여유로워졌다. 만족스럽다”고 했다.

10년 차에 이직한 B 전 기자 역시 “발제 스트레스는 엄청 난데, 공들여 쓴 기사는 잘 읽히지 않는다. 반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베껴 쓴 기사는 포털 랭킹 뉴스에 올라간다. 점점 의미를 찾기 어려워지더라. 많이 힘들었다”고 말한 뒤 “기자라는 직업을 오래 하긴 힘들다고 봤다. 부장까지 달면 끝일 텐데, 그 이상으로 뭘 할 수 있는 게 있나. 디지털퍼스트를 외치는 데 관심 많은 국장은 변화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장은 다시 신문으로 회귀한다. 신문을 요즘 읽지도 않는데 답답했다. 구심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0년 차에 이직한 C 전 기자는 “기자의 사회적 지위와 기사가 갖는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산업별로 전반적으로 이직이 활발한데 유독 기자 사회에서는 ‘평생 직장’의 신화를 강요해왔다.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깨져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3년 차에 이직한 D 전 기자는 “산업부는 매출부서라 취재의 목적이 대부분 광고협찬비를 얼마나 받아내느냐에 있다. 감시보다는 홍보에 가깝다. 이럴 거면 돈을 더 주는 기업의 홍보 담당자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기업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는 산업부 기자들이 많다”며 “무엇보다 기자보다 기업은 연봉을 훨씬 더 많이 주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사진=gettyimages.
▲사진=gettyimages.

기자라는 직업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혹은 ‘콘텐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인생 커리어’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 특히 IT분야에서는 스타트업 등 기업의 동향을 전하고 분석하는 기사를 쓰면서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이와 맞물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직접 뉴스와 유사한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에 나서면서 기업의 에디터, 마케터 등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C 전 기자는 “미디어 밖에서 직접 산업 현장을 경험하는 게 더 재밌고 그간의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와 산업은 빠르게 변하는데 언론계에서 취재와 기사 패턴으로 지켜보는 입장으로만 남는다는 것에 불안감이 있었다”면서 “사회 초년생이 업무 주체성, 커뮤니케이션 등 기자 직군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경험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1년 차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홍보 담당자로 이직한 E 전 기자 역시 “기자를 몇 년간 경험해보고 그 다음에 나의 적성과 가치관과 맞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기자들이 많아졌다”며 “스타트업 등을 포함해 홍보의 방식이 다변화됐다. 저만해도 기자분들을 만나는 업무는 하지 않는다. 토스와 같은 기업에 콘텐츠만 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팀으로 간 기자도 있다. 홍보 영역이 다양해졌다. 기업의 이미지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뉴스룸을 구축해 이너 보이스를 전할 수 있는 미디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D 전 기자는 “기자 커리어를 살려서 갈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 홍보, 정치, 교수 정도 떠오르는데, 가장 흔한 곳이 기업 홍보라고 생각한다.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어차피 광고협찬비를 받으면서 홍보기사를 써주는 경우가 많으니, 비슷한 콘텐츠를 만드는 거면 기업으로 옮기는 것 같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 저연차 기자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15년 이상 기업 홍보 업무를 해온 F 부장은 “홍보 직군 자체가 힘든 업종이다. 신입사원에게 언론과 기업의 관계를 이해시키면 대부분 도망을 가더라. 차라리 언론과 기업에 대해 아는 사람을 뽑으면 이해가 쉽다. 저연차 기자들을 스카웃하면 신입처럼 교육할 게 없다. 너무 연차가 높은 기자들은 조금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F 부장은 이어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잘 유지할 수 있는지도 고려한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으로 7년 이상 기업의 홍보 업무를 해온 E 부장은 “기자는 현상에 대한 머리 회전이 빠르고 기민하다. 정무적 판단도 굉장히 좋다. 특히 저연차 기자들은 나이가 어리다 보니 기업에 와도 쉽게 융화될 수 있다. 특수한 임무에 있어서는 연차가 높고 네트워킹이 많은 기자를 선호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연차 기자들이 매력적”이라며 “(기자는) 외부의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걸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다. 또 언론사보다 최소 10~30% 급여도 오르니 매력적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갖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갖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기업이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관련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는 경우 ‘취재’ 및 ‘기사 작성 능력’과 ‘팩트체크 역량’ 등을 고려해 기자 출신을 뽑는 경우도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는 기자들이 기업 홍보 이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기자협회보가 창립 58주년을 맞아 실시한 기자 여론조사에서 ‘기자의 정·관계 직행’에 대해 67.2%(매우 우려 22.7%, 대체로 우려 44.5%)가 부정적 인식을 보인 반면, ‘현직 기자의 기업체 직행에 대한 생각’에 응답자 50.7%가 부정적 인식(매우 우려 13.8%, 대체로 우려 36.96%)을 보였다. 부정적 인식이 과반을 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기업행을 용인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같은 경향이 심화되면서 기자의 취재 대상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기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기사를 써온 기자가 그 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해당 언론사가 ‘이해상충’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이직 사례가 늘면 기업 대상 비판적 취재가 무뎌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비춰보면 취재원과 객관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이해관계를 갖지 말아야 한다. 취업수단이나 이직수단으로 삼으면 문제다. 기본적으로 기자가 (자신이 기사로 다뤘던 기업의) 홍보 담당자로 가는 것 자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누구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기자가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 쓰다가 전직하는 것까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특정 기업이나 특정 분야로 옮겨갈 목적으로 생각해 기사를 쓰거나 아이템을 골랐다면 기자라는 직업을 다른 직업으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 비판할만하다. 하지만 기업 홍보도 우리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 홍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자의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기자는 기자로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기업인은 기업인으로서 직업윤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업무 전문성 내지는 직업윤리를 명확하게 따지는 게 잘 안 돼 있다. 그래놓고 직업을 옮길 때만 문제 삼는다. 그러니 근절이 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권순택 언론연대 사무처장도 “1차로 기자윤리에 대한 교육, 저널리즘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말한 뒤 “언론계는 기자로서 정체성, 자긍심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그 부분이 기자윤리와 맞닿을 수 있다. 기자들의 역할이 축소됐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떠나가는 상황일수록 내부 점검을 하고 보다 정론지로서의 위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더 뿌듯하고 공적인 역할이라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지금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권 사무처장은 이어 “또한 전직한 기자들은 본인이 저널리스트로서 얼마나 정체성을 갖고 있었는지 반문해봐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