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한 출입기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기자들의 실시간 공개 질의응답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자들 뿐 아니라 국민들도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은 8일 오전 휴가를 마치고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물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출근길 약식문답, 이른바 도어스테핑 시간을 가졌다. 13일 만에 한 기자들과 대화였다. ‘박순애 장관 자진사퇴 얘기도 나오고 지지율도 하락세인데 인적쇄신 관련해서 어떤 입장이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하고 일을 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 쪽에서 “대통령님 파이팅” 하는 강렬한 외침이 들여왔다. 돌연 윤 대통령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고, 그 기자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하하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했다. 주변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즐거운 분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이,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우리 언론과 함께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오랜만에 여러분을 뵈었는데 여러분께 많이 도와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린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파이팅을 외친 기자는 아리랑TV의 문아무개 기자다. 문 기자가 파이팅을 외친 뒤 대통령에 질문한 것은 우리 정부의 칩4 예비회의에 대한 입장과 대통령의 주문이 뭐였냐였다. 윤 대통령은 국익 관점에서 살피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한 뒤 자리를 떴다. 그 직후 다른 기자가 ‘내부총질 문자에 대해서는 설명하실 생각 없으시냐’고 질문했으나 윤 대통령은 본체도 않고 들어갔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한 요인 중 하나는 여권 내부의 심각한 내홍이며, 그 중심에 대통령과 당 대표가 있다고 많은 국민들은 보고 있다. 그런 질문은 정작 외면한 회견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물 1층 로비에서 답변 도중에 아리랑TV 기자의 대통령님, 파이팅 응원을 받고 감사의 답례를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물 1층 로비에서 답변 도중에 아리랑TV 기자의 대통령님, 파이팅 응원을 받고 감사의 답례를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이밖에도 박순애 전 장관의 취학연령 하향 추진 문제를 비롯해 대통령실 참모들의 채용과정에 대한 잡음, 경찰국 신설 밀어붙이기로 인한 갈등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민심을 악화시켰다.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통령 본인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질문해야 할 때였다. 그런 질문과 답변이 나오기를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런 긴장감은커녕 ‘대통령님 파이팅’이나 외친 기자가 이날의 핫이슈가 되고 말았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통령은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가 아니고, 기자는 대통령의 응원단장이 아니다. 이런 비판에 8~9일 미디어오늘 취재진이 여러차례 반론과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문 기자는 답변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1월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내려와 인사를 나누던 중 돌연 김은미 MBN 기자가 박 대통령과 포옹했다. 당시에도 대통령과 기자의 거리감이 존재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인 지난 3월13일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할 때 한 기자가 ‘정말 외람되오나~’라고 말한 뒤 질문한 것이 드러나 공손함이 너무 지나치다는 비난과 야유를 면치 못했다.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 해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권력자에 대한 취재에 있어 기자는 늘 권력자와 긴장감을 유지하고 거리를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와 근접거리에 있는 기자들이 국민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무슨 관계를 맺는지 의심을 사기 십상이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은 제8조(품위유지)에서 “취재원과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고,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의 출근길 회견 영상이 전국에 생중계된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답변 못지 않게 기자의 질문은 그 자체로서 보도행위의 가치를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김예령 당시 경기방송 기자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가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볼 때 대통령을 불편하고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대통령에게 마음 편하게 하고 듣기 좋게 하는 이른바 아부성 질문 보다 백갑절 낫다. 기자는 취재원과 불편해지는 직업이며, 그걸 마다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권력자가 국민의 공복으로서 역할을 못할 때 왜 그런지, 노력을 하긴 하는 것 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일을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따지고 비판하며 되묻는 일을 하는 게 기자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과 매일 만나 단 몇 분이라도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가 매일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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