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과거사 진상규명 집중점검 - ⑴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진상규명 언급 이후 문화관광부 등 일부 정부부처에서도 과거사 정리작업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80년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통폐합 등 언론탄압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던 당시 보안사령부와 문화공보부의 각종 문건도 상당수가 공개돼 언론탄압의 진상이 어떻게 밝혀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앞서 발생했던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강제해직 사건과 관련해 당시 중앙정보부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언론통폐합의 과정에서 정수장학회를 어떻게 소유하게 됐는지도 규명 대상이다.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언론통폐합과 관련해 문화관광부는 현재 자료수집을 하고 있으며, 국방부도 자체적으로 조사할 대상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언론과거사 진상규명의 핵심대상은 무엇인지, 문건 등을 통해 나타난 당시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등을 집중점검한다.

▷신군부의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등 신군부의 5·17 계엄령 확대조치에 대해 각 언론사 내부에서는 보안사의 보도검열 철폐와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사실보도를 요구하는 등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계엄사령부, 보안사령부, 문화공보부 등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신군부는 6월까지 언론사 내부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정보수집을 거의 마친 뒤 본격적인 대책수립에 들어갔다.

5월24일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일선기자반발에 따른 당면언론대책’이라는 문건에는 “일선기자들이 5월16일 김태홍 기자협회장 주관아래 기자총회를 개최, 20일 0시를 기해 보도검열 거부를 결의했다”며 보도통제 강화 및 장기화에 대한 반발을 주도하고 있는 주동자를 분류, 3단계 조치방안을 제시했다. 1단계는 계엄사령부와 문화공보부 주도로 문화 사장, 편집·보도국장·기협분회장들에 대한 경고 및 협조당부, 2단계는 합동수사본부가 반발주동 기자(42명)에 대한 직접경고이며, 성과가 없으면 포고령 10호를 적용해 입건·구속 등 엄단하는 것이다.

대책의 실체는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제거였다. 이 같은 방침은 같은 해 6월에 국보위 문교공분과위원회가 작성한  ‘언론계의 정화·정비계획’이란 문건에 자세히 나타나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반체제·검열거부·특정정치집단과 유착된 기자 등에 대한 방침은 ‘숙정’이었고, 후속조치로는 기자채용기준의 설정 및 채용전에 교육을 시키고, 재교육도 제도화하는 등 엄격하게 한다는 것이다.

국보위 문교공보위가 7월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언론계자체정화계획’이라는 문건은 숙정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했다. 1단계로 7월25일부터 30일까지 문화공보부가 주관해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긴급총회를 소집, 자율적인 숙정을 결의하고, 2단계 조치로 8월1일부터 10일까지 각사 발행인 책임하에 언론자체 정화위원회를 설치해 자체적으로 숙정하며, 소기의 성과가 없으면 11일부터 30일까지 합동수사본부가 경영주를 포함해 조사 처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방적인 정부의 해직대상자 통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해직대상자에 부조리, 비위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방법도 병행했다. 같은 해 6월 보안사 언론과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언론계 부조리 유형 및 실태’와 7월 문화공보부 공보국이 작성한 ‘사이비 언론 정화방안’이라는 문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해직의 절차는 보안사령부 검열단 언론반이 해직대상자 명단을 작성해 문화공보부를 통해 언론사에 통보한 뒤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명단을 추가해 보안사에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7월 말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8월9일 동아일보·동아방송 등을 거쳐 8월16일까지 933명의 언론인이, 10월 언론통폐합 때 400여명 등 모두  1300여명의 언론인이 해직됐다.

▷언론사 사주·경영진은 어떻게 협조했나= 국보위와 보안사 문화공보부 등이 조직적으로 언론인 강제해직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실무역할을 했다면, 해당 언론사 경영진이나 사주는 반발은커녕 이를 끝내 방조·순응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도 했다. 이는 8월까지 해직된 언론인 933명 중 보안사가 통보한 명단은 298명이었으나,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명단은 635명이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대목은 95년 전두환 노태우 내란 혐의 수사에서도 이뤄지지 않았고 드러난 자료나 밝혀진 내용이 없다. 특히 언론사 경영진들이 해직 대상자를 선정한 자체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등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본지가 입수한 ‘방송인 자체정화 대상자 명단’이라는 방송협회 문건에 따르면 전국 31개 방송사에서 해직된 343명의 언론인 중 보안사에서 통보한 명단은 29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내부 불만세력에 대해 자체적으로 방송사에서 선정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각 명단의 항목에는 해직 사유로 ‘무능’ ‘무사안일’ ‘고령’ ‘태만’ ‘기회편승’ 등 모호한 내용만이 기재돼있다. 이 때문에 해직 언론인 명단에 일부 언론사에서 사주들이 ‘미운 털이 박힌’ 기자들을 끼워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88년 12월13일 국회 문공위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동아·조선·중앙·한국일보 대표들은 증언을 통해 “자율형식을 띤 강압에 의한 해직이었다”며 “정부측이 요구한 해직 대상자 명단 외에 자체적으로 추가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었다.

신군부는 해직 계획을 실행한 뒤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에 대한 취업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문화공보부는 9월10일 작성한 ‘정화언론인 취업문제’라는 문건에서 “대부분이 의식분자이며 부유하지 않은 실정으로 취업제한시 반정부 불평집단화할 것이며 동아·조선투위의 경우와 같이 집단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악질적 반정부·반체제 분자 외의 해임자에 대해서는 언론이외 타분야의 취업을 허용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향후 반시국적 언론을 하지 않음은 물론 새 시대의 국가건설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각서’를 징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동아·조선 75년 대량해직 사태= 80년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이 발생하기에 앞서 지난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가 대량 해직된 사건도 함께 규명돼야할 대상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에 대해 정부가 광고탄압에 나서자 기자들이 강력 저항해 시민들의 백지 격려광고가 쇄도했으나 동아일보는 ‘사규위반’이라는 이유로 150여 명의 기자들을 대량 해직시켰다.

이에 따라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문영희)는 지난 7월말 ‘유신치하 언론민주화운동탄압 진상규명법’을 마련, 정기국회 때 입법청원하기로 했다. 법안의 골자는 청문회를 통해 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것으로, 유신 정부와 동아일보 사주와의 관계, 권력과의 거래내용에서부터 정부의 광고금지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양두헌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보 등 전·현직 정치권 인사와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김병관 전 명예회장 등 전·현직 언론인들이 출석하도록 하는 게 법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당시 일지

당시 신군부가 언론인의 동태를 파악하고 언론사가 해직을 단행하기까지를 보여주는 문건들을 토대로 당시 시간표를 재구성했다.
·80년 5월- 언론 동태파악 및 정보수집
-’각사 언론자유결의 동태분석 및 보도검열완화건의’(5월14일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 언론반 작성)
-’중앙 각언론사 제작거부사태 분석보고’(5월중 보안사령부 작성 추정)
-’일선기자반발에 따른 당면언론대책’(5월24일 보안사령부 작성 추정)
·80년 6월- 실태 파악 및 대책수립
-’언론저항의 현황과 대책’(6월중 보안사령부 또는 중앙정보부 작성 추정)
-’언론계의 정화·정비계획 보고’(6월중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교공보위원회 작성·오자복 문공위원장 서명)
-’언론계 부조리 유형 및 실태’(6월중 보안사령부 작성 추정)
·80년 7월- 해직작업 착수 및 중진언론인 포섭
-’언론계자체정화계획’(7월중 국보위 문공위 작성)
-’사이비 언론 정화방안’(7월중 문화공보부)
-’언론인자질향상방안’(7월중 국보위 문공위 작성 추정)
-’중진언론인 접촉순화계획’(7월중 계엄사령부 공보2처 작성·전두환 사령관 서명)
·80년 8월- 해직 완료
-’언론정화중간보고’(8월11일 문화공보부 작성)
-’언론인정화결과’(8월16일 문화공보부 작성)
·80년 9월- 해직언론인 취업건의
-’(대외비)정화언론인 취업문제(9월10일 문화공보부 작성)
-’정화언론인 취업허용건의’(9월중 보안사령부 작성·노태우 보안사령관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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