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무고죄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치인의 전략적 봉쇄소송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선캠프는 대선 기간 중 박국희 위원장이 쓴 2건의 기사를 ‘이재명 낙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로 규정하고 검찰·경찰 고발을 진행했고, 최근 무혐의 결정이 나왔다. 문제가 된 보도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한 ‘“단군이래 최대 5503억원 공익환수” 이재명 주장 따져보니...’(지난해 9월24일자, 검찰 고발),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이재명 캠프 일을 돕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대장동 개발’ 핵심, 경기관광公 사장으로 영전’(지난해 9월14일자, 경찰 고발)이다. 이재명 캠프가 제기했던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정보통신망법 위반이었다.

검찰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조선일보 보도 내용은) 이재명 후보자의 열린캠프가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주장한 ‘대장동 이익 공공환수 내역’에 대해 평가나 의견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며 “의견 표명은 이재명 후보자 측이 공개적으로 주장한 ‘대장동 이익 공공환수 내역’에 대한 것으로, 진실에 반하는 사실에 기초하여 행해진 의견 표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결과 통지서에서 “(박국희 기자가) 민주당, 청와대, 검찰청 출입기자로 활동하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를 유동규의 인터뷰 내용만으로 허위라고 볼 수 없다”며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고소·고발인에게 무고죄 소송을 제기하는 건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이재명 의원과 대립각을 세워온 조선일보의 노조위원장이 직접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9일 박국희 위원장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노조사무실에서 만나 무고죄 소송 검토 이유를 들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사안을 두고 조선일보나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계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조선일보 노동조합 현판. 사진=윤수현 기자
▲ 조선일보 노동조합 현판. 사진=윤수현 기자

- 소송을 당한 기자가 맞소송을 제기하는 건 이례적이다. 무고죄 소송을 검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호반건설·BHC·쿠팡 등 기업 비판 기사를 쓴 기자들은 ‘소송’이라는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에는 무혐의 처분이 나오지만, 권력자 입장에서는 (괴롭힘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언론 본연의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하기만 하고 끝나는 것이다. 무고죄라는 화두를 통해 언론계와 정치권이 봉쇄소송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평기자였다면 소송을 검토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다. 언론 전체의 문제로 봐줬으면 한다.”

- 회사 변호사의 반응은?

“법원에서 무고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이 없다. 다만 정치권의 전략적 봉쇄소송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고소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변호사가 ‘무혐의 결과가 나온 뒤 이를 토대로 무고죄 소송을 제기하면 더 명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 무고죄 소송을 진행할 것인가.

“검토는 하겠지만, 내가 비판하는 사람처럼 행정력을 낭비한다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고죄 소장을 접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에 만난 민주당 인사나 여러 사람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지적만 하는 게 더 좋아 보일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 이재명 캠프는 검찰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소송 과정에서 압박감이 굉장했을 것 같다.

“당연하다. 대장동 사건으로 처음 표적이 된 기자였기 때문에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캠프에서 기자회견까지 하니까 주변에서도 걱정했다. 그런데 나보다는 군소 매체 기자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 훨씬 컸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기자들에게 법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어 심리적 위축을 덜 받을 수 있지만, 회사의 지원을 받기 힘든 기자들이라면 경제적·시간상으로 큰 손실을 볼 것이다.”

- 민주당 측에서 전한 말이 있는가.

“최근 민주당 인사를 사석에서 만났다. 나에게 ‘이재명 의원이 살려고 그런 것인데 이해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무고죄로 고소하면 똑같이 되는 것이니 정치적인 행위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 정도 이야기만 들었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박국희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사진=윤수현 기자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박국희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사진=윤수현 기자

- 이재명 캠프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의도적이라고 보는가.

“전략적 봉쇄 소송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가능한 사건을 길게 끌면서 상대방에게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주는 것이다. 언론중재위에 문제를 제기했으면 피해를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관련 기사 고발장은 검찰이 아닌 경찰에 접수됐다.

“고발당한 기사는 ‘유동규’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끌어올린 기사다. 복수의 취재원에게 정보를 얻어 기사를 썼다. 유동규 전 사장이 이재명 캠프에 책상을 얻어 일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사 대선 캠프를 돕고 있다’고 썼다. ‘캠프를 돕다’는 표현은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임에도 이재명 캠프가 문제삼은 것이다. 검찰이 아닌 경찰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 조사받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실제 검찰과 경찰 양쪽과 일정을 조율하고 서면 진술을 했다. 통로가 하나면 소통이 쉽지만 복수의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오니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재명 캠프는 올해 6월 관련 소송을 취하했다. 봉쇄소송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본인들도 인정한 것 아닌가.”

- 결국 검찰(7월14일)과 경찰(8월2일)에서 무혐의 결정이 났다. 무혐의 결정이 난 후 느낀 감정은.

“억울했다. (정치인이) 말도 안 되는 함량 미달의 소송을 걸기만 해도 일반 시민들은 시달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일정을 깨서 소환 조사에 응해야 하고, 진술서를 쓰는 과정에서 법적 도움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다. 난 지난해 말부터 노조위원장을 맡아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라면 얼마나 많은 방해가 됐겠나. 심리적 위축이 올 수도 있다. ‘다음부터는 이런 기사를 안 써야겠다’는 자기 검열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게 된다.”

- 언론 보도에 법적 대응을 하는 정치인이 많다. 정치권에 할 말이 있는가.

“시민과 공익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 행위와 정책에 대한 비판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를 왜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발인은 조선일보가 이재명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기사를 썼다고 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참 실망스러웠다. (당시)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나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검증의 장에 서야 하는데, 언론의 기본 역할을 무시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언론이 본인을 지지하는 기사만 써야 한다는 것인가.”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언론계에도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다.

“언론사 차원에서도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논의해야겠지만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도 이야기를 해봤으면 한다. 축구대회를 여는 것도 좋지만, 기자 권익 보호를 위해 이번 기회에 한 번 논의했으면 한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면서 외부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언론계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이번 소송과 이전에 경험했던 소송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012년 통합진보당을 출입했을 당시 이정희 전 대표에게 소송을 당했다. 통합진보당을 ‘종북’이라고 지칭한 건 명예훼손이라는 취지였고, 무죄 결정이 났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담론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캠프가 제기한 소송은 함량 미달이고, 봉쇄소송의 목적만 있었다.”

- 이재명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조선일보를 두고 “악의적 왜곡으로 선거에 개입한 언론의 중범죄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사건은 일반 국민에게 허탈감을 주는 것이었다.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슈였기 때문에 ‘지나치게 검증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의 한계 때문에 더 많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깊이 접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하지만 언론이 의혹 보도를 쓰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도 있지 않은가.

“기사를 쓸 때 기자 개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면 팀, 데스크와의 소통을 거쳐 크로스체킹을 하는 게이트키핑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사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낙관적인 결과를 담보할 수 있다. 나도 데스크가 ‘무리한 내용 같다’고 했을 때 선배 기자의 판단을 많이 존중하는 측면이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과정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최근 군소 매체나 인터넷 언론의 보도와 관련된 소송 결과가 (언론에) 불리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중요한 건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아닐까 한다.”

▲ 조선일보가 이재명 지사 아들이 대장동 관련 회사에 취직해 있었다는 취지의 자사 보도를 정정하고 사과했다. 사진=조선닷컴 화면 갈무리
▲ 조선일보가 이재명 지사 아들이 대장동 관련 회사에 취직해 있었다는 취지의 자사 보도를 정정하고 사과했다. 사진=조선닷컴 화면 갈무리

- 조선닷컴이 이재명 의원에 대한 오보를 내서 정정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닷컴은 지난해 9월16일 ‘“대장동 개발 수익금, 주민에게 반환하라”’ 기사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을 소개했다. 조선닷컴은 사진설명에 “이재명 지사의 아들이 계열사에 취직해 있었다”는 내용을 달았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조선닷컴은 같은 날 사과문을 내 “잘못된 사진 설명은 16일 오후 3시 40분쯤 수정했다. 이 지사와 독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조선NS가 아닌 조선일보 정치부 소속이었다.)

“당시 야당 정치인(장기표 전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이 먼저 주장을 제기한 걸로 기억하는데, 치밀한 검증 절차 없이 그대로 인용보도해서 사과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실시간 속보를 위주로 하는 인터넷 기사에서는 지면보다 상대적으로 게이트키핑, 크로스체킹 과정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 한국기자협회가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선일보는 불신도 1위(42.2%)를 기록했다. 2위(한겨레 9.3%)·3위(MBC 6.5%)와 차이가 크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상 비평에 따라 응답한 것이기 때문에 (기자 전체의 의중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전략을 가장 잘 실천하는 언론사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중앙일보’라는 답변(35.9%)이 2위(SBS 12.3%)·3위(조선일보 5.3%)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설문조사 결과만 보고 중앙일보가 경쟁사보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은 지난 19일 이재명 의원실에 이메일을 보내 △검찰·경찰 무혐의 처분에 대한 입장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 △유동규 전 사장 관련 기사 고발장을 검찰이 아닌 경찰에 접수한 이유 △유동규 전 사장 관련 기사 고발을 취하한 이유 △‘봉쇄소송’ 비판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다. 이재명 의원실은 23일 오전 답장을 보내 “문의주신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법률국으로 문의하면 빠르게 답변 받아보실 수 있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후속 보도를 통해 민주당 입장을 확인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