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7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과 요구 없이 일본을 힘을 합쳐나갈 이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대통령실이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2차 대전 패전을 한 일본 입장에서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고 말해 논란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후 첫 광복절 경축사인데도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현안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귀화 한국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국이 친일적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인식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어느나라 대통령이냐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5일 오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복원하시겠다고 했으나 일본 기시다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납을 했고, 현재 관료들이 몇 년째 직접 참배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 질의에 “야스쿠니 신사에 일단 일본 총리가 직접 가지는 않는 선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 것 같고, 사전에 우리 측에 설명도 해왔”다며 “8월15일이 우리에겐 광복과 독립을 맞은 날이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8‧15마다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지도부가 어떤 식으로든 예를 표하는 것이 멈출 수 없는 관습이 돼 있는데, 사전에 여기에 대해서 한일이 어떻게 교감하느냐, 그 이후 반응을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가 문제”라고 답해 논란을 불렀다.

이 관계자는 “우리 외교부가 간단하게 어쨌든 평가를, 비판을 할 것”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에 관계 없이 큰 틀에서 한일이 지금 생각하는 현안에 대해서는 매우 긴밀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종교시설인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국가 지도부인 총리와 관료들이 공물을 바치고 참배하는 행위를 관습이라고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과거사 반성과 사죄의 표현은커녕 우리나라를 침략해 국권을 침탈한 자들을 신으로 모시는 일본 지도부를 이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 교수(독도연구소장)는 16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야스쿠니 참배는 관습’ 발언을 두고 “나치를 이해하자. 그거하고 똑같은 이야기”라며 “이해하면 안 된다. 일본 국민들 중에서도 이해 안 하는 사람이 거의 70%, 80%인데, 그런 식으로 하면 절대 안 되는 그 발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호사카 교수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고. 그러니까 그 전사한 사람들을 그 신으로 승격시킬 때 당신은 열심히 싸웠다(라는 의미)”라며 “세계에서 보면 어? 한국이 옛날에 일본 속국이었던 그때하고 비슷한 사상을 갖게 되어가네라는 이상한 오해를 그 세계에 또 준다”고도 해석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어 “‘한국이 독립운동을 부정하면서 일본을 따라갔던 당시 친일적이었던 방향으로 한국이 선회하고 있구나’라는 것(해석)을 한국에 있으면 잘 안 보이는 부분”이라며 “그러나 유럽에서 그 일본이나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즉각 그렇게 이야기한다. 미국 이상으로 독일하고 이러한 한국, 일본을 비교하는 그런 연구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날 방송에서 “(신사참배를) 우리 대통령실에서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고 대신 해명해주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경우”라며 “일본에서도 이렇게 대놓고 안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가 16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 지도부의 신사참배를 관습이라고 말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TBS 영상 갈무리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가 16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 지도부의 신사참배를 관습이라고 말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TBS 영상 갈무리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유감’표시를 한 것이 전부이고, 대통령실은 ‘사전에 설명을 들었다’며 오히려 일본 정부를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일본의 후안무치한 태도에도 굴종, 굴욕 외교로 일관하고 한마디 반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 반성·사죄 요구 없이 “일본은 힙 합쳐갈 이웃” 박홍근 “일본만 향해”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첫 8·15 경축사 내용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며 “한일 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을 계승하여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윤 대통령은 독립 운동의 대상으로 ‘3·1 독립 선언과 상해 임시정부 헌장, 매헌 윤봉길 선생의 독립 정신’ 등을 든 반면,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방적 주장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77주년 광복절에 식민 지배의 역사를 정치적 지배라 순화할 만큼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이 아닌 일본만 향해 있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위안부 문제 등 한일 현안은 외면한 채 미래 지향적 관계라는 모호한 수사만 남발했다”며 “같은 날 기시다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공물 대금을 봉납했고, 관료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명예를 짓밟더라도 일본 비위를 맞추는 게 더 중요한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두고 박 원내대표는 “그 본뜻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며 “국민적 공감도 없는 일방적 한일 관계 개선 추진은 오히려 일본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들의 비판도 나왔다. 김현정 CBS PD는 이날 김현정의 뉴스쇼 오프닝에서 윤 대통령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언급을 두고 “오부치 선언은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를 문서에 공식화했던 선언이었다”며 “반성과 사죄를 전제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일본 정치인들은 망언과 망동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어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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