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청년 성평등추진단) 사업이 급작스럽게 폐지됐다. 윤석열 정부 여가부에서 추진단을 모집하고 장관이 출범식에 참여까지 한 사업인데 여당 원내대표 한 마디에 돌연 사라진 것이다. 

발단은 지난 7월4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페이스북 글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사업을 가리켜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며 “지원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고 비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명분을 내걸고 지원금 받아가는 일부 시민단체와 유사한 점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사업에 문제를 삼는 글들이 올라왔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페이스북 글이 올라오자 일부 언론은 따옴표를 붙여 사업을 몰아붙이는 내용을 전했고, 여성가족부는 사업을 ‘보류’했다. 여가부는 지난달 말 사업을 주관하는 업체 빠띠에 사업 폐지를 통보했다. 빠띠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청년 성평등추진단 사업 1, 2기 때 파트너사였고 올해 4기에는 사업을 주관하는 운영사로 참여했다.

▲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연합뉴스
▲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에서 선정하고 장관 출범식까지 왔던 사업

흐름만 보면 이전 정부 사업을 현 정부가 문제 삼아 제동을 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청년 성평등추진단 사업은 이전 정부에서 시작했지만 올해 4기 추진단은 현 정부에서 선정했다. ‘버터나이프크루’(청년 성평등추진단)는 2030 세대의 일상을 보다 성평등하게 만들어 나가기 위한 프로젝트로 연구, 캠페인,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문화·인식 개선 활동을 팀별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황현숙 빠띠 이사는 “현 정부 여가부가 결재한 사업이다. 용역입찰 결과 빠띠가 운영사로 선정됐고 여가부와 함께 프로젝트 팀을 모았다. 출범식도 했고 출범식에 여가부 장관까지 왔는데 이 사태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는 6월30일 ‘추진단 출범식’을 보도자료로 공표했다. 여가부는 “이날 출범식을 시작으로 성평등, 젠더갈등 완화, 공정한 청년 일자리 환경 조성, 마음돌봄 등 4개 분야에서 청년들이 발굴한 의제를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과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치게 된다”고 소개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2030 청년들을 중심으로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이 과정에서 성별, 세대 등 더욱 다양한 청년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며 공감대를 얻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버터나이프 크루 활동 관련 영상 갈무리
▲ 버터나이프 크루 활동 관련 영상 갈무리

송지선 빠띠 이사는 “출범식 이후 지원금 집행이 결정돼 지출 직전의 상황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이 나왔고, 기사화됐다. 직후 여가부에서 지원금 아직 안 나갔으면 일단 ‘스톱’해달라는 대기요청을 받았다. 처음엔 (발언과 무관하게) 내부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어 대기 요청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사업이 확정된 상황이라 참가자들은 굉장히 당황스러워했고 모멸감을 느낀다고 얘기한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송지선 이사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업에 대한 우려를 접하고 발언하기까지 하루 정도 걸렸다”며 “이미 시행된 정책을 이 정도 문제 제기로 폐지하는 게 맞는가. 문제가 있다면 자료제공 요청을 해서 확인을 하고 검토했다면 조금 더 이해가 되겠지만 아무런 요청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 경도? 세금 낭비? “사업 들여다봤나”

빠띠 관계자들은 ‘세금 낭비’ 프레임에 반박했다. 2022년 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4억5000만 원 규모다. 팀별로 집행되는 사업비는 팀당 200만~600만 원 정도로 배분된다. 장하은 활동가는 “‘지원금을 받아간다’는 표현 자체가 개인이 쓴 것처럼 인지하는 것 같다”며 “여성가족부 회계 가이드에 맞춰 진행을 한다. 인건비는 책정할 수 없고, 수익화나 영리활동도 안 된다. 참여하는 팀들은 사업의 사회적 의미를 알기에 돈이 되지 않음에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반박의 소지가 크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여성가족부 사업을 페미니즘과 떼놓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평등의 범주 안에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맥락도 외면하고 있다.

올해 사업 계획을 보면 프로젝트는 성평등, 젠더갈등 관련 소재 외에도 ‘공정한 일자리’, ‘마음돌봄’ 등 세부 주제로 나뉜다. 비수도권 여성들의 삶에 주목한 프로젝트, 시청각 콘텐츠의 성차별 한계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 스타트업 여성들을 연결해 창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등이 준비 단계였다. 

▲ 버터나이프 크루 이미지 갈무리
▲ 버터나이프 크루 이미지 갈무리

앞서 지난 3년 간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통해 6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혼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려는 여성들을 위한 안내서 제작, 현직 약사들의 피임약 인식 개선 캠페인, 성평등 가정을 위한 교육 콘텐츠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송지선 이사는 “올해 사업은 4가지로 분야로 나눴고 팀 선정을 할 때는 지역과 성별, 연령 등 다양성을 검토하기도 했다”면서 “여성가족부 사업인데 평등 문화를 다루지 말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송지선 이사는 “일부 언론에선 원내대표 의견을 비판 없이 내보내다 보니 팩트체크가 되지 않고 일방적 주장이 굳어졌다”며 “사업의 취지와 맥락, 실제 사업 공고와 팀 활동을 살펴봤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장하은 활동가는 “젠더 갈등, 여성 이슈가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건설적 방향으로 함께 소통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내가 겪은 어려움과 불평등을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해보는 자리는 꼭 필요하다”며 “버터나이프 크루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입장을 들어보고 무언가를 해보자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올해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확장하려고 계획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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