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하이트진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에 사전 동의 없이 드론을 띄워,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비판을 샀다. 조선일보는 조합원 5m 근처까지 드론을 접근시켜 사진을 찍었다.

파업 98일을 맞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노동자들은 16일 새벽 하이트진로 본사에 들어갔다. 일부 조합원은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드론을 띄워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을 촬영했고, 이를 기사화했다. 화물연대와 고공농성자에게 사진촬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촬영이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TV조선·채널A는 민주노총이 ‘취재 거부’를 하고 있는 매체다.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농성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 (사진=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

고공농성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 A씨는 17일 통화에서 “우리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A씨는 16일 오후 접근한 조선일보 드론을 떠올렸다. 광고탑 주변을 돌던 드론이, 뒤이어 광고탑 뒤편에 있던 조합원에게 다가갔다. A씨는 “우리가 드론을 바라보니 잠깐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5분 정도 지나자 대놓고 우리를 찍었다. 눈으로 사람을 훑어보듯 촬영하니 당황스러웠고 난리가 났다”고 털어놨다.

A씨는 “(당시) 전반적으로 광고탑쪽에서 바람이 상당히 많이 불었다”며 “하이트진로 건물과 옥상에 펼친 현수막이 수시로 밀려 올라왔다. 사람이 서 있으면 조금 흔들릴 정도였고, 날도 뜨거워 어지러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드론이 추락했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드론이 등장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커졌다고 한다. A씨는 “드론이 보이자 불안감에 휩싸였고, 초조해졌다”면서 “위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인데, 괜히 자극을 줘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고 했다.

A씨는 “언론사가 동의도 없이 사진을 촬영한 것도 너무한데, 기사 내용을 보고 기분이 더 나빴다”며 “조선일보는 우리의 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언론사라면 양쪽의 입장을 듣고 공정하게 기사를 써야 하는데, 공권력을 투입해 엄정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A씨는 “그런 기사를 본 사람들은 우리를 폭력 집단, 폭력 노조로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트진로 본사가 있는 청담역은 비행제한구역이다. 드론으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디어오늘이 군·경찰 관계자를 취재해봤지만 조선일보가 드론 촬영 허가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조선일보 측은 미디어오늘에 하이트진로 고공농성장 드론 촬영을 한 사실을 시인했다.

▲조선일보 17일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는 16일 ‘“시너 들고 왔다, 경찰 오면 일낼 것”...화물연대,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보도에서 드론 촬영 사진을 게재하고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 70여 명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사옥에 진입해 불법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썼다. 또한 조선일보는 17일 ‘시너 들고 기업 난입한 민노총, 이곳에 직원 들여보낸 경찰’ 사설에서 화물연대의 점거 농성을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을 요구했다.

A씨는 “(언론이) 선입견을 갖고 공정하지 못한 기사를 쓴다면 독자들은 사안을 공정하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라며 “여러 관점에서 여러 해석을 내놓고,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의 운임은 15년째 동결이다. 이들은 운임 인상을 요구했으나 하이트진로와 화물 위탁사 수양물류는 조합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27억 760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는 17일 언론에 “유가연동제 적용 후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소비자 물가상승률 14.08% 대비 이송단가(운임) 인상율은 26.36%이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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