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처음으로 가진 공식 기자회견은 ‘불편함’ 없는 분위기 속에 마무리 됐다. 대변인이 지목한 기자들과 윤 대통령간 질의응답이 약 30분간 이어진 가운데 측근 비리 등의 민감한 현안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에게 듣는다’를 주제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윤 대통령이 모두 발언에 이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그간의 성과를 발표한 모두발언은 20분, 질의응답은 30분 안팎의 시간이 할애됐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기자들 120여 명 중 질문을 원하는 기자들이 손을 들면 강인선 대변인이 질문자를 선정했다.

질문 기회를 얻은 기자들은 순서대로 SBS, 국민일보, 연합뉴스, ABC(미국), 채널A, 부산일보, 요미우리신문(일본), 뉴시스, 머니투데이, 한국경제TV, CNN(미국), 이투데이 등 12개 매체 소속이다. 매체 유형별로는 외신 3개, 통신사 2개, 경제전문 3개, 지상파 방송사 1개, 종합편성채널 1개, 중앙일간지 1개, 지역일간지 1개 등이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질문 내용은 국정운영 평가, 외교·안보 관련 사안에 집중됐다. 첫 질문자인 SBS 기자는 ‘국정운영 지지율이 계속해서 낮은 수준이고 윤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석달 만에 떠나간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국민일보 기자는 ‘국민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문제로 인사가 지목되는 이유과 개선 방안’을 물었다.

50분 기자회견에 대통령 발언 20분…질문분야 중복

외교·안보 분야는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담대한 구상’을 중심으로 질문이 모였다. 연합뉴스 기자가 ‘담대한 구상 현실화를 위해 북측에 회담을 제의할 계획과 북한이 체제안정 보장을 요구할 경우 대응 방안’을, 미국 ABC 기자는 ‘현실적으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면 한국도 핵을 보유하는 등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미국 CNN 기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의사를 묻기도 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 기자의 경우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 해결 방안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을 하면 나누고 싶은 대화’를 물었다. 강제징용 관련해 한국 대법원은 2018년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국내 현안 중에서는 노동 분야에 대한 경제매체 기자들 질문이 두드러졌다. 머니투데이 기자는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갈 방안’, 한국경제TV 기자는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 등 일부 노동조합 중심의 투쟁에 대해 법과 원칙 외에 다른 복안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노동 분야이지만 노동권 관련 질문은 없었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이투데이 기자는 수도권 집중호우 후속 대책으로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등이 밝힌 공공임대주택 지원 사업 실효성에 대한 질문을 했다. 지역 일간지인 부산일보는 ‘부산엑스포 유치 방안’에 대한 대통령의 답을 요구했다.

국내 정치권 현안 관련해선 채널A 기자 질문이 유일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비난을 비롯해 ‘여당 집안싸움’으로 인한 국정운영 부담이 계속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일부 매체는 윤 대통령의 언론 대응과 관련한 질문을 제기했다. 뉴시스 기자가 ‘도어스테핑(출근길 질의응답) 논란에 대한 심경과 앞으로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답해달라고 한 가운데, CNN 기자가 ‘외신의 대통령실 및 정부 접근을 늘려주길 요청한다’고 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도 “김여사 질문 없어 당황”

이날 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국민이 궁금해할 만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 평가 관련해 인사 문제가 두루뭉술하게 거론됐을 뿐 측근 인사, 특히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관련 질문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한 출입기자는 “김건희 여사 질문이 하나도 안 나와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도 “김건희 여사와 각종 비선 논란(건진법사 등)에 대한 질문이 전혀 없어서 놀랐다”며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시행령 통치 논란과 주진우, 이원모, 윤재순 등 대통령실에서 국정을 쥐고 흔드는 검찰 출신들에 대한 질문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애초 질문자 선정 방식부터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실이 ‘정해진 것 없는’ 기자회견임을 강조했지만 강 대변인이 직접 기자들을 지목하면서 불편한 질문을 할 것 같은 기자들을 걸러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중앙 풀단(대표 취재단)에 속하지 않은 매체 기자의 경우 기자회견 전 이틀간 이메일로 참여를 신청해 대통령실로부터 개별 좌석을 통보 받았고, 상대적으로 뒷자리에 배정되기도 했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전임 문재인 청와대의 경우 문 대통령이 100일 기자회견을 직접 진행하면서 질문자를 선정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사전에 질문자와 내용을 정한 기자회견으로 비판을 받은 점을 반면교사 삼아 ‘즉흥성’을 강조한 형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실도 이번에 ‘각본 없음’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첫 기자회견부터 질문 편향성 지적을 받게 됐다.

이를 두고 “그동안의 브리핑에서 강인선 대변인이 질문자 지목을 편향되게 해 온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상황은 출입기자 다수가 예상했던 상황”이라며 “강 대변인이 본인 입맛에 맞게 말랑한 질문자를 지목해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나선 걸로 보인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출입기자는 질문한 매체들이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라며 “균형을 위해서 차라리 어느 정도 안배를 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낫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출입기자는 “사전에 질문지를 미리 받은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진행이나 방식, 내용면에서 모두 엉성했고 아마추어적이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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