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복직한 방송작가들에게 정규직이 아닌 ‘방송지원직’으로 채용할 방침을 통보했다. 작가들과 법적 다툼을 해오던 MBC가 차별적 처우를 적용한 근로계약을 요구하면서, 원직 복직 판결 취지를 거스른다는 지적과 함께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과거 MBC 방송작가로 9년간 일하다 해고된 두 작가는 부당해고를 인정 받고 2년여 만에 복직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에서 MBC 데스크 지휘를 받아, 본래 국제부 기자들이 하던 △주요 현안 자료조사 △아이템 선별 △보도 원고 작성 등 업무를 해왔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두 작가가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였지만 MBC는 불복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재차 부당해고를 인정하면서 작가들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작가들은 복직한 첫날 MBC 측으로부터 ‘방송작가’가 아닌 ‘방송지원직군’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은 지난 8일 두 작가와 방송작가지부 관계자, 작가들의 소송대리인인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참석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측 요구를 받아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전태일재단, 한국여성노동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방송작가들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전태일재단, 한국여성노동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방송작가들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지원직’은 MBC가 지난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 받은 MBC 작가들을 배속하고자 올해 초 신설한 직군이다. MBC는 해당 직군의 작가들이 ‘프리랜서’로 일할 당시 수준으로 급여를 책정하고 ‘개인연봉제’를 적용한다. 기자·PD 등 기존 보도·방송제작 노동자는 ‘일반직’으로 분류해 호봉제를 시행하고 있다. 강은희 변호사는 “MBC 정규직은 호봉을 적용받아 해마다 연봉이 오르지만 방송지원직은 오를 여지가 없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했다.

이 같은 MBC의 대응은 원직 복직 판결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또다른 차별을 만들어 고착화한다는 논란을 부르고 있다.

A 작가는 “2년 넘는 시간을 힘들게 싸운 끝에 기쁜 마음으로 회사에 갔지만 MBC가 직원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 진정성만 의심하고 돌아왔다”며 “2년 간 싸워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회사가 꼼수로 급조한 직군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화가 난다. 아나운서, 기자, PD는 정규직이고 작가는 최대한 ‘양보’해도 무기계약직이라는 건 누가 정한 기준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미 MBC는 무기계약직 차별로 법원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016년 6월 MBC의 업무직·연봉직 직원 97명이 차별적 처우 시정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같은 부서에서 동종 업무를 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수당, 보직, 승진을 이들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9년 대전MBC가 정규직과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 직군에 대해 사측이 근로조건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방송작가유니온·시민사회단체 “정규직 채용하라”

MBC는 방송작가유니온과 작가들 처우 문제를 협상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MBC는 미디어오늘 취재진에게 “회사가 개인의 개별적 근로조건에 대해 노동조합과 협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순미 방송작가유니온 정책국장은 “지난해 8월 방송작가유니온이 교섭을 요구했을 때, MBC는 뉴스투데이 두 작가의 소송이 진행 중임을 이유로 교섭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반박한 뒤 “이제 소송이 끝났으니 단체교섭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MBC와 법적 다툼 끝에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뉴스투데이 작가의 2011~2020년 MBC 근무 당시 모습.
▲MBC와 법적 다툼 끝에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작가의 2011~2020년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 근무 당시 모습.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시민사회단체들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뒤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두 방송작가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MBC의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시민사회단체들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뒤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두 방송작가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MBC의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MBC 앞에서는 “방송지원직은 제대로 된 복직이 아니다”라며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방송작가유니온 기자회견이 열렸다.

강은희 변호사는 “당사자 작가들은 애초에 MBC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는 방송작가였으므로 진정한 원직복직은 당사자 작가들을 MBC의 정규직 방송작가로 고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도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해 “MBC가 별도 직군을 만드는 건 신분을 따로 만들어 임금 조금 주고 일 더 시키려는 꼼수 아닌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힘 없는 두 여성노동자로선 MBC와 복직 관련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 33조가 단체교섭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정한 만큼, 당연히 방송작가유니온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8일 오후 박성제 사장 면담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MBC 관계자는 “근로감독 결과에 따른 시정조치로 신설된 방송지원직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MBC가 부당해고에 대해 두 작가들에 사과할 계획을 묻는 질문에 “법원 판단 이행하는 것 말고 회사가 취할 조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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